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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케터초인 Jun 15. 2021

나는 슈퍼스타 땜빵 마케터다

땜빵용'마케터'는 시간이 지나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덧 12년 차 마케터
그 시작은 '땜빵'이었다.




2004년도 개봉했던 영화가 있다.



코로나 이전 500만, 1천만 관객이 넘쳐나는 극장의 황금기를 고려해봤을 때 당시 대박 흥행영화는 아니었지만 높은 평점에 좋은 메시지와 연기를 담은 영화라고 회자되고 있다. 이 영화는 실화 기반으로 만들어졌고, 특이한 인물에 주목한다.


바로 슈.퍼.스.타. 감.사.용.


1980년대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프로야구팀의 속한 투수, 이렇게 말하면 프로투수 괜찮네? 할 수 있겠지만 더 들여다보면 그 캐릭터가 아주 특이하다. 아니 특이하다 못해 대체 불가능해 보인다.


키 170cm. 몸무게 70kg. 작은 손. 게다가 왼손잡이. 애초부터 투수가 될 수 없었던 야구선수 감사용.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감사용은 팀에 왼손 투수가 없다는 이유 하나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투수가 된다. 이름과는 달리 스타 선수 한명 없는 삼미는 개막하자마자 꼴찌팀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고, 감사용 역시 선발 등판 한번 하지 못하고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낙인 찍힌다. 팀에 패색이 짙어지면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마무리 투수. 상대팀은 감사용이 나오면 감사해했다. 패배를 인정하고 경기를 포기했다는 시그널이니깐.


일평생을 야구만 알고 살아오던 사람이, 프로선수가 되어 꿈을 이뤘는데 패전 처리 전문 투수가 되어, 가치가 증명되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런 전문 투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 나는 이 감사용에 주목해보았다.



그 이유는 감사용이 걸어왔던 길과 나의 길에서 발견된 유사함,

무슨 이야기일까?





대학교 때부터 마케터가 되고 싶었던 초인, 그러나 취업준비를 하던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와 함께 찾아온 비좁아진 취업문. 가고 싶었던 광고회사부터 멋진 브랜드를 가진 회사의 마케팅 직무는 거의 뽑지 않았고, 게다가 ROTC라는 특성상 전역을 하는 시점에 맞춰 취업준비를 해야 했기에 심지어 더 좁은 상반기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했던 카드는 이러했다.


마케터를 포기하자.


아니, 정확히는 마케터 '직무'를 '잠시' 내려놓자. 가고 싶었던 미디어 회사에서 마케팅 직무는커녕 유사 직무도 공고가 나오지 않으며 그나마 뽑는 직무가 오직 '인사팀' 직무 단 하나였고,  많은 고민 끝에 출사표를 던지게 되었다. 완전 새로운 옷을 입어야 했다. 이것저것 안 가리고 지원하는 문어발 지원자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오히려 이전에 했던 마케팅 관련 경력들, 광고공모전 수상들을 감춰야 했다. 오히려 군생활과 대학시절 있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로 나의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여 문을 두드렸고, 운 좋게도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장기프로젝트를 가동하였다.

먼저 팀에 순응하며, 인사라는 직무에 적응하면서 기회를 엿보기. 첫 직무가 내 몸에 딱 맞지는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고 사회적 몸집이 클 때까지 기다렸다. 감사용이 170의 키였다고 한다면, 신입이었던 나는 당시 160이 될까말까한 몸집의 사회초년생이었기 때문에. (실제 키가 아닌 내공이나 경험 측면에서)


다음은 사내 네트워크 만들기.

시간이 지나 일에 적응해나가면서, 어느 날은 사내 동아리를 만들어 다양한 네트워크를 쌓으며 부서별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었고 (당시 한 번이라도 가입했던 사람이 150명 이상. 나름 최대 규모의 동호회였다) 또 인사팀이라는 직무상 특별한 어려움 없이 타부서와 교류해나갈 수 있었다. 그러기를 2년, 이제는 어느 정도 몸집이 생겼다고 판단하여 팀에 어필을 시작했고, 마케팅 부서에도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나가며 계속 기회를 엿보았다. 수개월의 시간에 걸쳐 쉽지 않은 과정을 지나 결국 마케팅팀으로 직무전환이라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 방식은 맞트레이드!!

반대로 인사팀을 꿈꿨던 마케팅소년이 있었고, 그 소년과 팀을 맞바꾸며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 다른 자리로 바꾸게 되었다. (심지어 이 소년도 비밀리에 움직이고 있었고, 같은 ROTC 후배였다는 비.틀.즈.코.드.)


추억의 비틀즈코드..


새롭게 몸 담게 된 곳은 운 좋게도 회사에서도 가장 존재감이 특별한 채널 사업부의 마케팅팀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프로투수를 꿈꾸던 감사용이 처음 야구 유니폼을 입었을 때처럼 감격스러웠을 수 있다. 그럼 현실은 어떠했을까?


슈.퍼.스.타. 감.사.용. 키 170cm. 몸무게 70kg. 작은 손. 게다가 왼손잡이. 애초부터 투수가 될 수 없었던 야구 선수 감사용.
마.케.팅.꿈.나.무. 사회몸집 170cm. 사회경력 3년 차, 마케터 0년 차. 애초부터 마케터가 아니었던 중고 신인 마케터 초인.



당시 주니어가 많던 회사의 분위기였기에 팀에서 중간 이상의 경력에 위치해 있었지만, 기본적인 용어도 프로세스도 익숙지 않아 눈칫밥 먹으며 알음알음 물어보며 배워나갔다. 하지만 팀에 1년 있었던 후배보다 경험이 부족했으니 알아가는데 시간이 필요했지. 당시, 회사는 특히 속해있던 사업부는 굉장히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많은 프로그램들이 론칭하며 일손이 부족하고 하루하루 새로운 변화들이 날아들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거기서 처했던 애매했던 나의 포지션. 연차는 그렇게 적지 않은데, 마케팅력이 짧았던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신규 프로젝트의 2인자였다. 프로젝트 리더로는 아직 애매하고, 그렇다고 서포트만 하기엔 머리가 컸기에 회사 나름의 적절한 포지션이었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회장 밑에 부회장이 있고, 동장 아래 부동장이, 반장과 함께 항상 부반장이 존재한다.

(더 생각해보니 실제로 일평생 부반장, 부회장만 맡아오기도 했었다.)


딱, 떠올려보면 그 '부'자가 붙은 것들의 역할이 아주 명확하지는 않지만, 또 적당히 필요하고. 없다고 해서 문제 되진 않지만, 또 있으면 좋고. 그래 그 정도의 기대치와 역할이 맞았던 것 같다.



2의 아이콘 콩..


그렇게 바쁜 프로젝트 중심으로 2인자를 연이어 맡아, 신입과 프로젝트의 리더 중간 자리에서 적절히 필요한 역할을 하며 적응하는 시간을 키워갔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며 아직 나만의 컬러를 내지는 못했으나,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내세우진 못했지만, 안정적으로 잘 챙기는 이미지를 구축해갔다. (안정적으로 잘 챙기는 게 마케터로서 그리 매력적인 이미지는 아니다)


그랬던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젝트 리더?

ㄴㄴ


그러기엔 감사용처럼 나는 아직 작은 체구였다. 바로 담당자가 부재하게 된 프로젝트의 빈자리 이어받기. 워낙 변동이 잦은 조직이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리더가 갑자기 어디론가 가거나 잠시 자리를 비우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여 내부에선 항상 그것들이 고민이었는데 그 적임자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프로젝트 부리더로 다양하게 챙겨 온 이력(?)을 가진 바로 이 사람 초인. 이전 담당자가 잘 세팅해놓은 것들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끌고 가면 되는 역할이었다.



잘 차려진 밥상


좋게 말하면, 누군가가 잘 차려놓은 밥상을 잘 어루만지고 조금씩 고치면 내 밥상이 되는 꿀같은 이야기겠지만 사회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치열하게 기획부터 시작까지 끌고 간 것이 아니면 (특히나 미디어콘텐츠는 기획부터 론칭까지가 메인이다) 온전히 나의 커리어라고 내가 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키 170의 작은 체구 마케터는 그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오히려 나의 역할이 생겼음에 이전처럼 성실히, 안.정.적.으.로. 임했다. (감사용도 아주 성실한 선수가 아니었을까?)


안정적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운명. 왜냐. 이어받은 프로젝트를 그대로 잘 살리면 본전인데, 밥상 차려지고 난 후에 이렇게 저렇게 내 입맛에 반찬, 요리 바꾸다가 잘못되면 날개 없는 추락을 해버릴 수가 있었기에. (게다가 아직 몸집은 172 정도!)



감사용은 선발 등판 한번 하지 못하고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 낙인찍힌다. 팀에 패색이 짙어지면 시도 때도 없이 나가는 마무리 투수. 상대팀은 감사용이 나오면 감사해하는데.


초인은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만한 프로젝트를 맡지는 못했지만, 프로젝트의 구멍이 나게 되면 적절히 구멍을 맡아 채워주는 대체 마케터. 초인은 역할이 주어지면 감사해하는데.




그렇게 나의 마케터 첫 1년은 감사용 마케터로 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1년 잔뜩 해서 알아놓자, 그리고 언젠가 몸집이 커지고 나서 나의 컬러를 캐릭터를 뽐내자라는 속다짐을 하였다. 비록 누군가의 프로젝트를 대체하는 마케터였지만, (좋은 말로는 백업 마케터, 그래 이 말이 더 그럴싸해 보인다) 그 역시 중요한 역할이었고 나는 빛나진 않았지만, 이 옷을 입기까지 치열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의 마케터 초기에는 화려하진 않아도 만족하며 즐거이 지냈던 것 같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원하던 직무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회사에, 매력적인 다양한 것들을 마케팅할 수 있게 해준 기회들에 감사하다고.



그러던 중, 사용에게도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최강 팀 OB 베어스, 그것도 OB의 간판스타 박철순의 20연승을 눈앞에 둔 경기. 삼미의 투수진은 누가 봐도 질게 뻔한 경기의 등판을 서로 미루고 급기야 기회는 감사용에게 넘어온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선발 등판. 딱 한 번만.. 이겨보고 싶었던 감사용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러던 중, 회사에 새로운 채널이 생겨나게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게 된 상황. 누가 봐도 힘들고 딱히 화려하지 않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서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분위기가 생겨나는데. 급기아 기회는 초인에게로 넘어온다. 이곳에 가면 나의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어. 딱 한번. 프로젝트를 시작부터 끝까지 끌고 가며 성공시키고 싶었던 초인의 꿈은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


영화의 결말은 스포라서 이야기할 순 없지만, 감사용은 어쨌든 선수생활에 걸쳐 1승을 이루어냈다. 그 1승은 수많은 패전투수 등판의 기회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를 놀릴 수도 있고 저평가할 수 있겠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이미 당시 프로선수의 연봉은 일반 대기업의 두배였다고 한다. 이를 통해 번듯한 아파트도 마련할 수 수 있었다 하고. 그리고 자신의 이름과 이야기를 따서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니 이 정도면 야구선수로 괜찮지 않을까?


초인, 위버멘쉬. 늘 자신을 뛰어넘는 자신이 되겠다고 외쳐온 초인 마케터는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자신의 의미를 새긴 1승을 거둔다. 심지어 그 1승의 관중은 없다. 애초부터 경기가 많이 드는 경기가 아니었으니. 구장도 선수진도 자그마한 경기였으니. 하지만 그 1승에서 배운 에너지로부터 지금까지 12년에 가까운 시간을 만들어왔는지도 모른다. 그 1승 후에, 지금의 회사로 적을 옮겨오게 되었는데. 대체 전문 마케터에서 (아니 백업 마케터) 스스로 뿌듯할 하나의 프로젝트를 하나는 쌓고 나왔다는 것에서 지금도 그 자체만으로 여전히 뿌듯하다.


그 1승은 어느 독서 프로그램이었는데, 이를 맡으며 배운 독서력과 거기서 발견한 즐거움은 지금도 점점 쌓여가고있고, 작은 구장이었기에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던 경험은 지금도 마케팅을 넘어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꿈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의 마케터 초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색깔도, 캐릭터도 밋밋하지만, 무난한. 안정적인 그런 마케터였다고. 인사의 피로 시작해 그 당시 마케터라고 외치기도 살짝 민망했던 그 초인은 이제 나름의 캐릭터를 갖추고, 자기의 주관이 생기고, 자기만의 색깔을 어느 정도 갖춘 키 179정도는 되는 마케터로 지금도 사회 어디선가 부단히 활동해나가는 중이다. 180이 넘어 더 강해질 그날을 기다리며.




프로야구 20년 역사상 은퇴 투수는 총 758명이다. 그중 10승 이상을 거둔 투수는 126명 뿐이며 1승 이상 거둔 투수는 431명이다. 나머지 327명은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야구계를 떠났다.


마찬가지로 마케팅팀에 들어오는 신입, 마케팅회사에 몸을 담는 사람은 수백에서 수천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다. 여기서 꾸준히 커리어를 지속하는 사람, 자신만의 브랜드나 마케팅업적을 쌓아 오래도록 이어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한단계씩 완성해나가는 것이 목표이고, 그 다음의 목표는 나만의 브랜드, 나만의 콘텐츠 만들기. 그리고 몸집이 작아 이제 막 시작하여 혼란을 겪고 있을 신입들, 혹은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꿈꾸는 이를 위한 작은 도움을 베풀기. 물론 현재 속한 회사를 위해서도 부단히 해나갈 것이다. 회사의 브랜드가 내게는 좋으니깐. 하나의 팬으로서 즐거이 일하고 있으니깐. 하지만 언젠가 내가 브랜드에게 온전히 몸을 맡겨야 하는 그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또 다른 변화를 마주해야 하겠지.


그때가 되면, 170아래에서 시작했던 백업 마케터는 190이 넘는 거인몸의 진짜 '초인' 마케터가 되어있을 수 있을까?



*커리어리에서도 매주 마케팅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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