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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eok Feb 18. 2024

파혼할 뻔했습니다(4) 죽었다 깨어나도 '답'이 없다

2장: 불면증의 시작

죽었다 깨어나도 '답'이 없다


작은 이벤트가 성공리에 끝나자 거대한 현실이 찾아왔다. 신혼집을 어디로 구할 것이냐, 라는 난관에 봉착했다. 그간 여자친구(현 아내)와는 지하철역 1개 거리로 ‘지옥철’로 악명 높았던 9호선 라인에 살고 있었다.      


“결혼하면 다른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어! 지금 동네는 너무 오래 살아서 새롭지 않잖아!”      


명랑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와 달리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나마 지금 사는 동네가 대출받더라도 ‘괜찮은’ 상태의 집을 구할 수 있었다. 으리으리한 커뮤니티 시설과 깔끔한 지하주차장, 빌트 인 에어컨 등 옵션이 잘 갖춰진 집이 아니라 연식은 오래됐지만 깔끔한 아파트(또는 오피스텔) 말이다. 지도를 조금만이라도 서울 안쪽으로 돌리면 매매가만 7억, 8억, 9억, 10억원…. 세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자기 어머님, 아버님 가까이 있는 지금 동네가 좋지 않을까? 본가 가기도 좋고 9호선 급행 타면 이동하기도 빠르니까! 다른 동네도 한 번 알아는 봐볼게.”     


시기도 좋지 않았다. 눈만 감았다 뜨면 집값이 올라 있었다. 서울 중심부가 아닌 동네인데도 그랬다. 2019년 거주하던 오피스텔 옆 아파트 단지도 6억원대에서 시작해 2022년에는 10억원대에 거래됐다. 처음부터 아파트 입성도 무리였는데 점차 쳐다보기도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돈 이야기가 나왔다. 서울이 본가인 아내와 지방에서 공무원인 부친 밑에서 자란 나의 자산은 격차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열심히 벌면서 아끼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나와 달리 아내 집안은 재테크나 투자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도 높았다. 십수년간 다른 가풍으로 살았던 우리처럼 돈도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나지막이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모아둔 돈 3000만원이랑 지금 집을 정리하면 좀 더 나올 여지는 있을 거 같아. 부모님께도 한 번 이야기해 볼게.”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일한 기간도 길고 재테크 등으로 돈을 착실히 불려 온 여자친구로서는 예상 밖 답변이었으리라. 더 중요한 건 둘의 (예상)자금을 합치더라도 매매는커녕 전세금도 충당하기 부족했다. 많은 신혼부부가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꾸린다고 하지만 이를 달가워할 이는 많지 않다. 상황을 모면하고 본격적으로도 집을 알아봐야 했다.      


“일단 내가 한 번 리스트를 만들어 볼게.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 보자.”


결혼 이야기 운을 떼고 난 뒤 화제가 ‘집’으로 넘어오자 밤잠을 설친 날이 많았다. 포털 사이트에서 서울 곳곳의 집을 보느라 새벽 4시에 잠들기 일쑤였다. 더군다나 당시 다른 대출이 있어서인지, 연봉이 높지 않아서인지 전세대출도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자연스레 5억원대 매매를 생각했다. 5억원 이하는 디딤돌 대출이 가능했으므로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녀의 자산에 디딤돌 대출을 받으면 어렵더라도 가능할 것 같았다. 오피스텔도 아파트보다 대출이 잘 나왔으므로 하나의 선택지였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비교적 깔끔한 단지, 지하철역과 가까운 단지를 찾았다. 오피스텔과 아파트를 가리지 않았고, 당시 자동차가 없었으므로 지하철역에는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 편이 적당했다. 가장 중요한 건 홀로 1억 초반의 자산에 각종 대출을 최대로 받아 5억원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했다.


구파발의 오피스텔, 인천 검암과 김포 고촌의 구축 아파트, 구로디지털단지의 오피스텔 등. 선택지가 몇 없었다. 서울 근교의 경기도까지 샅샅이 훑어보니 약 20개의 후보지가 나왔다고 그녀에게 전했다.     


“리스트 만들었다고? 그럼 이번 주말에 같이 봐보자. 보면서 이야기하자.”      


과연 그녀의 마음에 드는 곳이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먼저 결혼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집을 어떻게 해결했냐고. 대부분이 “부모님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6년째 전세로 사는데 양가에서 지원받아서 4억원 만들어서 시작했지. 그때는 4억이면 서울 외곽 아파트 샀는데 차라리 그렇게 할 걸 그랬어. 괜히 경기도로 빠져가지고…. 지금은 서울 들어가지도 못하잖아.”     

지방에 사는 친구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여기는 집값이 서울 정도는 아니잖아. 나도 부모님께 7000만원정도 받았지. 지금도 자가는 아니야. 나중에 집값 떨어질 거 같아서 일단 전세로 들어갔어. 서울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두 바퀴(4년) 정도 돌면 집값 더 내려가지 않을까. 나는 지방인데도 집 때문에 '결혼 하지 말자'는 말까지 나왔다. 아내가 내 월급으로 전세 대출받은 거 갚고 생활비 내면 너무 쪼들린다고 얘기했었거든. 다른 지역에서 내가 사는 곳으로 오니까 직장 잡기도 힘들고 나 혼자 벌어야 하는데 이걸로 둘이 어떻게 사냐고 해서 파혼할 뻔했지."


로맨틱하게 첫 단추를 끼운 결혼은 신혼부부들. 상당수가 죽었다 깨어나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집값에 속앓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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