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는데 돈을 들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꼭 헬스장에서 운동해야 운동하는 건가? 요가는 요가비디오 보면서 따라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 이게 나의 20대 초반까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도 이 생각에 큰 변화는 없다. 돈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운동은 할 수 있다. 산책, 달리기, 맨몸 운동... 마음만 먹으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 운동할 수 있고, 운동에 필요한 정보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돈을 쓰며 운동을 한다. 헬스장, 요가원도 등록해 봤고, 복싱도 배워 봤다. 물론 중간중간 운동을 쉬기도, 홈 트레이닝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굳이 돈을 쓰며 운동을 이어 나가는 것은 억지로라도 내 삶 한 구석에 운동이라는 카테고리를 끼워 넣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깨달은 사실은 돈을 쓰던, 쓰지 않던 운동은 삶에 필요하다는 사실 정도이다.
나는 녹초가 되도록 운동을 한 뒤 몸을 씻는 것을 즐긴다.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라, 그냥 아무런 이유 없이 하루 일과 속에 운동이 녹여져 있는 생활을 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에 생동감이 깃든다.
하지만 나 또한 처음부터 운동을 이렇게 즐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운동을 싫어하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운동을 할 때에는 ‘다이어트’라는 목적이 있었을 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더더욱 운동이 싫어지는 것은 덤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쩌다 운동을 즐기게 된 것일까? 그 시작을 이야기하자면 전 남자 친구인 ‘채 씨’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채 씨는 나에게 ‘잠수 이별’이란 것을 겪게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만나는 내내 아주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겁던 연애기간은 짧았고, 이별은 갑자기 찾아왔다. 어느 날 오후부터 그 사람과의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잠수 이별이구나, 하고 알아챈 것과는 별개로 당연히 나는 그때 굉장히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이별은 힘들다. 불현듯 그 사람이 생각나고, 현생은 엉망진창이 되어가며,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흐른다. 구질구질하게 읽지도 않는 카톡을 매일 남기는가 하면 어느 날에는 다 잊었노라, 헤어진 게 잘 된 일이라 말하며 깔깔거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엉망진창인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나를 요가원으로 이끌었다...!
세상에, 이별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요가원 얘기를 한다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이별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한다고 알고 있다.
이별이란 상황을 잊기 위해 잡생각이 나지 않는 무언가가 필요했을 때였다. 그리고 때마침 요가에 흥미를 보이던 친구가 나에게 같이 운동할 것을 권유했다. 대충 어떤 식의 권유였냐 하면,
‘나랑 같이 요가 다닐래? 요가하면 다이어트도 되고, 예뻐지고, 운동하면 잡생각도 안 나고, 그럼 금방 다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다이어트를 하고, 더 예뻐져서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것이 그 친구 말의 요지였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시 나는 더 예뻐지거나 말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은 생각마저도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와 함께 요가원에 등록을 한 것은 오직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다른 생각이 하고 싶지 않아서, 혼자 있는 시간이 벅차서. 오직 그를 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운동’을 하는데 돈을 썼다.
그리고 이것은 진짜로 효과가 있었다. 일이 끝나자마자 집에 가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친구와 조금 일찍 만나 수다를 떨며 요가원에 갔다. 그리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요가를 했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연달아 두 타임을 하고 나온 적도 있었는데, 그러면 그날 밤에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꿀 같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나와 요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아직도 처음 요가원에 들어 가 수업을 들었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겨울이었고, 그래서 요가원 안도 조금은 찬 기운이 돌았었다. 나는 개인매트가 없었기에 비치되어있던 요가매트 위에서 낑낑거리며 동작을 익혔다. 선생님의 말을 따라 천천히 호흡하며 동작을 만들고, 버티고, 버티고, 또 버티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찬 공기는 느껴지지도 않은 채 몸에서는 땀이 송골송골 올라왔고, 녹초가 된 몸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될 즈음이 되어서야 끝이 나곤 했다.
모든 동작을 마친 뒤엔 사바사나 라는 동작을 한다. 손발을 늘어뜨린 채 눕는 송장 자세인데, 그 동작을 할 즈음이면 선생님은 어떤 음악을 틀어주고는 일일이 돌아다니며 목 부근에 아로마 오일을 발라 주셨는데, 그 순간이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던지 그때의 감각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요가란 힐링이다.
그냥 쭉쭉 스트레칭이나 하는 쉬운 운동이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져 있던 멘털을 다시 곧게 세워준 운동이기 때문이고, 몸을 움직이며 머리를 비울 수 있게 한 운동이기 때문이고, 내 안의 호흡을 의식하게 만들어 준 운동이기 때문이고, 내 몸을 통제하며 나의 하루를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 경험 이후 나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요가를 추천해 왔다. 살이 쭉쭉 빠지는 운동도 아니고, 보이는 것처럼 예쁘기만 한 운동도 아니지만 내가 요가를 통해 겪은 힐링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운동이 꼭 남에게도 잘 맞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히 ‘요가? 나는 그거 별로던데.’ 하는 시큰둥한 반응도 종종 있다. 그렇다면 아쉽지만 그 사람은 그 사람에게 맞는 운동을 하면 된다. 어떤 운동을 하던지 몸을 단련하고 작은 힐링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종목이 뭐가 됐던지, 그게 다 무슨 상관이 있을까.
다만, 어떤 운동이 나와 맞을지, 맞지 않을지는 직접 해 보지 않고는 모른다. 나 또한 내가 요가와 잘 맞을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 해 본 요가는 나에게 꼭 맞았고 앞으로 평생을 해 나갈 운동이 되었다.
평생을 할 것이라 장담하는 운동이 있다니, 이 얼마나 특별한 일인가.
내 주변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운동을 잘하지 않는다. (다이어트를 위한 운동은 여기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 하고 싶은 운동이 없는 것은 물론, 어떤 운동이 본인의 스타일과 맞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나는 그런 여성들이 꼭 한번 일상생활 속에 운동이라는 옵션을 넣어보길 바란다. 그것이 요가가 아니어도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되며,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 운동은 산책일 수도, 달리기일 수도, 헬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간에 운동을 함으로써 더 많은 활력을 얻을 것이고, 몸과 정신 모두가 건강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전 남자 친구인 ‘채 씨’에게 별다른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고마운 일이 있다면 바로 이 것이다.
그때가 아니었다면 내가 요가를 제대로 시작할 일은 없었겠지. 고마워. 내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 듯 당신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