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내고 상담을 받으면서도, 상담자의 기분을 살피는 나 자신을 경멸했다. 나도 모르게,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남의 눈치를 살피는 나 자신이 불쌍하고 서글펐다. 그런 내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며, 희망사항을 현재 상태인 양 떠벌리고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그렇지 않기 때문에, 간절한 희망을 읊어대듯이. 자신의 기분과 의견을 자유로이 표출하는 mz세대를 욕한 건, 사실 그들이 몹시 부러웠기 때문이라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제야 알겠다.
거절과 무관심에 대한, 슬프고 뼈 아픈 기억이 나를 평생 따라다닐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고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것은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일이다. 내 인생에 하등 상관이 없는 사람에게조차 피하고 싶은 일. 사랑에 대한 집착적인 갈망은 거기에서 기인했다.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거절당하는 일은 없으니까.
나는 그저 존재자체로 사랑받던 유아기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늘 갈망했다. 그래서 외도피해를 겪고 나서의 배신감이 누구보다 컸고, 이제는 그런 관대하고 확실한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부모뿐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몹시 불안했다. 이 무한한 사랑은 머지않아 끝날 것이다. 유전자의 진함은 생각보다 강해서, 이런 류의 사랑은 이젠 내리사랑이 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인류의 영원한 숙제이자 본능이 번식인 이유가 결국 완전한 사랑은 유전자에서만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이 불안하고 외롭고 상처받은 삶이 유일하게 위로받을 수 있는 방법은 대물림되는 온전한 사랑, 그 방법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벗어나고 싶은 어떤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답 이것뿐이다라는 식의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 그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방법이 실패로 끝나거나 좌절되는 순간 느끼게 될 절망감이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냥 막연하게 여러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 옳다. 내가 찾은 방법은 그중 한 개일 뿐이라고. 희망은 그나마 좌절에서조차 용기를 내게 해준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덮어두고 믿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