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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랑이 변하지 않을 거라 믿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에게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를 만나면서 책도 많이 읽게 되었고, 잠을 일찍 자는 그녀의 수면 패턴에 맞추어서 생체시계도 앞당겨졌다. 그의 옷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가 사놓은 밝은색 청바지와 베이지색 니트가 놓여있다. 원래는 온통 검정색 아디다스 또는 나이키 트레이닝복 뿐이었다. 그의 취향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들을 접하다보니, 입맛과 자주 듣는 음악 역시 변했다. 그는 그녀를 만남으로써 맞이한 변화가 마음에 든다. 사소한 것부터 영향력이 큰 것까지, 그녀로 인해 변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여러 변화를 맞이한 그가 스스로도 놀랍다고 인정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바로 담배였다. 그는 원래 흡연을 했다. 그녀를 만나기 1.5년 전쯤부터 직장 스트레스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한번도 담배를 피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지만 방비엥에서 그녀를 만난 뒤부터 그는 본능적으로 알게되었다. 담배를 끊을 날이 왔다는 것을. 그는 여행 직후 그녀를 부산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담배를 그의 손으로 버렸다. 전자담배와 리필까지 다. 왜냐하면 그녀가 담배를 싫어한다고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사랑을 하면 그런 것쯤은 피부로 느껴지는 법이다.


그는 그녀와 사귀는 단계가 되기 전부터 자발적으로 금연을 시작했다. 담배를 피는 사람은 그녀에게 대시할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그날 이후로 담배를 입에 댄 적이 한번도 없다. 그는 금연에 완벽하게 성공했다. 그가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였다. 그녀를 보면 저절로 도파민이 분비된다. 도파민은 니코틴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사랑은 담배가 주는 순간적인 스트레스 완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랑은 폭발적이고 세상을 뒤집어버린다. 세상을 뒤집는 파괴력에 니코틴은 당할 바가 못된다. 그는 뿌듯하게 말한다. 담배를 끊을 만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고. 그는 자신있게 말한다. 그 여자를 담배를 끊을 만큼 사랑한다고.


그녀는 그의 세상을 가뿐히 뒤집었다. 그녀로 인해 그의 세상이 바뀌었다. 그는 그 변화가 진심으로 마음에 든다. 그녀와 함께라면 앞으로도 멋진 미래를 맞이할 것이다. 그녀는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역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녀와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연애는 더 나은 변화의 계기였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었다. 희망과 기대감, 설렘과 믿음이었다. 그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그녀에게 청혼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장난스럽게. 다양한 버전으로 그녀에게 꾸준히 결혼하자고 얘기했다. 우리 결혼하자.





그녀에게 연애란 불안함이었다.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녀는 5년의 긴 첫번째 연애를 끝내고 깨달았다.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사랑은 변하는 것이구나. 그녀는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자는 말이 얼마나 의미 없는 소리인지 배웠다. 미래를 약속하는 달콤한 말들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땐 진심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라는 말 한마디로 책임을 면피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책임이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잔인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별한 다음에는 왜 나한테 그런 약속을 했냐고 따질 수 조차 없다. 순진하게 그 말을 믿은 사람만 바보가 된다. 그녀는 연인끼리의 미래에 대한 약속을 100% 믿으면 안된다고, 결국 나만 상처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녀가 그를 만났다. 어느 날, 그는 그녀의 머리를 넘기면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가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면서 미소지었고, 그의 볼에 보조개가 패였다. 그녀 역시 이야기를 멈추고 말 없이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온 우주 속에서 그와 그녀 둘 뿐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온 마음을 다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평생 그 느낌을 누리게 해줄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살다보면 인생의 진주알 같은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 순간은 몇년이 지나도 뇌에 각인되어 계속해서 이따금씩 떠오른다. 소름 돋게 아늑하고 포근하며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따스하고 평화로운 순간. 보석 같은 순간.


그가 포근한 침묵을 조심스럽게 깨며 말했다.

"언젠가, 나랑 결혼하지 않을래?"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그가 너무 진지한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새침하게 '생각해볼게~ 하는 거 봐서~'라고 얼버무리며 웃어넘길 수 없었다. 그건 반칙이었다. 그의 진지한 물음에 그녀도 예의를 갖추어서 진심으로 대답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진주알 같은 순간이었다. 그가 환하게 웃고, 그녀도 그를 향해 웃고,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그녀도 그를 끌어안았다. 살다보면 맞이하는 몇 안되는 그런 순간은 평생 뇌에 각인되어 계속해서 이따금씩 떠오른다.


훗날 그녀가 이전 연애에서 사랑이 변할 수 있음을 배웠다고, 그 경험 때문에 불안하다고 얘기하자 그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난 사랑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거야. 이렇게 사랑하는데 어떻게 식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런 여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 권태기는 올 수 있어. 하지만 그 때 한 사람만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어. 나는 내가 노력하는 역할을 맡고 싶어. 나는 너 같은 여자를 앞으로 다신 못 만날 거라고 확신해. 그래서 널 놓치기 싫어. 놓치기 싫어서 불안해서 자꾸 결혼하자고 말하는 거야."

그녀는 그렇게 말해주는 그가 고마웠고, 불안하게 느끼는 자신의 마음이 미안했다. 그는 그녀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느껴져서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녀는 사랑이 변할 수 있으니까, 그 가능성이 존재함을 배웠으니까, 상처받기 싫은 방어기제로 그를 소극적으로 사랑했다. 혹시 사랑이 변해서 그가 그녀를 떠났을 때, 조금만 슬퍼하다가 털어낼 수 있게. 하지만 그는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냅다 밀고 들어온다. 도무지 막아낼 도리가 없는 그런 사랑이었다. 그녀는 그녀도 모르게 그를 깊이, 정말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이 깊어지면 불안도 깊어진다. 그녀는 그가 그녀를 떠난다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고일 것 같다. 그녀가 불안해할 때마다 그는 자신이 노력할 거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는 항상 그녀 옆에서 믿음을 주었고, 안정감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


그녀는 삶에서 '절대로, 반드시, 무조건'은 없다고, 그러므로 함부로 그런 부사어를 사용해서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그녀에게 보란듯이 '절대로 사랑해'라고 말한다. 개구진 그의 눈빛과, 그의 확신이 그녀에게 전염된다. 그녀의 세상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뒤집어진 세상에서 그녀는 그와의 미래를 상상해본다. 진주알 같은 순간이 무수히 많이 찾아올 거라는 확신이 생긴다. 그래서 그녀는 개구지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사랑은 변할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가능성 조차 허락하지 않고 믿음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녀가 진주알이라고 느끼는 순간엔 항상 그도 진주알이라고 느낀다. 감정의 주파수가 맞고 삶의 결이 일치한다. 싱크로율 100%다. 그런 사람을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백명 중의 하나 아니, 만명 중의 하나.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바라봐주길 바라는 그런 눈빛으로 바라봐주는 사람. 그녀에게 관심과 인정과 사랑을 주면서 그녀를 응원해주는, 그래서 그녀의 포텐을 터트리는 사람. 행성을 품은 사랑으로 엄청난 에너지로 그녀 인생에 나타나서 들이받고는 세상을 뒤집어버린 사람. 시작의 모습을 예상할 수 없었지만 거기서 그렇게 만나, 수많은 만약에 가능성을 뚫고 이어진 기적 같은 인연. 그래서 그녀는 개구지게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우리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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