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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Feb 12. 2024

에어포켓

소설 <PART - two> #공동행동 ④

이무렵 네 사람은 여직원휴게실에 자주 숨어들었다. ‘공동행동’ 명의로 진정서를 제출한 후 그 빈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일주일에 한두번 이던 날이 두세번이 되더니 어느 덧 매일의 일상이 되었다. 네 사람은 부표처럼 사무실에 떠있다가 휴게실에 섬처럼 모였다. 10분 남짓의 짬을 만들어내기 위해 공들여 작전을 짜고 스릴 넘치는 도전을 감행했다. 랄라는 고등학교 때 도둑 담배 피는 것 같다며 낯설게 웃었다. 민지는 침몰한 배 안의 에어포켓과 같은 시간이라고 화답했다. 그 말 끝엔 적어도 자신에게는 이라며 주억거렸다. 모두는 이 말 때문에 이 시간을 포기하지 못했다. 외부 회의가 잦은 랄라가 보통 총대를 맸다. 랄라가 회의가 끝나갈 무렵 무전을 치면 나인은 팀원들에게 다른 동에 비품을 체크해보러 나갔다 오겠다는 이유 같은 것을 대고 민지는 집중이 안된다며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문서 작업을 좀 하다오겠다는 등의 이유로 율무는 담당하고 있는 입주기관 실무자를 잠시 만나고 오겠다는 핑계를 대고 흩어지듯 모였다. 그들의 사정을 짐작하는 팀원들은 그들의 땡땡이를 가끔 티나게 도와주기도 하고 빈 자리가 티나지 않게 사무실을 지켜주기도 했다. 그 맘때에는 휴게실 이용도 자제하고 괜시리 휴게실 문 앞을 서성이며 망 비스무리한 것을 서주는 친구도 가끔 있었다. 이런 많은 이의 기지가 모여 이뤄지는 만남은 누군가 주위를 지나치게 살피며 주저하는 사이 세 명이 모이다 헤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공동행동’ 활동에 대한 논의는 퇴근 시간 이후에만 했고 이 시간은 대게 시시한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나인은 누군가의 말이 끝날 때마다 소리 나지 않게 박수 치는 시늉을 했다. 율무의 집 앞 유명 베이커리에서 엎어왔다는 비스코티 쿠키를 보고도 그랬고 단지에 입주한 연구소 몇군데와 공동 개발 중인 성과지표 개발연구를 두고 난항이 예상된다며 랄라가 걱정을 할 때도 그랬다. 그럴 때면 랄라는 나인의 얼굴을 살폈다.     


‘공동행동’에 관한 소식은 감염병 처럼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옮아졌다. 월담을 넘보며 외부를 향해 불뚝거렸다. 센터장 C의 의지로 매주 월요일마다 공식업무시간 30분전 1시간 가량 진행되던 실팀장 조간회의가 2주째 진행되지 않자 사람들은 월요일 내 붕뜬 기분으로 A동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근대기 시작했다. 그 무렵 센터장 C는 점심시간 즈음 출근해 센터장실에 콕 박혀있다가 6시 정각 백팩을 휘날리 듯 매고 절도있는 모습으로 1분도 지체 없이 퇴근을 했다. 그는 직원들의 눈을 피했고 말도 잘 섞지 않았다. 자신이 데려와 앉힌 실장 P와 사무실 운영 전반에 관여할 수 있는 경영지원실장만 따로 만나 업무를 처리했다. 사무실 안은 수근거림으로 시끄러웠고 쉬쉬하느라 벅적댔다. 오전에는 센터장 C의 야심찬 내년도 사업계획이 서울시로부터 완전히 까였다는 소문이 돌더니 오후에는 서울시 회의 중 센터장 C가 담당 주무관에게 한 말이 문제가 되었다는 설이 남아 돌았다. 그 다음날 오전까지도 이 사달의 원인이 된 발언이 무엇인지를 두고 몇 가지 설들이 유효하게 남았지만 오후가 되자 모든 말은 진공청소기로 흡수한 것처럼 사라지고 공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팽팽한 긴장이 고요를 가장하고 이 인위적 정적 속에서 군중의 모든 감각기관이 이 파열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몇몇의 존재들에게 빨려가듯 꽂혔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설치된 지 하루가 지난 날이었다.


선택은 필시 감내해야할 고통과 함께라는 건 관념의 세계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나인은 꼭 예상 못했던 것처럼 자신을 옥죄는 고통의 감각에 휘청거렸다. 붙임성이 좋아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건내는 편인 나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갈등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실제 센터 내부에서 나인은 평화의 무드를 만드는 역할을 자임했고 이는 늘 유용했다. 사무적인 말들이 오갈 때 비의례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었고 방어적인 협상용 대화에선 각각으로부터 빈틈과 여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었다. 충돌적인 상황에서 완충재 같은 역할을 하는 나인의 쓸모에 대하여 센터장 C도 모법인의 승곤도 귀히 여겼다. 가까이 두지도 주요 보직과 자리에 그녀를 앉히지도 않았지만 표나지 않게 그녀의 말과 역할을 존중했고 사람들도 그녀가 리더들에게 꽤 신임을 받는 사람으로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리더그룹에 전면으로 반기를 드는 주동자처럼 비춰질 수 있었고 그래서 이 갈등적 상황에 누구보다 취약할 수 있었다. 속없이 이리저리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경영지원실장으로부터 나인은 “아이. 왜 이름까지 올렸어~ 그냥 뒤에서 조용히 하지” 라는 말을 이미 듣고 있었다. 


랄라는 상황이 갈등적으로 보일 뿐 이 모든 것은 다 문제해결을 위한 것이라고 세 사람을 다독였다. 누구보다 나인을 위한 말이었다. 나인이 정신을 차려야 자신도 힘이 생겼다. 반면 나인은 말끔해지기 위해 노력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선택 후엔 이상하리만큼 감행해야할 것 외 어떤 것에도 눈길을 두지 않는 강단 있어 보이는 랄라의 면모를 나인은 새삼 다시 보고 있었다. 평소와 같이 별 일 아닌 듯 공동체에서 하던 역할을 하며 활약하고 싶었지만 왜인지 필요 이상으로 존재를 과시하고 저쪽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는 것 같아 그마저도 주저되었다. 나인은 가만히 있어도 자신이 이 갈등의 핵심축 이라고 온 몸으로 주장하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표내지 않았지만 왜인지 조금 억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인은 온통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사무실 안팎을 부유했다. 


물리적 힘과 힘이 부딪히는 물질의 세계에서 유기적 세계의 정신적 파트를 관장해오던 나인의 역할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무의미해졌다. 언어가 사라진 공간에는 이내 힘의 자리가 득세했다. 각자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내적 언어들을 열심히 만들어냈다. 상대는 단합된 힘으로 잘 훈련된 사람들처럼 공동행동에 속한 사람들을 센터 전 직원들과 분리해 공공의 적처럼 대상화하는데 매번 성공하는 것 같았다. 꼭 커다란 배후가 있는 것 같았고 이번 사건이 거대한 손에 의해 실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에 가끔 도달했다. 


그렇게 함께 숨어든 공간에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드는 건 나인도 마찬가지였다. 네 사람은 에어포켓에서 만나 라는 자기들만의 말을 만들어 썼다. 네 사람은 그곳에 모여 물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호흡을 나눠 쉬었다. 랄라가 힘을 비축하는 동안 민지가 후후 하고 계산된 양만큼 숨을 내쉬고 잠시 호흡을 멈추면 율무가 바톤을 받아 민지와 같은 행동을 취했다. 나인은 이 두 사람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 에어포켓 마저 사라지는 상상을 했고 아주 잠시 동안 이 곳에서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인은 자주 에어포켓에서도 허우적댔다.  


커버사진: UnsplashAlfred Kenneall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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