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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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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Nov 25. 2022

다움필라테스

단편

전화를 끊은 재희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사람들이 재희를 보며 주춤거렸지만 이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재희는 그렇게 한 동안 꿈쩍 않고 울었다. 갑자기 재희의 주위가 어두워졌다. 재희는 마스카라가 번진 얼굴을 들어 보였다. 등에 커다란 플래카드를 달고 있는 앳된 얼굴의 여자가 물티슈를 손에 들고 있었다. 재희가 멍하니 쳐다보자 물티슈를 받으라는 듯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재희가 물티슈를 받아 들었다.


‘다움필라테스에서 명품 몸매를 완성하세요! 신규등록회원 최대 50% 할인! #체형교정 #몸매관리 #혈액순환 #다이어트’


재희가 물티슈를 꺼내 눈물과 마스카라를 닦았다.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움필라테스 홍보원이 안타깝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남자 친구?”


재희가 얼굴을 양손에 파묻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다움필라테스 홍보원이 재희의 등을 토닥거리고는 다시 본업으로 돌아갔다.


재희는 물티슈를 하나 더 꺼내 코를 푼 후 다움필라테스 홍보원에게 다가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눈물에 젖은 재희의 볼에 붙어 있었다. 다움필라테스 홍보원이 손짓으로 얼굴을 가리켰다. 재희는 머쓱하게 자신의 핸드백에서 손거울을 꺼내 머리를 정돈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또각또각또각. 재희의 힐이 소리를 냈다.


쯧쯧쯧. 다움필라테스 홍보원이 혀를 찼다.
 




또각또각또각.

재희가 3층에 위치한 다움필라테스센터를 올려다봤다. 어디에선가 담배 냄새가 겨울의 얼얼하게 찬 공기와 섞여 날아와 재희의 코를 건드렸다. 냄새가 날아온 방향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건물 1층 한쪽의 골목길 초입에 마련된 흡연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건물을 포함한 블록 전체가 구청에서 지정한 금연 구역이지만 흡연자들의 의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금연 구역 스티커가 붙은 벽 앞에 흙을 담은 18리터짜리 식당용 철제 식용유 통을 갔다 놓고 담배꽁초 쓰레기통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이 하도 담배꽁초를 골목길 아무 곳에나 버리자 건물 경비원이 갔다 놓은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철제 식용유 통을 누가 갔다 놓았건 간에 사람들은 여전히 담배꽁초를 골목길 사방에 흩뿌려놓았다. 철제 식용유 통 바로 근처의 바닥에도 수도 없이 떨어져 있었다.


그 담배꽁초의 무덤에서 한 앳된 얼굴의 여자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찬 공기에 오래 노출되었는지 빨갛게 상기되어있었고 그녀의 옆에는 다움필라센터 홍보용 플래카드와 배가 불룩한 검은 백팩이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카톡.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스마트폰을 확인 한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두 엄지손가락으로 신나게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그녀의 스마트폰 배경화면에는 강렬한 햇빛 아래 넘실대는 바닷물을 바라보는 야자수들 사진이 걸려있었다. 특이하게도 야자수들이 모래사장이 아닌 바닷물 안에 빼곡히 자리하고 있었다.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차가운 공기에 코를 훌쩍였다. 그녀는 백팩을 열어 모두 똑같은 문구가 적혀있는 물티슈들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코를 닦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제 이 추위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녀는 따뜻한 섬나라로 가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녀는 그 섬나라에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녀는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너무도 싫었다. 사실 꼭 그 섬나라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그저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했고, 때마침 이곳의 날씨가 너무도 추웠고, 때마침 이 365일 따뜻한 섬나라에 대해 알게 된 것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지를 정하기도 전부터 탈출을 위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별다른 학력과 경력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은 제한되어 있어 이런저런 단기 알바를 전전하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 출판사의 신간 가이드북 홍보 팸플릿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백 장씩 같은 사진이 프린트된 팸플릿을 사람들의 손에 건넸다. 강렬한 햇빛 아래 넘실대는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는 야자수들 사진이었다. 다른 클리셰적인 해변가 사진들과 다른 점은 야자수들이 모래사장이 아닌 바닷물 안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가이드북은 초판 인쇄를 마지막으로 절판되었다. 초판 인쇄본조차 다 팔리지 않아 창고에 수두룩하게 쌓였다. 길거리에서 팸플릿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요즘 누가 가이드북을 사? 스마트폰 검색하면 다 알 수 있는데? 요즘 여행 관련 어플이 얼마나 잘 되어있는데?


책은 쓰인 시간에 머문다. 가이드북이 어플과 인터넷에 밀리는 이유다.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 묵혀진 깊은 지혜와 지식이 아닌, 실시간 업데이트된 현지 정보들이다.


또 요즈음은 대부분 방송사와 항공사, 여행사가 일사불란한 협동 작전으로 사람들을 비행기에 밀어 넣는다. 방송사에서는 여행 예능 프로를 통해 아름다운 연예인이 아름다운 여행지를 다니는 모습을 아름답게 촬영해서 보여주며 우리 또한 그렇게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그 예능프로에서 채널을 조금만 돌리면 홈쇼핑 채널에서 같은 여행지의 관광 패키지 상품을 판매한다. 아름답게 생긴 쇼호스트는 말한다. ‘우리 자식분들, 고생 많이 하신 우리 부모님들한테 이번 기회에 꼭 효도 관광 보내드리세요!’ 부모님들은 생각한다. ‘암. 그럼 그럼. 우리도 이제 자식 덕 좀 봐야지. 아들아! 딸아!’


젊은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기는 사실 더욱 간단하다. 그저 아름다운 사진이나 짧은 영상과 함께 #을 여러 번 타이핑하면 그만이다.  #여행 #핫플 #여행지추천 #숙소추천 #힐링 #여행마렵다


그녀는 마지막 근무 날 가이드북을 다섯 권 받아왔다. 출판사 직원이 원하면 더 가져가도 된다는 것을 공손히 거절했다. 그녀는 그 다섯 권의 가이드북들 중 한 권은 냄비 받침으로 사용하고, 두 권은 컴퓨터 모니터 받침으로 사용하고, 한 권은 컴퓨터 마우스 손목 받침으로 사용했다. 그래도 한 권이 더 남아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가이드북을 읽기 시작했다.


책의 작가 이름이 재희였다. 남자 이름 같기도 하고, 여자 이름 같기도 한 중성적인 이름이었다. 작가는 책의 소개 페이지에 자신이 이 나라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왜 거의 지구 정반대 편에 위치한 이 나라에 가서 살게 되었는지 등을 적어놓았다. 작가가 이 섬을 발견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에 의해서였다.


작가는 원래 한 무역회사의 해외 영업원이었다. 이 무역회사는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부품을 수입하는 회사였다. 반도체를 제조하는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어 이 무역회사의 규모 또한 작은 편은 아니었다. 작가가 이 먼 외딴 섬나라에 도착하게 된 계기는 조국의 정치 외교적인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재희 씨의 조국은 근처의 한 나라로부터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부품을 수입해서 사용해왔다. 그들로부터 완성된 부품을 수입했기에 그 부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 따위는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치 외교적인 문제로 인해 그 나라와 관계가 단절되었고, 연쇄적으로 부품 수입로 또한 차단되었다. 확보해 둔 부품의 양이 얼마 되지 않던 이 회사는 급하게 다른 루트를 통해 부품을 수급할 방법을 찾게 되었다. 다른 멀리 있는 나라를 통해 부품을 수입할 수도 있었지만 그 어떠한 나라도 그동안 거래를 해 온 나라가 생산해낸 부품 품질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했기에 좋은 대안은 되지 못하였다.


장장 10시간 동안의, 회사와 국가의 운명을 건, 운영진의 논스톱 회의를 통해 중요한 결단이 내려졌다. ‘국내에서 자체로 중요 부속품을 생산한다.’ 그들에게는 충분히 그 부속품을 생산해낼 능력이 있었고, 그동안은 그저 얼키설키 엮인 정치적, 외교적 관계에 의해 과거부터 지속되어 오던 거래 관계를 유지한 것뿐이었다. 이제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이상 자급자족하기로 결정이 내려진 것이었다. 기술도 있고, 인력도 있고, 가동 가능한 공장도 전부 준비되어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반도체의 중요 부속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아주 질 좋은 광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거래 대상이 필요했다.


이 가이드북의 작가인 재희 씨는, 당시 해외 영업원이었던, 기업과 국가의 명운을 짊어진, 마치 수세기 전의 콜럼버스가 그러했듯이, 위대한 발견을 위한 길을 떠나게 된다. 재희 씨는 이 광물이 대체적으로 남쪽의 고온 다습한 더운 지방에서 자주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재희 씨의 몸을 실은 비행기는 마치 버스를 갈아타듯 여러 번 바뀌어가며 장장 20시간에 달하는 시간이 흘러 마지막 목적지인 섬으로 들어가기 위한 작은 경비행기로의 환승만이 남게 된다.


이곳은 여러 작은 섬들이 모여 군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세계 제1차 대전에나 사용했을 법한, 아직 기술이 부족해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손에 들고 던지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던, 간헐적으로 검은 기침을 쿨럭이는 경비행기에 몸을 실은 재희 씨는 저 멀리 보이는 검은 구름 때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된다. 하지만 다급한 상황인 조국의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괜찮을 거라 자신을 안심시켰다.


추락한 경비행기, 다행히도 베테랑 조종사 덕분에 승객 전원이 큰 부상 없이 생존했다. 승객 인원 전부라고 해봤자 조종사를 포함해 4명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그들이 비상 착륙한 해변가, 재희 씨는 이보다 더욱 아름다운 해변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해외 영업원이라는 직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정말 수 없이 많은 나라들을 경험했고, 수 없이 많은 아름다운 해변들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해변도 그들이 비상 착륙한, 태풍이 휩쓸고 간 이 해변보다 아름다운 곳은 없었다. 강렬한 햇빛 아래 넘실대는 붉은빛의 바닷물을 바라보고 있는 야자수들이 길게 늘어진 해변가에는 파란색 모래가 가득했다. 그렇다. 바닷물이 붉은빛이고 모래사장이 파란색이었다. 강렬한 태양열에 달구어진 뜨거운 파란색 모래사장 위로 차가운 붉은빛의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열을 식히고 다시 밀려나갔다. 재희 씨는 목에 걸려있던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사진을 통해 보자 바닷물 위에 야자수들이 자리한 듯했다.  현지인 조종사는 말했다, 현지인들은 이 섬을 저주받은 해변이라 부른다고, 과거 부족들 간의 전쟁으로 인해 분노한 신이 바다와 모래사장을 뒤 바꿔 인간이 서있을 땅을 빼앗아 갔다고. 재희 씨는 생각했다, 이제 재희 씨의 인생은 완전히 뒤 바뀔 것이라고, 신이 내려주신 기회라고.


재희 씨와 일행들은 금방 구조되었고, 재희 씨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재희 씨가 돌아온 한국은 이미 반도체 부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광물이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되어있었다. 두 국가의 정상이 서로 만나 화해를 했고, 모든 수출입이 정상화되었다고 했다. 재희 씨는 생각했다, 초등학생들도 서로 다투고서는 그렇게 빠르게 화해하지 않는다고.


더 이상 국가의 명운 따위를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 재희 씨는 사표를 내고 저주받은 해변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저주받은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한 호텔에 머물며 해변과 섬 전체를 샅샅이 경험했다. 붉은 바닷물의 향기를 만지고, 태양열에 달구어진 파란 모래사장의 온기를 맡고, 야자수 그늘 아래 시원하게 굽이 치는 바람을 보았다.


육지와 바다가 뒤 바뀐 저주받은 해변의 운명이 재희 씨의 가슴속에 숨어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마치 하루키의 가슴속 숨어있던 총의 방아쇠를 당겼던 1978년 4월 도쿄의 맑은 하늘을 날아가던 야구공처럼 말이다. 이미 발사된 총알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총알은 쉬지 않고 날아가 자신의 목적지에 가 닿을 것이다. 이제 재희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 날아가는 총알이 어디에 가 닿을지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코를 막아도 해변의 전경과 파도의 소리와 바다의 짠내를 느낄 수 있게 된 재희 씨는 호텔 방에 자신을 가두었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 위해 동굴에 들어가 쑥과 달래만 먹었듯이 새 사람이 되고자 두문불출하고 글만 쓴 재희 씨는 대략 3개월 후 원고지 1000장을 곱게 엮어 동굴 밖을 나선다. 하지만 그 원고지는 다시 동굴 속에 처박혀 다시는 햇빛을 보지 못했다. 그의 원고를 읽어 본 출판사 직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흠… 이 섬에 대해 가이드북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요? 코로나 이후에 여행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예정이라 가이드북이 돈이 될 거예요. 재희 씨는 우울했다. 붉은 바닷물에 홀로 갇혀 외딴섬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도 이제 거의 떨어져 가 더 이상 섬에 틀어박혀 소설만 집필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재희 씨는 한국으로 돌아와, 창고에 쌓아두고, 라면 냄비 그릇 받침대로 쓰고, 마우스 손목 받침대로 쓰고, 모니터 받침대로 쓰게 될 가이드북을 쓰게 된다.





오늘 홍보 업무를 마친 그녀는 담배꽁초들의 무덤인 철제 식용유 통에 새로운 시체를 무신경하게 던져 넣고 다움필라테스센터 건물로 향했다. 그녀는 재희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날 길거리에서 만난 울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저 낯이 익은 얼굴이라 다움필라테스센터 직원이나 센터를 이용하는 고객 중 하나라 생각했다. 재희 또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 당시 시야를 흐린 안구를 가득 채운 습기와, 자신을 외딴섬처럼 고립시킨 슬픈 감정 탓이었다. 사실 그녀는 자신을 이곳으로 이끈 그 물티슈를 어디에서 받았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태울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양쪽으로 두 팔을 열어젖히며 그들을 자신의 품으로 따뜻하게 맞이했다. 재희가 3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덜컹 거리며 움직였다. 어색한 공기 속 두 사람은 똑같이 주머니에 손을 가져갔다. 스마트폰을 꺼냈다. 얼굴을 전면 카메라에 맞추어 잠금 해제를 했다. 목적 없는 스크롤링을 시작했다. 같은 배경화면 사진의 두 개의 스마트폰을 든 두 사람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하나의 목적지로 향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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