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과 현 여친 중에 고르라니요
2016년 CJ ENM에서 디즈니로 자리를 옮겼다.
이제 자리를 잡은 지도 수년이 되어가는데
처음 옮겼을 때, 이 질문이 참 많았다.
디즈니가 좋아, CJ가 좋아?
처음엔 복지나 연봉의 차원에서
어떨 땐 문화의 차이에 대해서
어디가 좋고 더 나음을 이야기도 하기도 했는데
처음에는 자연스레 새 곳에 대한 부분이 더 많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좋았던 기억이 더 강하게 남는다고 했었나.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니 이전의 터에서 생각지 못했던
좋았던 것들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또 술자리에서
그 시그니처 같은 질문이 던져 들었고
머리가 스치듯 대답했다.
옮기니까 어디가 더 좋아?
음, 질문이 좀 틀린 것 같아.
??????
전 여친하고 오래 만나다 헤어졌고 지금 여친을 만나고 있는데
전에 헤어진 이유가 있어 헤어진 거고, 지금은 잘 만나니까 만나는 거지.
전 여친은 전 여친대로, 현 여친은 여친대로 다 어떤 매력이 있는 거지
전 여친과 현 여친 중에 누가 더 나은지 고르라니.
!!!!!!
반응은 이랬다.
술자리 니체 나셨네.
팔뚝에 위버멘쉬 새기고, 니체의 철학을 따르는
어느 술자리 철학자의 갑분 진지철학.
그런데 대답하고 나니
의외로 그럴싸한 메시지가 담겨있었고
듣는 사람도 듣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로부터 같은 질문이 들면 같은 대답으로 답했다.
(아, 물론 더 어리거나 비슷한 연배에게서.)
그랬다.
CJ란 곳은 나에게 해외호텔의 혜택과,
CJ 멤버십 할인의 달콤함
생동감 넘치는 변화들와 함께
젊은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일하는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안겨주었고
디즈니는 나에게 디즈니랜드의 혜택과
각종 디즈니템들의 달콤함
글로벌이라는 무대와 함께
이색적인 커리어를 쌓아 올린 개개인이 모여
자웅을 펼치는 노련미를 보여주었다.
그 둘은 나에게 전 여친과 현 여친.
누구 하나를 고르는 게 무슨 의미인가.
오히려, 차라리
양념 VS 후라이드
짜장 VS 짬뽕
콜라 VS 사이다
나이키 VS 아디다스
태국 VS 베트남
회 VS 목살이
보드카VS 진
이중에 고르라면 더 고르기 쉽겠다.
아,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아무래도 조직규모?
(로부터 오는 일하는 방식의 차이)
그 당시 E&M, 현 ENM 기준으로도 이곳은 수천명,
현재 있는 곳은 백여명 이다보니
이전에는 자식들 바글바글한 대가족 같은 느낌
곳간과 마당, 부엌 등 어딘가를 맡게 되면
그곳을 잘 지키고 담당하면 되었다면
지금은 자그마한 소가족?
(대가족 소가족 교과서 이후 처음 써본다, 핵가족은 뉘앙스가 좀 이상해서)
손이 많지 않기에 필요하면 곳간도 쓸었다가
마당도 살피고 부엌도 다녀오고 이리저리 움직여야 한다.
대가족은 많은 손들이 있어 최대한 안에서 풀려하고
소가족은 손이 부족하니 함께 하는 외부 동지와 협력으로 풀고
일하는 방식을 그렇게 풀어가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생각)
전 여친 현 여친부터 여러 가족의 유형까지 들어가며
이야기를 풀어봤는데 어쨌거나 지금의 여친인 이곳에서도
전과 마찬가지로 좋았다가 슬펐다가 기뻤다가 우울했다가
그렇게 배우고 성장하며 지내오고 있다.
(전 연애에서도 배우고, 지금 연애에서도 때론 달콤하고 때론 싸우며 배우듯이)
회사를 더 많이 옮겨본 사람들도 많을 텐데
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할 것이다.
떠날 때는 떠나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새로운 곳에 합류하면 합류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고
어느 곳이든 각자 그곳의 문화와 시스템이 있고
어디나 나의 합이 잘 맞는 부분도, 아쉬운 부분도 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합류를 할 때의 이유와 그 인연,
합류하고 나서 함께하는 케미와 경험을 만들어가는 것이고
현재에 집중을 하난거지 어디가 더 좋고 나쁨은 없다.
하나하나가 나의 일부이고 나의 선택이었으니까.
커리어는 연애와도 같다.
다만 사람도 1년을 만나봐야 조금 안다는 말처럼
1년도 채 안 되는 연애(=커리어)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지금 이곳과 만난지도 몇년이 되어가는데 시간이 지나 이 인연은 어떻게 될까?
또 몇년 후 나는 누구를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그 때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