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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Jan 26.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1) “나는 프러포즈 받을 거야.”

1장: 프러포즈, 결혼의 시작

“나는 프러포즈 받을 거야.”


‘왜 프러포즈는 남자가 해야 하는가?’. 10대부터 가져온 의문이다. 어쩌면 일생의 한 번뿐인 특별한 순간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윽고 입영통지서를 받아 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비롯해 현실에서도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을 많이 본 탓일까. 이유 없는 반발심이 생겼다. 지금의 아내(구 여자친구)는 이 이야기를 듣고선 “어릴 때부터 반항기가 다분했다”고 핀잔을 줬다.


국내에서는 상호 간 결혼을 협의한 상태에서 프러포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당사자끼리 결혼을 약속한 뒤 양가 허락을 받은 뒤에야 절차가 진행되는 셈. 친누나 중 한 명이 “나 프러포즈 받으러 간다”고 전하는 들뜬 목소리는 3분 전 일처럼 잊히지 않는다. 절차와 의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프러포즈에서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20세에 골똘히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으로 ‘프러포즈를 여자에게 받아보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적지 않은 시간 간직한 생각은 아내를 만나면서 물거품이 됐다. 아내와 연애할 당시 프러포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데, 본인도 프러포즈를 받고 결혼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사실 필자는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할 계획이었으나 아내를 만나 결혼을 결심한 만큼, 프러포즈를 받아보겠다는 다짐을 반드시 지킬 생각은 없었다. 이 여자와 결혼하려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다만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깜짝’ 프러포즈해야겠다, 다짐했다.


고민이 시작됐다. 수중에 가진 돈이 많지 않으니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상대방도 눈치채지 못하는 계획이 필요했다. 호텔 방을 꾸미는 일은 진부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눈치 빠른 그녀는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계획을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영화관 프러포즈는 100만원을 훌쩍 넘었고, 요트나 레스토랑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는 들킬 것만 같았다. 고민을 거듭하고 여러 조언을 받은 뒤 ‘라디오 사연’ 프러포즈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라디오 사연 프러포즈는 업체에 편지를 써서 보내면 이를 라디오 형식처럼 꾸며 다시 파일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앞에 광고가 2개 정도 붙고, 아나운서 톤을 가진 DJ가 내가 쓴 편지를 읽어준 뒤 미리 업체에 귀띔한 신청곡이 흘러나오는 구성이다. 장기 연애 끝에 결혼한 친구가 이 방법을 썼다고 했다. 잠시 차를 세워둔 뒤 흡연을 핑계로 자리를 떠 여자친구 혼자 남겨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비흡연자인 필자는 운전하다 핑계를 대고 잠시 주차한 후 파일을 재생하겠다는 계획을 구상했다.


당시 차가 없었던 터라(지금도 내 명의의 차는 없지만) 차량 공유 플랫폼에서 승용차 한 대를 빌리고 아내 본가로 향했다. 트렁크에는 꽃 한 다발과 그녀가 마음에 든다고 했던 반지를 넣어뒀다. 식당을 향하다 차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며 주차하고 파일을 재생시킬 예정이었다.


그런데 실제 공기압이 낮다는 화면이 계기판에 표출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차를 점검하는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공기압이 낮아 차를 반납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10월 말의 어느 날, 날씨가 추워지면 공기압이 다소 낮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초보운전 시절. 본래 좀 더 인적이 드물고 차도 없는 주차장에서 프러포즈하려고 했으나 뜻밖의 결함으로 차를 빌렸던 주차장으로 향했다.


공유 플랫폼 직원과 통화하며 밖으로 나오면서 파일을 재생했다. 비장의 수였지만 아내는 “시끄러우니 라디오는 끄고 나가라”고 말했다. 차 반납과 프러포즈를 동시에 해야 하는 상황, 일단 “잠시 듣고 있으라”며 밖으로 나가 직원과 통화를 이어 나갔다. 통화가 길어지면서 차 안에서 혼자 사연을 듣는 그녀를 힐끔힐끔 바라봤다. 6분 정도 흘렀을까. 직원은 자신이 차량을 반납하려고 하니 짐을 차에서 모두 꺼내라고 했다.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다른 손으로 트렁크에 준비했던 꽃다발과 반지를 챙겨 그녀에게 나오라고 손짓했다.


눈물을 훔치며 그녀가 내렸다. “신청곡은 듣지도 못했어. 주차장에서 프러포즈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래도 고마워. 이런 건 언제 다 준비했대?”


“일단 집에 가서 반지 한 번 껴보고 밥 먹으러 가던가 하자. 집가서 꽃다발 들고 사진도 찍고 해야지.”


어리숙하게 진행됐지만 눈물을 빼는 데는 성공한 첫 프러포즈. 프러포즈를 먼저 받고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끝까지 지키진 못했지만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서 먼저 해주는 것에 대한 기쁨을 어렴풋이 깨닫기도 했다. 인생에 한 번뿐인 일이라는 마음으로 꽃다발을 알아보고 그녀가 원하는 반지를 찾아 백화점을 뒤졌지만 이미 경험해 본 사람으로 다시 해보라고 하라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하고 싶진 않다. 결혼은 첫 관문부터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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