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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Dec 30. 2022

고양이

단편

의미를 찾기 힘든 단순 육체노동으로 하루를 보낸 후 내일 다시 되지도 않는 의미를 붙여가며 남을 위한 노동을 하기 위해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음악을 들을 기분조차 나지 않아 이어폰도 끼지 않고, 고개를 들 힘조차 남지 않아 땅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집을 향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하나, 둘, 하나, 두…


내 발 밑, 더 정확히 말하자면 4차선 도로 옆 가로수 밑, 걸레짝 마냥 버려져있는 피투성이가 된 고양이 한 마리. 심장이 덜컹 가라앉았다. 놀란 심장으로 인해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고,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이 붉어졌으며, 그렇게 괜한 흥분 상태로 고양이를 살폈다. 크게 뜬 두 눈동자에는 움직임이 없었고 피는 이미 굳어 털과 뒤엉켜 있었다. 


근처의 계단에 주저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사파리 창을 열었다.


‘고양이 로드킬 신고’ 


관련 공공기관 부서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네.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시면 사람을 보내 ‘처리’ 후 경과를 문자메시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사무적인 말투에 내심 속상하고 ‘처리’라는 단어가 못내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게 들렸지만 방금 통화한 사람이 하루에 몇 번이나 이러한 전화를 응대할지 생각해보니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졌다. 전쟁통에는 인간의 죽음마저 익숙해지는데 평범한 하루에도 수도 없이 로드킬을 당하는 고양이들의 죽음 따위 그게 뭐 대수롭겠나. 


가만히 앉아서 생명의 온기가 떠난 지 오래인 고양이를 바라보며 그에게 애인은 있었는지, 부모나 자식을 어디에 있고, 혹여나 그들 또한 로드킬을 당하지는 않았을지 하는 괜한 생각들을 하며 그를 ‘처리’해줄 사람을 기다렸다.


그렇게 나의 꼬리의 꼬리를 무는 ‘괜한 생각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닿았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녀의 영향이었다.


고양이를 음흉한 요물이라 생각하는 부모님을 따라 고양이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갖고 자라온 나에게 사실 인간이 가장 음흉한 요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그녀였다.


그녀는 고양이뿐만이 아닌 모든 동물을 좋아했다. 인간들로 인해 고통받으면서도 따져 묻지 못하는 그들을 연민했고, 또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그들에게 의지했다. 


어릴 적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 세상을 떠난 어머니로 인해 일찍이 외로움과 버려짐에 대해 배운 그녀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사람을 간절히 원했고,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동시에 너무도 쉽게 사람을 믿었고, 사람을 차갑게 대하는 동시에 자신의 뜨거운 마음이 들킬까 노심초사했다.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의 날카로운 말들과 시선이 그녀의 여린 마음에 생채기를 하나, 둘씩 남기고 지나가 수많은 흉터들이 되었을 무렵 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흉터들을 따뜻하게 감싸주겠노라 약속했던 나는 오히려 더욱 깊고 선명한 새로운 생채기를 남기고 그녀를 떠났고, 그러한 나의 오만함과 잔인함으로 인해 그녀는 또다시 버려진 고통에 신음했다. 


애초부터 나는 그녀에게 알맞은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은 나 같이 오만하고 감정에 무딘 사람이 아닌 마음이 따뜻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주는 것만큼 그녀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사람. 하지만 사랑은 그러한 계산을 하기도 전에 우리 두 사람 사이에 느닷없이 찾아왔고, 사랑의 눈가림으로 그녀의 오랜 상처들이 잊힐 때쯤 다시 떠나갔다. 아니, 그 사랑은 아직 여기에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바래진 시간으로 인해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그저 한심한 한 남자의 회한에 지나지 않았다. 


띵. 핸드폰이 소리를 냈다.


‘접수된 민원이 많아 업무 처리에 다소 지연이 있을 예정이니 양해 바랍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양이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고는 다시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발걸음은 갈수록 무거워져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계속 걸었다.


그렇게 한 발짝, 한 발짝 나는 조금씩 가라앉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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