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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Feb 22. 2024

실장 P

소설 <PART - two> #공동행동 ⑦ 

민지와 실장 P는 어느 군소정당 S시당의 청년위원회에서 학습소모임 활동을 하다 알게 된 사이였다. 민지는 2014년 제1야당의 청년정치학교 출범 기사를 보고난 후 정말 뭐에라도 홀린 듯 군소정당의 학습모임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에 3개월여 앞서 이 정당의 당원이 되었는데 그 계기도 평소 좋아하던 진보 정치인이 4개여월 남은 지자체장 선거 S시장 출마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후였다. 그렇게 민지가 당비만 내던 당원에서 학습 소모임까지 참여하는 열성당원으로 변모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서 스스로가 청년정치인이 되고자 하는 꿈이 있었던 것이었는지는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생각해본 문제였고, 당시에는 순전히 청년정치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다고 공동행동의 나머지 세 사람에게 강하게 어필하듯 말했다. 한참 세대론 논쟁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연령을 기반으로한 ‘청년정치’가 날로 다변화되는 젊은 세대 전체를 참칭할 수 있는지, 청년의 제도정치로의 적극적 인입이 의미하는 바처럼 한국사회의 주요한 구조적 문제 해결을 다만 권위주의와 연공서열 타파로 손쉽게 편취하는 것은 아닌지 그 외에도 청년정치가 거대 양당 정치의 문제를 우회하며 제도정치 혁신의 기폭제로만 기능할 가능성, 낙타바늘과도 같은 제도정치에서의 갖는 정체성 정치의 한계에 대하여 보다 면밀히 살펴보고 싶었다는 둥의 그 후로도 민지의 설명이 한참 이어졌다. 랄라는 정치외교학 대학원 박사과정 중이던 민지에게 자연스러운 관심사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중 그녀가 진짜 청년여성정치인이라도 될 꿈을 꿔 봤을까 하고 의심해본 건 되려 민지의 이 기나긴 설명 때문이었다.  


민지가 대외협력과 전반의 사업기획 업무를 관장하는 센터 중요 보직인 정책기획실의 기획팀장으로 발탁된 건 사실 실장 P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장 P가 센터장 C의 인사권한에 따라 정책연구실에서 정책기획실로 확대개편된 실의 실장을 맡게 되고 정책연구실의 정책연구팀장이던 민지를 알아본 것이었으며 세 개이던 실은 그대로 두고 팀을 통폐합하는 조직개편 과정에서 역량, 자질, 자신과의 과거 인연 등을 고려해 그녀를 센터장 C에게 적극적으로 기획팀장 자리에 추천한 것이었다. 채용절차 등을 감안하면 효율면으로도 나은 선택으로 보였다. 둘은 사무실에서는 존칭을 쓰고 격을 두고 대했지만 민지는 그를 다른 곳에서 지칭할 때 종종 P선배 라는 표현을 썼다. 그때마다 입을 삐죽대는 걸 보아 각별한 관계로까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둘은 경쟁적 관계에 놓여있을 때가 많았다. 둘이 불꽃 튀게 각축을 벌이던 장면이 센터 사람들에게 본격적으로 목격되기 시작한 건 센터장 C가 타 기관에서 주관한 <창조와 혁신을 위한 바이브> 컨퍼런스 행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이 컨퍼런스는 창의테크밸리를 관할하는 S시 창의혁신국의 의뢰로 소셜벤처지원센터가 주관하는 행사였고, 이 행사는 하필 센터장 C가 한창 창의테크밸리의 중장기 운영계획과 활성화 전략을 구상중이던 5월께에 열렸다. 어쩌다보니 그가 구상중인 내용과 컨퍼런스의 주제가 묘하게 겹친 것이었는데, 새로운 이벤트가 절실하던 S시 담당부서에서 생동하는 계절에 맞춰 시장님 눈에 들만한 그림 좋은 대형 프로그램 기획이 긴급하게 기획한 것이었다. 리더십 교체 등의 이슈로 당장 센터에 여력이 있어 보이지 않아 타 기관에 프로그램 운영을 맡기게 되었다는 S시 담당주무관의 설명이 있었음에도 센터장 C는 불쾌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센터장 C는 S시의 요청에 따라 행사 기획 회의 내내 불려다니며 예민하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각종 전시와 프로그램 등으로 3일 동안 진행된 행사는 꽤 성공적으로 끝난 것처럼 보였다. 겨우내 조용했던 단지의 무드는 오랜만에 치뤄진 큰 행사로 동면의 계절이 지나가고 봄바람이 살랑 부는 것처럼 드라마틱한 변화를 맞은 것처럼 보였다. 센터장 C는 실팀장회의에서 이 행사와 관련한 평가와 의견들을 물었고 이에 대답하는 사람은 민지와 실장 P 뿐인데다가 의견이 상이해 둘이 꽤 각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3일 동안이나 진행할 필요가 있었나 싶게 전반적으로 밀도가 없어서 조금 실망스러웠어요. 그래도 최소한 행사는 세련된 연출과 기획의도는 정도는 있어보였구요. 제가 들어간 세션의 주요 키워드는 사회적 가치 였고 질문은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와 비전이 모이면 사회적 가치가 되고 이 가치가 모아지면 사회적 모멘텀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되는데 반대로 사회적 가치 형성은 어떻게 실패를 하는지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묻는 것이었는데. 질문에 대해 질문을 하다가 세션이 끝났어요. 초대한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모이고 그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 고민이 없었던 행사 같았어요. 밀도는 그래서 없을 수밖에” 


“행사 기획 전반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창의테크밸리 운영과 공간조성에 관한 2가지 발제로만 한정해 이야기를 하면. 지난해 창의테크서밋에 있었던 발제와 발표하는 사람만 달라졌을뿐 내용은 재탕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도 두 발제가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운영에 대한 소벤센터장의 발제는 창의밸리가 소셜벤처를 위한 거대한 인큐베이팅 센터 같은 느낌이었고, 공간 조성에 관한 건축가 K의 발제는 이 공간에 랜드마크가 없으니 이 단지의 상징적 공간 하나를 세우고 이용자들의 공간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자 뭐 이런 피상적인 아이디어 수준의 내용이라 이를 어떻게 실행과제로 만들지 세부과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실무자로써 좀 막막하더라고요”


둘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계속 어긋났다. 실장 P가 행사기획과 자신이 참여한 세부 프로그램에 대하여 평가를 하면 민지가 단지 운영과 관련 내용에 대하여 의견을 냈다. 나인은 센터 설립 전부터 해왔던 논의를 재탕하는 것에 진력이 났지만 이 두 사람의 예기치 못한 경쟁적 구도에는 어리둥절해 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나 랄라는 그 무엇에도 관심을 못찾는 얼굴을 했다. 나인은 민지가 센터장의 이목을 좀더 끌었다고 생각했다. 민지와 실장 P는 이 언쟁이 있은 뒤 남들 눈에 띄게 승부를 벌이는 모양새는 피했지만 실제 센터장 C는 중요한 자리에는 꼭 민지와 동행했다. 이 동행의 끝이 이토록 파괴적일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실장 P는 이 파괴력에 의해 생긴 빈틈을 파고들었다. 실장 P는 둘의 낌새를 가장 먼저 눈치 챈 사람이었다. 센터장이 실장 P에게 민지와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자기식대로 말을 꺼냈을거라고 짐작은 갔지만 그렇다고 센터장이 민지를 단도리 하라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는 정황을 알기는 어려웠다. 실장 P는 센터장이 민지에게 거리를 두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청년위원회 학습소모임 뒷풀이 자리에 민지를 불렀다. 오랜만에 계급장 떼고 회포나 풀자는 명분이었고 그날 자리에서 실장 P의 문제적 발언이 있었다. 


커버사진: UnsplashJon Tyson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

☞ 소설 <PART - one>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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