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two> #공동행동 ⑥
안타깝게도 민지는 개인 감정에 휘둘려 공적인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평가를 센터 내외부에서 공공연하게 받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문제가 격화된 데에는 유달리 예민하고 드센 성품으로 알려진 민지의 그 특수성이 반영된 탓이라는 센터장 C의 주장과 유사한 여론이 조용히 확전중이었다.
기관 설립 반년을 겨우 넘겨 최상위 리더십인 센터장이 교체되고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조직내부 문제로 센터 안팎 잡음이 커지자 새우눈을 뜨고 지켜보던 S시 담당부서와 시의회 등 사정기관의 신뢰는 콩으로 매주를 쑨다고 해도 못미더울 만큼 바닥으로 치닫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든든한 조력자여야할 시민사회그룹으로부터도 기대만큼 센터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꾸준히 받고 있었다. 몇몇 시민사회단체로 표상되는 시민사회그룹이 공공의 공간을 관리 운영할 때 기대되는 것들, 그러니까 민관 협력의 거버넌스라는 포장지로 덮혀진 이해 관계 그룹들의 사업 참여와 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생각보다 진척이 되지 않고 있었다. 대외적으로 민관 협력의 거버넌스는 시민,지역,행정기관 등 주요 주체들이 참여하여 시민의 필요에 맞게 주체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해본다는 취지를 내포하는 것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하루 아침에 이뤄질리 만무한 일이었다. 그러니 정치권력에 따라 사업의 근본이 뒤바뀌는 정치적 풍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불가역적인 성과를 2~3년내 만들어내야 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난제는 폐기되지도 진척을 내지도 못한 채 덩그러니 놓여지 채였다.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자 그 자체로 결과인 것처럼 오도되어 민지의 사건이 툭 불거져보이는 것은 왜인지 누군가에게는 퍽 다행일지도 모른다고 나인은 생각했다. 이 엄중한 시기 중책을 맡은 센터장 C의 책임 소지에 대해서는 모두들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추석연휴와 개천절, 한글날에 대체휴일까지 잔뜩 끼어있던 10월 내 업무는 그야말로 마비상태였고 11월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전개되고 있었다. 센터장 C가 호기롭게 구상해 내놓은 내년도 사업계획안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진상조사위 설치 이후 사무실에 모습을 자주 드러내지 않던 센터장 C는 대외활동만은 하던대로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두 실장을 대동하고 내년 사업계획안과 관련된 서울시와의 협의는 센터장의 부재 없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관련 내용이 센터 내부 직원들에까지 전달되진 않았다. 센터장 C는 꼭 자신이 무고의 피해자인 것 처럼 공적 의무를 방기하고 있었다. 불안은 고스란히 직원들의 몫이 되었다. 불안이 계속될수록 원망은 내부의 약한 고리로 향했다. 이렇게까지 만들 일이냐, 솔직히 자기도 센터장에게 이쁨받는 거 즐긴거 아니냐 등등의 말들이 찬 늦가을 바람결로 퍼져나갔다. 나인은 자신이 듣고 있는 풍문들을 민지 역시 듣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인은 이무렵 그녀의 눈치를 자주 살폈다. 그녀를 살피는 시간이 자신의 불안을 잊게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민지는 공동행동이 진정을 낸 날과 그 다음날로 연차를 받아 쉬었을 뿐 그 어느 때보다 열성적으로 업무를 수행중이었다. 그녀는 센터장 C의 10대 과제 발표 이후 이벤트성으로 계획한 2박 3일 캠프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이 캠프는 단지가 있는 E구의 지역신문, 복지관, 문화재단, 주민자치단체 등에서 근무하는 지역사회 청년그룹과 단지에 입주해있는 39세 미만 청년그룹간 교류를 목적으로 기획된 프로그램이었다. 2박 3일간 이 단지에서 숙식하며 10대 과제별 토론과 단지 내 활용이 안되고 있는 공간을 돌아보며 용처를 점검해 의견을 내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12월에 가까워질수록 시의 회계연도에 따라 대게의 사업들이 정리되는 수순을 밟다보니 11월말부터 다음해 2월까지 단지의 각종 활동은 자연스럽게 침체국면을 맞았고 센터의 지원사업이 끊기는 이 시기에 맞춰 문을 닫고 동면에 들어가는 입주단체도 있었다. 코워킹스페이스에 출입하는 인원수도 이때 급감했다.
이런 때 행사성 이벤트를 진행하자고 지시를 내린 건 센터장 C 였다. 센터는 입주그룹들의 활동을 촉발하고 외부와 끊임없이 교류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고 시의 회계연도와 무관할 수 없지만 그 형식에 종속되지 않는 활동을 추동해내는 역량 또한 갖춰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 일은, 전임센터장의 그것과 표나게 다른 질적 양적 성과를 예산집행에 영향을 미치는 시의회나 시 등에 피력해야 하는 센터장 1년차인 그에게 무척 중요한 일었을 터였다. 그는 단지 안 팎의 의견과 의제를 모아 새로운 사업계획을 짜고 관련 행사를 진행하는 예산 중 가장 큰 비용을 이 시기에 들이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대체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그의 말에 호응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피는 와중에 작심한 듯 자진한 사람은 민지였다. 실팀장회의에서였다. 그 순간 그 자리의 많은 이들이 표나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었다. 자기만은 피했다라는. 그렇게 자임한 일이 3개월여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민지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녀가 진정인 신분이라는 것뿐.
민지는 이 캠프와 관련된 일을 전방위적으로 해냈다. 어느 날은 하루종일 팀원들과 A동 2층 오픈스페이스 공유주방에서 25인의 여섯끼 식재료들을 씻고 다듬었다. 저녁에 먹을 바베큐 거리와 점심 국과 찬 등에 쓰일 식재료들이었다. 딱 보기에도 양이 어마무지해 보였다. 눈이 휘동그래져서 직접 음식을 다 하는거냐는 나인의 질문에 그녀느 아침은 토스트와 시리얼이고 점심, 저녁용 반찬은 인근 마트에서 사 올 것이며 한국인은 국물 있어야 하니 그건 양념 사다 각종 야채를 넣고 끓이고 저녁엔 바베큐와 라면으로 떼울 것이라고 눈을 위로 치켜뜨며 말했다. 나인은 민지네 팀원들에 섞여 삼십분 정도 파를 씻고 양파를 씻고 애호박을 씻었다. 그러고나면 누군가 파를 썰고 양파를 썰어 비닐팩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한쪽에서는 버섯을 씻고 단호박 씻어 썰고나면 누군가가 고기, 파와 함께 긴 쇠꼬챙이에 끼우도록 계획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나인은 한쪽에 반듯하게 놓인 대용량 두부모판을 보고 슈퍼를 죄다 털어왔냐고 웃으며 물었다. 다음 날에는 팀원들과 함께 오픈스페이스 곳곳에 마련된 모임공간들을 과제별 토론방으로 꾸미고 좌석을 배치하는 것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 다음 날 민지는 단지 중앙 너른 야외마당에서 렌탈업체가 빅텐트 구조물을 설치하는 걸 지켜보며 이것저것 주문을 하고 팀원들과 각종 캠핑장비들을 옮겨와 배치하는 일을 했다. 일부러라도 몸을 바삐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향한 그렇고 그런 말들이 달리는 말에 가속을 가하는 채찍질 같았다. 민지는 궤도 위에서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거침이 없었다.
나인은 이 단지의 주인이 꼭 민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동안 나인의 눈엔 그렇게 민지만 보였다. 이 단지 안에 그녀와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자신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인은 신기한 듯 민지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렇게 그녀에게 몰입해 있는 순간엔 떠도는 소문과 평가들이 일거에 소거되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신출귀몰했다. 어디서 저런 에너지가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여기 있다 곧 저기에 나타났다. 민지는 때때로 뭘 이렇게까지 해 라는 말을 나인으로부터 들어야했다. 그녀는 야외 계단에 앉아 있다가 함께 앉아 있는 나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렌탈업체 직원을 향해 손짓하며 거기에는 못 박으면 안되요 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나인은 그순간 눈을 질끈 감고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살 수 있는 사람도 있었다. 민지가 지금 그랬다.
커버사진: Unsplash의Jamison Rile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