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대자연(마지막편)
녹슨 철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철문을 안쪽으로 살짝 밀면서 수인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오랫동안 비어진 줄 알면서도 남의 집에 몰래 침입하는 것마냥 눈치를 보게 되었는데, 한동안 굳건히 닫혀있었을 녹슨 대문에 가만히 손을 대고 어쩌면 알수도 있는 사람들의 역사가 응축된 누군가들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인은 집에 들어서기 전 자신에게 유일한 어른으로 기억되는 꼭 외할머니 같았던 그녀의 집과 제멋대로 동기화해보았다. 수돗가 옆 1인 생활자의 단촐한 세간살이를 상징처럼 보여주던 장독대 한 개와 툇마루 위 놓여진 검다시피한 나무의자에 뒤꿈치를 들고 앉아 계시던 외할머니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을 이루던 집이었다. 담벼락 아래 놓여진 넓다란 고무수조엔 노란 수련이 둥둥 떠있었는데 외할머니집에서 그것은 유일한 유채색이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풍경이었지만 수인은 최근까지 미진의 엄마가 살았다는 미진의 외할머니집에 들어서며 다시금 그때의 장면이 눈 앞에 재생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천천히 오른다리를 들어 금방이고 아스라질 것 같은 녹슨 문틀을 넘어 섰을 때 그녀보다 먼저 들어와 터를 잡고 있던 노란 들풀이 수인의 발목을 잡아끌었다. 수인은 환영받는 기분으로 담벼락과 기억자 형태로 세워진 개량된 한옥집 사이 대여섯평 남짓한 작은 마당에 제멋대로 자라난 노란 들풀 무리를 철없이 감탄하며 바라다보았다. 외할머니집 세간살이와 영 딴판이던 노란색 수련을 낯설게 그리하여 호기심 어리게 들여다보던 것처럼. 그리고 눈에 들어온 건 마당 한 켠 버려져 용도를 알 수 없는 세간살이였지만 수인의 시선을 더 오래 끈 건 그 뒤 하얀 꽃을 피우고 길다랗게 하늘거리며 꽃처럼 서있는 작은 나무였다. 실제 매화는 아니었지만 이 집을 들어설 때 분명히 풍기던 흡사 매화 같았던 향기의 출처. 누구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갸륵하게 살아있는 것들.
수인은 들풀을 발목으로 헤치며 가로질렀다. 낯선 이의 버려진 집 그러나 재건의 가능성과 희망이 끝내 접히지 않은 마당의 한가운데로. 훤히 맨살을 드러낸 발목이 간질거렸다. 마당 한 켠 쌓여있는 것들은 한 눈에 봐도 제 자리를 잃은 지 오래돼 보였다. 밑바닥을 드러내고 뒤집혀있는 이동식 욕조는 검푸른 곰팡이로 뒤덮여 멀리서 보면 봉분처럼 보였다. 등받이 부분이 부서진 빨간 플라스틱 의자 위엔 먼지가 진득하게 앉았다. 그 주변으로 대형 고무 다라와 검게 타 그을린 드럼통, 자바라기름통 그리고 관공서에서 받아온 철지난 달력 등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2017년 11월 그날을 지시하는 범행현장의 증거물처럼 의도적으로 놓여져있다. 수인은 꼼짝없이 서서 쓰레기더미 속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을 꺼내어보듯 정성스럽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더미 깊은 곳에서 반짝거리는 물체에 정신이 팔렸다. 결정적 증거를 발견한 경찰관처럼 눈을 반짝이며 반짝거리는 것에 한없이 가닿을 것처럼 천천히 손을 뻗었다. 툭. 그때 안중에 없던 방향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수인이 고개를 돌렸을 때 처마 어디선가 뛰어내린 것으로 보이는 길고양이 한마리가 툇마루 위 유연한 곡선모양으로 서서 부러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자신을 내다보고 있었다. 작은 치타 같기도 한 흙갈색 줄무늬를 가진 한국고양이였다. 수인은 이 빈 집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살아움직이는 다른 생명체에 새삼 놀라지 않았다. 집터를 관장하고 있던 이 생물체는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앞을 응시하며 느리게 움직이더니 툇마루에서 내려와 노란 들풀 속을 기어서 집터의 반대편 담벼락을 넘어 사라졌다. 외부침입자의 등장으로 생태계에 작은 소동이 일어난 후 수인의 시야에 그제야 툇마루 위 덩그러니 놓인 동그란 방석 두 개가 들어와 보였다.
대공사를 앞두고 철거업자와의 마지막 딜을 위해 황급히 자리를 비운 미진이 방문객을 위해 마련해둔 임시 좌석인 것 같았다. 수인은 길고양이가 버티고 섰던 툇마루쪽으로 다가가 미진이 정리해둔 툇마루 위에 걸터앉았다. 에코백에서 다이소에서 산 천원짜리 손수건을 꺼내 헤어라인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꾹꾹 찍어눌러 닦아냈다. 그리고 삭막한 시멘트 담벼락 대신 이동식 욕조와 고무다라로 만든 화단이 놓여지고 지글지글 타오르는 드럼통 화덕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조용히 하루를 정리하는 동안 미진이 자바라기름통을 들고 나르며 기름보일러의 연료를 채우는 상상을 해보았다. 미진의 계획에 따르면 이 집터는 한 사람을 위한 생활공간이 아닌 무진의 여행자들을 위한 레지던스로 재탄생할 운명에 놓여있다. 무진시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미진의 외할머니댁은 한 때 중심지였다가 현재는 주변부로 밀려난 지역이었다. 산업단지가 크게 자리잡은 광영시와 성진시 등 두 시와 맞닿은 무진의 경계로 아파트 단지가 생긴 후 이곳은 자연스럽게 구도심이 되었다고 미진은 말했다. 쇠락해가는 구도심으로 이 빠진 자리에 구멍을 메우듯 빈 점포를 개조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시청 주변은 소위 핫플레이스로 부상중이었는데 이런 소도시 관광을 위해 찾아오는 여행객을 타켓으로 한달살이와 같은 장기 레지던스 숙소를 운영해볼 생각이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수인은 꼭 자신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공사를 맡길 업체 선정에 골머리를 앓던 미진이 할머니의 세간살이와 누군가 버리고 간 잡동사니들이 뒤섞인 쓰레기라도 슬금슬금 정리해야 진도가 나갈 것 같다고 울상일 때 청소를 돕겠다 자청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발 딛고 서기도 싫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운 폐가라고 평가절하하며 먼 길 찾아주신 손님은 좋은 것만 보고 즐겁게 있다 가라고 미진이 손사레를 치며 만류했지만 수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마당 안으로 곧 여름이 들이닥칠 것 같았다. 칙칙한 시멘트 담벼락 위 흔들리는 초록빛들에서 광채가 났다. 손이 자연스럽게 이마 위로 올라가고 눈이 스르르 감겼다. 수인은 다음에 올 때 고양이 간식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눈을 감자 더 분명하게 느껴지던, 코 끝에 시시하게 걸려있던 콧바람 같은 끝물 봄바람처럼 수인은 다음이라는 단어에 잠시 머물렀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이 부셨다. 빛이 눈 앞에서 찬란하게 산란했다.
“예 한 개 밖에 없는 꽃나무요. 고갱나무. 바깥양반이 인상을 팍 쓰면서 쫍은 마당에다 쓰잘데기 없는 거 심는다고 잔소리를 혔쌌는데 내 우개서 심었지요. 남들 잘 안 심는 관상용인데 낭중엔 그 양반이 더 좋아라합디다”
눈을 감았을 때처럼 스르르 눈을 뜬 수인이 인기척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하얀 빛과 함께 툇마루 위에 두 손을 괴고 앉은 노파가 보였다. 꽃무늬 내의 위에 하얀 모시저고리를 받쳐입은 그녀는 수인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하얀 꽃나무를 멀리 내다보며 질겅질겅 말했다. 말할 때 마다 움뿍 패인 볼이 파닥거렸다. 낭패감으로 켜켜이 인이 배긴 노파의 옆 얼굴은 평화로웠고 제자리로 돌아온 고양이처럼 별스럽지 않았다. 고갱나무. 수인은 매화향이 나던 꽃나무이름을 노파가 발음한 대로 나직하게 따라 읊조렸다. 수인은 어쩐지 노파가 미진의 외할머니처럼 생각되었다. 노파는, 원망과 그리움이 동전의 양면처럼 달라붙은 기억의 단상을 이따금씩 꺼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수인의 외할머니와도 닮았다. 그리고 또한 오래된 고광나무 한그루 같기도 하다.
“오널 유독 향이 진허요”
잔뜩 꽃을 피운 고광나무에서 시선을 떼고 공기 중 떠도는 꽃향기의 궤적을 좇는 듯 허공을 응시하며 노파가 말했다. 수인이 오기 전부터 쭉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노파에겐 시간의 공백이 없다. 이날 고광나무의 매화향은 유독 진했다.
“찾아와줘서 좋은가봐요”
수인이 노파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허. 그런갑소. 그 맴키로 가새 살자요. 그 맴키로”
웃음도 울음도 잃은 얼굴근육과 상반되게 노파의 두 다리가 툇마루 아래 디딤석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거렸다. 언뜻 탄식 같기도 한 노파의 웃음소리가 수인의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울려댔다.
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