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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Feb 15. 2024

센터장C

소설 <PART - two> #공동행동 ⑤

사실 랄라가 가장 신경쓰고 있는 사람은 율무였다. 얼마전 에어포켓 모임에서 털어놓은 말 때문이었다. 율무는 며칠 전 야근 후 퇴근길에 부지불식간 나타난 실장 P 때문에 뒤로 나자빠질 뻔하게 놀란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율무는 팀원들 중 유일한 자차 소유자였다. 박봉에다가 정치적 격동이 심한 불안정한 조직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그녀가 자차를 몰고 다닌다는 사실은 말 만들기 좋아하는 센터 직원과 입주기관 관계자들의 공이질 거리로 자주 오르내렸다. 간판만 바꿔달았을뿐 그 나물에 그 밥, 고인물들이 또다시 고이고 마는 이 좁디 좁은 생태계에서 남다른 행동과 언변을 구사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선을 끌었고 사람들 입방아의 좋은 소재거리가 되었다. 그 덕에 그녀가 자차로 출퇴근한다는 사실과 빨간색 해치백 경차가 그녀의 차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외제차라도 몰았으면 부르주아에 매국노라고 낙인찍었겠어요”라고 농 던지듯 말했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잘 웃지는 못했다. 실제 그랬을 것 같아서였다. 


율무는 그날 하반기 공모 사업 선정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워크숍을 준비하느라 야심한 시각이 되어서야 퇴근을 했고, 동향이라는 팀원 두 명이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가겠다는 걸 말릴 겨를도 없을 만큼 피곤한 상태였다고 했다. 유난히 안구에 모래 라도 뿌려놓은 것처럼 눈 앞이 까끌거려서 A동 뒷 주차장까지 동물적 감각으로 겨우 겨우 걸어갔다고. 그렇게 차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쯤 어디선가 불쑥 실장P가 나타나 이제사 퇴근하냐며 말을 건내는 통에 화들짝 놀라 소리지르고, 의식의 반대 방향으로 그러나 반사신경에 따라 문을 열려던 손이 갑작스럽게 닫는 모션으로 변경되며 손목까지 삐끗했다고 털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성급히 인사를 하고 부랴부랴 차에 올라타 시동을 켜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너무 갑작스러워 이 사람이 혹시 차 뒤에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의심이 들고 자신이 놀라는 걸 보고 원했던 바를 이룬 듯 실실 웃는 모습이 떠올라 너무 무서웠다는 고백이었다. 담담한 척 했지만 율무는 그 다음날부터 야근을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퇴근을 하더라도 홀로 퇴근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며, 퇴근할때는 동행자를 만들고 동행자는 꼭 동승자로 만들어 가까운 지하철역까지라도 태워다주려고 애쓰고 있다고 했다. 한번은 자차로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해볼까 심각하게 고민도 해봤지만 그건 더 빈번하게 공중에 자신을 노출하는 것 같아서 바로 포기했다고 덧붙여 말했다.


피해당사자인 민지는 암묵적 협정에 따라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 당분간이라도 어찌 못해볼 것이고 나인이나 랄라 자신은 이 바닥에서 굴러온 짬밥도 있고 그에 부과된 내외부 네트워크 자원도 넓게 분포해 있는데다가 으르렁거리는 링 위로 등판한 이력이 없어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기도 어려울 거였다. 그러나 율무는 달랐다. 그녀는 집단 가운데 무리짓는 피신처 따위를 예비하지 않는 개인주의자였고 체급대로 쭉 줄세워 놓은 등급표 안으로 위치 지어지는 것에 몸서리 치도록 질색하지만 별 수 없는 최하위 피식자였다. 가장 약한 고리부터 노리는 것은 상수였다. 


랄라는 공동행동의 진정을 두고 정확히는 민지의 진정에 대하여 자신을 매도할 목적에 충실한, 조직의 장으로부터 조직적 인정을 받지 못한 한 개인의 보복적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센터장 C의 항변진술서 내용을 진정위원회 회의 중 전해 들으며 민지가 아니라 율무의 전후 사정을 떠올렸다. 왜인지 화살의 시위가 일차적으로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었다. 공동행동의 무리를 와해하고 무력화할 가장 약한 고리, 첫 타겟. 화살촉의 방향타가 어쩐지 율무에게로 향해 있는 것만 같아서였다그 다음은 누구일까. 랄라는 세상이 온통 벌을 주고 받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 같았다. 공동체의 룰과 시스템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개인적 감정들이 결국 링 밖으로 삐져나와 민낯을 드러내놓고 서로를 겨냥하고 있었다. 약육강식의 자연법칙 외 모든 사회적 약속이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처럼. 랄라는 당장이라도 사전을 꺼내들고 보복이라는 단어를 찾아 그 의미를 샅샅이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건 과연 가능이나 한 것인지, 등가의 계산은 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자신은 보통 벌을 주는 쪽이었는지 아니면 받는 쪽이었는지로 생각이 옮겨갔다. 그리곤 아마도 받는 쪽일거라고 생각해버렸다. 지금 이 자리는 정말이지 벌을 받는 자리 같았다. 


랄라는 센터장 C의 마지막 진정내용을 전해 들으며 맥이 쭉 하고 풀리는 기분과 동시에 명치끝이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센터장 C는 직원 개개인에 대한 고과평가와 더불어 조직개편, 업무 재배치 등은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라면서 최근 자신이 행한 업무 재배치 명령에 관해 성취욕망이 좌절된 진정인이 불응하는 태도를 자주 보여왔다며 자신을 매도할 목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을 부풀려 문제 삼은 것이고 진정 자체의 의도가 불순하고 악의적이어서 진정내용의 상당부분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랄라는 도대체 이 항변이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조차 의심스러워 한참을 멍해진 채였다. 랄라는 답답한 마음을 풀어볼 요량으로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가 다시 천장쪽으로 들었다를 두차례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백열등의 하얀빛과 그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등으로 하얀 천장 여기저기가 얼룩져보였고 처음으로 빛을 잃은 긴전구 한줄이 눈에 거슬렸다. 침묵 속에 퓨즈가 나간 백열등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눈을 감았다 뜨고는 다시 면접대형으로 앉은 위원들이 있는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눈 앞으로 하얀 점들이 불꽃처럼 피워올랐다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 만에 다시 눈 앞이 훤해졌을 때 김지희가 손혜옥과 글로 뭔가를 써가며 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피진정인의 주장과 관련해 일언반구의 언급할 내용도 가치도 느끼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신은 민지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랄라는 꽉 막힌 것만 같은 명치끝으로부터 목구멍까지 얇게 숨을 내밷었다. 


“피진정인이 손에서 어깨, 어깨에서 포옹에 이르기까지 스킨십이 그 강도를 더 해가는 중에 적극적으로 이를 제지를 하거나 불쾌감의 의사를 표시할 수 없었던 것은, 진정인께서 말씀하신대로 상대가 자신의 업무 평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문제를 삼을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사회 전반에 학습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성적불쾌감이라는 게 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진 것이고 정량적 업무성과 이외에 비정량적인 다양한 것으로 평가받는 조직생활에서 그런 개인의 주관적인 감각은 되도록 작동시키지 않고 지내는 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되지 않는 것들을 문제 삼았다는 피진정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인이 문제로 느낀 것을 문제로 삼은 것이고 이것이 어느 정도 문제인지는 이제 진상위와 그 다음의 과정에서 판단되는 것이죠” 


랄라는 호흡을 위해 잠시 말을 멈췄다. 랄라가 크게 숨을 내쉬는 동안 김지희와 손혜옥, ‘진상조사위원 2’ 의 얼굴이 표정 동요 없이 랄라를 향해 있었다. 랄라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같은 자세였다. 다만 책상 위 문서를 보고 있던 ‘진상조사위원 4’가 눈을 위로 뜨며 랄라를 힐끗 쳐다봤다가 다시 말이 이어지자 목 아래 문서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직장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조직의 시스템 안에서 해결하는 과정이고 이에 따르는 합당한 처분을 각각 받는 일입니다. 이를 두고 앙심, 악의적, 불순한 의도 이런 단정적 표현까지 하시는 것은 이 문제의 당사자로써 권한 밖의 과한 표현인 것 같고요. 그보다 피진정인께서 진정인이 그 누구보다 업무적인 욕심이 많은 사람인 것을 알고도 그러셨다면 그것이야말로 피진정인께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도 스스로 성찰해보셨으면 합니다. 자기가 한 것 이상으로 평가받고 또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저에게도 있고 센터 직원들 중에도 적지 않을 겁니다. 얼마나 그걸 노련하게 숨기느냐 드러내느냐의 차이지”


랄라는 혀를 끌끌 차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냈다. 


커버사진: UnsplashBrandon Morgan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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