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케터 이야기
모 매거진에서 진행한 인터뷰의 내용을 추려보았습니다.
10년의 커리어를 고민하고 담아보았습니다. 마케팅과 마케터에 대한 생각과 직장인이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 도움이 될 내용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해주셔 미래를 준비하시는데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본 내용은 2019년에 쓰인 글에서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주관적인 생각이라 정답이 아닐 수 있습니다.
2010년에 회사 생활을 시작해 올해 10년 차 직장인입니다. 현재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하 디즈니코리아)에서 마케터로 일을 하고 있어요. 모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다가 2015년에 디즈니코리아로 이직했어요. 이곳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한국에도 디즈니가 있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요즘에는 디즈니 영화의 인기가 대중적으로 높아지면서 존재감이 예전보다는 조금 더 커진 것 같아요. 제가 일하는 곳이 생소하다는 반응을 예전보다 덜 받거든요 (웃음).
이런 변화를 생각해보면 마케터로 제가 하는 일을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돼요.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좀 더 키워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고 의미있게 ‘디즈니’라는 브랜드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거죠. 그런 생각으로 이런저런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는 것이 제가 하는 일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그 과정은 힘들지만 재밌는 것 같아요.
저는 대학생 때부터 광고기획자나 마케터가 꿈이었어요. 광고공모전 수상 경력도 여럿 쌓을 정도로 열심히 했죠. 제 목표는 광고회사나 미디어 회사에서 일을 하는 거였어요. 하지만 제가 구직활동을 하던 시기는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았어요. 제가 입사지원을 했을 때는 가고 싶었던 회사의 채용 직무가 인사팀뿐이었어요. 추후 기회가 될 때 마케팅 직무로 부서를 옮기자고 생각을 품고 인사팀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인사팀 사원으로 첫 회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입사원 교육도 열심히 받았고 신입사원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한 번은 자사의 영화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지방의 어느 공장을 경찰관 분과 함께 급습했던 날도 있었어요.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아직도 잠복하고 있던 그날 기억이 생생합니다. 직원들 고과 관련 업무를 맡은 적도 기억에 나요. 당시 처음 도입된 시스템을 운영했는데 2천 명이 넘는 직원들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았거든요. 그때는 신입사원 패기로 투철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한 덕분에 큰 사건 없이 잘 응대했던 것 같아요(웃음). 나름 빠릿빠릿한 인사팀 직원이었지만 마음속 품었던 플랜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3년 내에 꼭 마케팅 직무로 전환하겠다는 목표 말이에요. 결국 실제로 바라던 대로 되었고 콘텐츠 마케터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몸담고 있는 회사는 브랜드를 바라보는 시야와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스토리가 탄탄한 것 같아요.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 브랜드마다 세계관이 이미 만들어져 있고 그 세계관에 속에 담긴 다양한 캐릭터 성격도 명확하죠. 그래서 이러한 세계관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 업무에 중요해요. 해당 캐릭터를 활용한 비즈니스에서 파트너사나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세계관과 캐릭터가 가지는 본질이 바뀌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회사 특성상 직원 대다수가 디즈니 캐릭터의 팬이에요. 팬심이 있으면 정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곳 중 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디즈니코리아는 크게 영화, 미디어, 소비재 이렇게 세 영역으로 나눠져 있어요. 그중 저는 소비재 사업부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디즈니 캐릭터를 활용한 제품들 이 존재하고 그 제품이 더 많은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동시에 소비자가 더욱 즐거운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가 맡은 업무입니다. 디즈니를 좋아하거나 좋아하게 될 소비자를 이해하고 디즈니 라이센스 파트너사들과 함께 다채로운 일을 펼치는 일도 제 몫이죠.
제가 선택한 방식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활용한 커뮤니케이션과 오프라인에서 차별화된 경험으로 브랜드와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디즈니 공간들이었습니다. 올해는 이태원에서 진행한 '곰돌이 푸' 캐릭터 테마로 만든 브랜드 공간과 '토이스토리'를 테마로 한 공간이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좋은 성과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겨울왕국'을 테마로 다양한 공간이 오픈되어 있으니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제가 풀어나가야 할 여러 가지 미션들이 있는데 하나씩 즐거운 경험으로 많은 대중에게 선보이고 싶어요.
예전에 다녔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회사 마케팅 팀에서 제가 주로 하던 일은 ‘콘텐츠 마케팅’이 었지만 현재는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것 같아요. 마케팅이라는 업무는 회사와 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어디에서 무얼 하든 마케터란 공통적으로 여러 부서, 여러 파트너사와 업무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마케터는 트렌디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요, 저는 ‘트렌디함’과 ‘커뮤니케이션’ 능력 둘 중 하나를 꼽으라면 후자인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에 능한 마케터가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부분도 있는 거 같은데 자기 계발을 통해 충분히 향상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외향과 내향, 이렇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겉(외향)으로 보이는 글자, 사람의 이야기 등이 전자라면 후자(내향)는 그 안에 숨은 의도와 니즈, 문제점을 캐치해내고 그걸 또 우회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좀 더 높은 단계의 의사소통 방식이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복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고수로 성장하는 일은 정말 중요해요. 저는 후자가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아직도 보완해나가는 중이에요.
재무, 개발, 디자인 이런 직무는 어느 정도 고유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마케팅은 전공도 불문이요 직무 경험에도 경계가 없죠. 그래서 저는 마케터란 치열하게 자기 계발을 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마케터로서 어떤 강점과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떻게 커리어를 키워나갈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치열함이 마케터에겐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콘텐츠 미디어 업계에 있으면서 ‘마케터는 철저하게 콘텐츠를 갈구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있어요.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를 마케팅하는 것만으로는 언젠가 한계가 있고, 또 제작 고유의 영역이 있기때문에 콘텐츠와 마케팅 그 가운에 영역을 어떻게 구축하고 확장할지가 관건인 거 같아요. 그게 저의 딜레마이자, 미션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케터는 철저하게 콘텐츠를
갈구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
다양한 업무를 진행해야 하는 마케터의 일이 가끔은 힘에 부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이 마케팅인 것 같아요. 그 매력은 뭘까요. 딱 잘라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영업을 하는 분들 중에 ‘나는 영업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회계나 재무 일을 하면서 ‘나는 숫자랑 잘 안 친한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데 마케팅 일을 하면서 나는 마케팅 일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어느 직업이나 그렇겠지만 자기 주관과 일을 대하는 자기 소신이 필요한 것이 마케터라는 직무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부분은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기억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마케터는 개인의 주관이 필요하다
마케터를 꿈꾸는 분들 중에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창의적인 사고가 마케터의 핵심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그것도 중요하지만 생각하는 방법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이 부분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취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부분일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요소를 탄탄하게 갖추고 그다음에 창의력, 상상력, 트렌디함 등을 쌓으면 더없이 좋겠지요. 저를 비롯한 많은 마케터들이 늘 고민하는 부분도 ‘어떻게 더 인사이트 있게 사고할까’, ‘어떻게 하면 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할까’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크리에이티브할까’, ‘어떻게 하면 더 트렌디할까’가 아니에요.
그리고 디테일의 영역.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좀 더 디테일을 추구하는 거예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낼 수 있을지, 작은 것들도 심도 있게 고민하고, 하나씩 개선해나가는 거에요. 저는 디테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면 어디서든 일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디테일에만 집착한다고 좋은 건 아니지만, 일을 잘하는 사람 치고 디테일이 약한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건 마케팅뿐 아니라 모든 직무에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아주 작은 디테일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디테일의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고 소통하는 방식,
마케터의 디테일
마케터로서 하는 일을 좋아하지만 사실 저는 일보다는 취미와 자기계발 쪽으로 할 얘기가 더 많은 취미부자입니다(웃음). 일만큼이나 취미 활동을 키우는 게 더 큰 고민인 사람이죠. 저는 회사 밖에서 저를 소개할 때 저의 창작 활동들도 저를 소개하길 좋아합니다. 회사 생활도 즐겁고 회사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들도 있지만 언젠가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취미와 콘텐츠 활동들이 시간이 쌓여 저만의 브랜드가 되도록 키워내고 싶어요.
마케터가 회사 브랜드, 상품 브랜드, 제품 브랜드를 맡아서 하지만 그것을 쌓으면서 결국은 자기만의 브랜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어요. 셰프도, 헤어디자이너도, 영어강사도 다 퍼스널 브랜딩을 만드는 시대인데, 어딘가에 속해있는 누구, 어딘가에 속했던 누구가 아니라 어떤 브랜드를 만든 누구, 어떤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누구라는 것이 마케터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마케터 뿐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이 회사 이후의 미래를 고민하고 상상할 때 꼭 기억하면 좋을 부분인 거 같아요. (끝)
*커리어리에서도 매주 마케팅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