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밀밀 Dec 13. 2023

인터뷰 피드백은 '빨간펜'이 아니다

[인터뷰의 뒷면] 피드백을 오해하는 사람들 

인터뷰 과정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10년 넘게 인터뷰어로 살아왔지만 솔직히 인터뷰의 모든 순간이 떨리고 어렵다. 섭외를 할 때도, 질문지를 보낼 때도, 인터뷰를 하기 직전에도 긴장을 낮추려 심호흡을 한다. 오히려 막상 인터뷰를 하는 순간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다. 그러다 가장 떨리는 순간이 찾아온다. 바로 인터뷰이에게 피드백을 요청할 때다. 


인터뷰 원고 작성이 끝나면 인터뷰 초안에 대해 인터뷰이에게 피드백을 부탁한다. 이때 원고를 찬찬히 읽고 아래 세 가지를 고려해서 피드백을 해달라고 말한다.  


1. 사실관계가 다르거나 
2. 의도가 다르게 전달됐거나 
3. 민감하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있다면 의견을 남겨달라는 것. 이렇게 가이드라인을 굳이 제시하는 이유는 피드백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자서전이 아니다


피드백을 요청했는데 깨알 같이 빨간펜, 즉 첨삭을 해서 보내주는 인터뷰이가 있다. 문구 하나, 표현 하나를 일일이 수정하고 인터뷰에서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대거 추가하거나 교체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예 원고를 다시 쓰는 수준으로 피드백을 해서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 이런 피드백을 볼 때면 안타깝고 힘이 빠진다.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 대한 존중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뷰는 자서전이 아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의 관점으로 쓰고 싶다면 에세이를 쓰면 된다.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서사를 인터뷰어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고 재정리한 콘텐츠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뷰의 주도권이 모두 인터뷰어에게 있냐면 그건 아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인터뷰어는 끊임없이 인터뷰이와 독자 사이를 오간다. 피드백 과정에서 인터뷰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두서없이 했던 이야기를 잘 정리해 주셨네요.’ 사실 인터뷰를 할 때는 누구나 두서없이 이야기한다. 내 이야기를 내가 풀어냈을 때는 독자까지 고려하기 어렵다. 글이 아니라 말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도나 수치, 고유 명사 등 사실관계가 틀리기도 하고 맥락상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질문의 취지에서 벗어나 주제에 안 맞는 이야기나 TMI를 길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강연이나 방송을 전문으로 하거나 인터뷰를 많이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다들 비슷하다. 


그래서 인터뷰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1차적으로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이가 옆길로 새지 않을 수 있도록 맥락을 잡아주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준다. 2차적으로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면서 팩트체크를 하고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인터뷰의 맥락을 다시 정리한다. 앞부분에 했던 이야기와 뒷부분에 했던 이야기를 연결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빼거나 톤을 순화하기도 한다. 인터뷰 시간은 1시간~2시간이지만 인터뷰를 정리하는 데는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가끔씩 SNS에서 윤리적이지 않거나 부주의한 인터뷰 발언이 박제되어 조리돌림 당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럴 때 나는 그 글을 썼을 인터뷰어를 떠올린다. 영감과 감동을 주는 워딩으로 회자되는 인터뷰를 봤을 때도 인터뷰어를 떠올린다. 인터뷰의 전면에는 인터뷰이의 얼굴과 이름이 나오지만 인터뷰이와 독자를 연결하는 것은 인터뷰어의 역할이다. 


인터뷰이가 어떤 사람인지 독자들이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인터뷰이가 했던 발언의 본질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원고를 쓰면서 나는 인터뷰이가 됐다가 독자가 됐다가를 반복한다. ‘이런 의도로 말한 게 맞을까?’, ‘이렇게 쓰면 오해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에게 피드백을 요청하기 전에 이미 수없이 문구 하나, 표현 하나, 문장 하나를 고민했을 것이다. 어쩌면 인터뷰를 했던 당사자보다 더 많이. 그래서 피드백을 요청할 때 유독 긴장된다.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닌데?'라는 반응이 나올까 봐. 인터뷰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봐.  



글 뒤에 사람이 있다


물론 인터뷰이도 사람이기에 인터뷰를 했을 때 하지 않았던 이야기가 뒤늦게 생각날 수도 있고, 인터뷰 당시 발언을 정정하고 싶을 수도 있다. 인터뷰어도 사람이기에 잘못 해석하거나 빠뜨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인터뷰가 발행되기 전에 인터뷰이의 피드백을 꼭 받는 이유다.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니까 내 원고'라고 생각하고 첨삭하듯 피드백하는 태도는 무례하다. 언젠가 처음부터 끝까지 원고를 아예 다시 쓴 피드백을 받은 적 있다. 웬만한 피드백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화가 나기보다 슬펐다. 인터뷰 준비 단계부터 정리까지 몇 날 며칠에 걸려서 고민해서 완성했던 원고였다. 나의 노력이야 나의 직업윤리지만, 그 인터뷰이의 피드백에는 ‘이 콘텐츠를 독자가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내가 돋보일지'에 대한 생각만 엿보였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욕심. 


인터뷰는 인터뷰이만의 것도 인터뷰어만의 것도 아니다. 모든 공적인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콘텐츠가 가닿는 곳은 독자다.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인터뷰의 목적이다. ‘네 것, 내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인터뷰에 대한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을 때 ‘내가 고생해서 썼으니 이건 내 원고'라는 생각을 버리려 한다. 

 

안타까운 피드백도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인터뷰이는 인터뷰어에 대한 존중과 예의를 담아서 피드백을 한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한 인터뷰이의 피드백을 전한다.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피드백을 받을 때다. 글 뒤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는 피드백. 


"홍현진 작가님~ 인터뷰를 멋진 글로 만들어 주셨네요. 제가 메일을 읽지 않은 채, 파일을 내려받아

검토하듯이 메모를 넣어버렸습니다.(죄송) 답신 보내려다가 아래 당부를 읽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저의 검토(?)내용 보시고 수정하셔도 되고 아니어도 됩니다. 제 의견은 어디까지나 의견일 뿐이고 (작가님의 인터뷰 글에서 작가님의 고민과 노력을 보았구요) 작가님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인터뷰의 뒷면' 연재를 작성해요. 매주는 어렵더라도 꾸준히 다시 쓰도록 할게요. 

*올해 외주로 진행하고 있는 인터뷰 시리즈를 소개합니다. 인터뷰에 대한 문의 및 제안은 hong698@gmail.com


이전 03화 '100% 일반인'과 인터뷰하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