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카세

중편소설 - 대자연 ⑭

by 수빈조

“참말로 오랜만에 왔다요. 바빴는갑소잉?”


찬을 내려놓으며 미진이 말한 ‘쥔장’ 그러니까 내우지간이 한다는 식당 주인 중 한사람으로 보이는 여자가 말했다. 나인은 식당 주인장이 힐끗거리며 자신의 낯을 살피는줄도 모르고 벽에 걸린 메뉴판을 읽어보다가 테이블에 차례대로 내올려진 찬들을 살폈다. 메뉴판에는 복지리와 복탕, 샤브샤브, 찜 그리고 수육 등의 단일메뉴와 코스, 정식요리 등이 빼곡히 적혔고, 테이블 위엔 버너 주변으로 갓김치와 들깨로 볶은 궁채나물이, 그리고 새싹채소 위에 올려진 문어숙회가 놓여지고 있던 차였다. ‘쥔장' 맘대로 요리를 내는 식당이라는 미진의 설명만 듣고 간판도 메뉴도 없는, 단골 아니고선 참아내기 어려운 불친절함으로 가득한 노포집을 떠올렸던 나인에게 다른 의미로 낯선 식당이었는데, 진참복집이라는 메뉴판 상단에 내걸린 식당 이름처럼 이곳이 복요리전문점인데다가 몇 개의 룸으로 이뤄진 식당내부 형태가 그야말로 고급요리전문점 같은 인상이었기 때문이었다. 별도 주문도 없었으므로 메뉴판에 쓰여진대로라면 코스요리 혹은 정식요리 중 하나일거라 짐작하면서 수인은 인당 2만5천원짜리 정식요리이길 바랐다. 코스요리는 정식 가격의 배였고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미진은 이 집에 당도하기 직전 오늘까지만 자신이 사는 거라고 엄한 얼굴로 엄포를 놓듯 말했다.


“할매집 치니라 정신이 하나또 없어라”

“만만찮은 일을 시작혔소. 손댈 것이 많제라?”

“오래 비워놔서 그렁가 아주 성가시게 생겼구만요”

“으쩌겄소. 고향왔는디 살던 데서 살아야제"

“그라죠”

“오늘 병어가 좋아서 가져왔응께. 조림 쪼까 해불라고”


미진이 능숙하게 주인장과 말을 주고받았다. 능숙하게라기 보다 심상히 보는 이웃사촌지간처럼 자연스럽다는 말이 더 맞았다. 이들의 대화는 간혹 혼잣말 같았고 첨언이나 북돋는 말 따위가 없었다. 수인은 내우지간이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주인장이 말을 끝내고 서둘러 룸을 나간 뒤 미진이 억양을 바꿔 저 언니가 크게 아픈 뒤로 복집에서 계절요리집으로 바뀌었다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그 설명이 없었더라면 수인은 계속 복집에서 병어조림을 먹은 것으로 기억했을 거였다.


얼마 안돼 주인장이 트롤리를 끌고 들어와 냄비 하나를 버너 위에 올려두고 나갔다. 냄비 안에는 갖은 채소와 함께 본래의 피부색을 그대로 드러낸 병어 두마리가 몸에 칼집을 내고 붉은 국물에 잠겨 있었다. 곧이어 식당 주인은 작은 전기그릴 하나를 들고 들어와 지글지글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계란물을 씌윈 재료들이 기름을 두른 전기그릴 위에 차례로 놓였다. 금방 방 안에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수인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전기그릴 위로 향했다. 그녀가 누군가를 위하여 룸 안팎으로 조용하고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동안 미진의 말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텃밭이나 해보려고 시작했던 일이 커져 농업학교까지 다니게 된 사연과 같은 이야기였고 하루이틀이 아니라 한달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와 지역에 있어 보라는 권유도 틈틈히 잊지 않았다. 이곳에도 할 일이 적지 않으니 무료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 전수도 함께.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전을 부치던 식당 주인이 수인의 앞접시 위에 전 하나를 올려 주며 식기 전에 어서 먹어보라는 듯 재빠르게 손짓을 했다. 그녀의 수신호에 답례와 같은 짧은 목례를 하고 막 지져낸 생선전 하나를 입에 넣은 수인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불어대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물거리던 입 안으로 기름이 가득 번지고 생선살이 금방 으스러졌다. 짧조름한 맛과 함께 고소한 기름향이 비강으로까지 퍼지는 듯 했다. 수인은 으음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전을 부치는 식당 주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 사이 앞접시에는 전 하나가 더 올려져있었다. 수인은 입 안에 전을 오물거리며 씹고 있는 와중에도 다음 음식이 기다려졌다. 그 마음을 알길 없는 주인장이 느긋한 자태로 다음 전을 뒤집으며 수인에게 말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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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와서 뭣뭣 드셨소?”

“아직 많이 못먹었어요. 여기 와서 서울서 못 챙겨먹는 제철음식 다 먹어야 하는데”

“으매 짠한 거. 사람이 제철음식 맥고 살아야제 다 맥고 살자고 허는 일인디”

주인장이 실눈을 뜨고 혀를 끌끌 차며 처음으로 수인의 얼굴을 지그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정어리쌈밥 먹었다며?”

“아 맞다. 정어리쌈밥. 정어리쌈밥 먹었어요”

“맥을만 허던가요잉? 외지인들은 쉽지 않타터만”

“처음에 산초향이 좀 낯설었는데 먹다보니 매력있던대요”

“산초? 아.. 그거 방앗잎 일걸. 그죠잉?”


미진의 물음에 식당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룸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가 소쿠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거시 방앗잎이오. 입맛에 맞아분다니 눠줘야 쓰겄네”


소쿠리를 흔들거리더니 식당 주인이 소쿠리에 담겨진 푸른 채소 일부를 살짝 걷어내는 것처럼 들어 병어조림 위에 그리고 나머지 것들은 트롤리 위 쇳그릇에 쏟아붓듯 넣었다. 방앗잎과 함께 그보다 묵직한 것들이 밀가루 위에 두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전을 부치기 시작했다. 긴급하게 편성된 방앗잎 전이 미진에게 한번 수인에게 한번 번갈아 앞 접시 위에 올려졌다. 미진이 방앗잎전 오랜만이네 하며 입술에 살짝 대보더니 홀랑 입안으로 넣었다.


“홍합인갑네요. 방앗잎이랑 아주 찰떡이네”


미진이 감탄을 하며 엄지를 들어보였다. 수인에게 방앗잎전은 잘게 다져진 홍합의 쫄깃한 식감과 함께 기름으로도 지워지지 않은 후추의 먼 친척쯤 되는 듯한 방앗잎향 그리고 주인장의 자부심으로 기억되었다. 전의 시간은 방앗잎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다시금 느린 동작으로 전기그릴이 치워지는 것을 다음 메뉴를 기다리며 무력하게 수인이 바라보았다. 그때 잔잔하게 찰랑거리던 국물이 팔팔 끓어오르더니 국물방울이 냄비 가장자리로 묵직하게 튀어올랐다. 아들의 몸상태는 어떠냐는 수인의 물음에 젊어서 그런가 암사치도 않다는 미진의 답이 돌아오고 있었다. 수인이 시선을 돌려 버너의 불을 줄이고 식탁 위에 놓여져 있던 국자를 들어 냄비 가장자리의 국물을 떠 골고루 국물을 섞어주며 그래도 며칠 요양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물었고 아무래도 훈련은 못받지 라고 미진이 답했다.

식당 주인이 작은 솥 하나와 채소 한 바가지를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트롤리 위 작은 솥뚜껑을 들어올리자 하얀 김이 모락 피어올랐다. 무쇠솥에는 잡곡밥이 가득했다.


“그나저나 언니. 여그 관상은 어떠요? 여그”


미진이 무쇠솥에서 한 김 빠지는 걸 내려보고 있던 식당 주인에게 턱으로 수인을 두번이나 가리키며 물었다.

“여 언니 신통방통해. 상담받을 라고 멀리서 찾아오는 단골도 꽤 있당께로”

“아고. 요샌 옛날만 못허요. 그라고 초면에 실례제”


타고난 운명과 그 길흉에 관한 하늘의 뜻으로 여겨지는 말들을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고, 종종 엄마가 한탄하곤 했던 우라질놈의 팔자와 같은 운명결정론에 언제나 반발심이 생기곤 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인은 미진의 이 조심성 없는 제안이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수인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식당 주인 여자에게로 향했다. 한번쯤 알아보고 싶던 것이었다. 이때쯤엔. 타고난 팔자란 것이.


“아니에요. 괜찮으시면 저 한번 봐주세요”


수인이 짐짓 대범한 척 얼굴을 들이밀다시피 했을 때 내내 힐끗거리던 식당 주인의 고개가 수인에게로 돌아왔다. 그녀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한 건 식당을 들어와 20여분만에 처음이었다. 미진의 말대로 신통한 상 같기도 하다고 심상까지 훤히 보일 정도로 무방비 상태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수인은 생각했다.


“복이 붙었는데 모르고 산께 쪼까 고달프겄소”

“지 복을 지가 찬단 말이구만”


식당 주인이 딴 사람처럼 지금까지와는 다른 강단진 어조로 말했다. 그 말에 미진이 눈을 흘기며 추임새를 넣었다. 듣기에 따라선 혼 내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수인이 그 말을 듣고 “복이라..” 하며 나지막히 읊조렸다. 자칫 심각해질 뻔 했던 분위기를 깬 건 미진이 실실거리며 놀려댄 덕이었다. 복이 있는데 못 알아보는 것과 복이 애당초 없는 것이 꼭 매한가지처럼 들렸다. 자기 하기 나름이란 소린가 싶다가 사는데 필요한 것이 복일까 싶다가 그래도 이왕 듣는 생의 결과란 것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은 것이란 결론에 도달해 수인은 드디어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타고난 복이야 안달아난께 다 지 복대로 결국 살 것이구마. 걱정 내려놓으소”


식당 주인이 잡곡밥을 퍼 수인의 앞자리에 놓으며 말했다. 처음 보았던 인자한 표정을 하고 덤을 얹어주는 것처럼 덕담인지 고봉밥인지를 건내는 그녀의 시선은 다시 그녀가 행위하는 곳으로 가있다. 수인이 고봉밥인지 덕담인지를 건내받고 꾸벅 머리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했다.


“네 덕에 방앗잎 들어간 병어조림 다 먹네”


미진이 방앗잎과 함께 병어 한마리를 위태롭게 퍼올리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꽤 낯선 조합인 모양이었다. 수인은 왜인지 알 수 없으나 자신이 얼추 밥값은 했다는 생각을 했다.


“언니. 나 언니네 할머니집 가보고 싶어. 청소하는 거 도와줄게”


아슬아슬하게 국자 위에 올려져있던 병어 한마리가 퐁당 하고 다시 냄비 속으로 떨어졌다.


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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