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달려가는데 한국은 왜 제자리일까
휴가를 쓰지 않고 출근 전 진료가 가능하다면?
(가설) 출근 전 진료가 가능하다면?
아침 6시에 기상, 회사 출근 준비를 하다 보니 몸살 기운이 있는지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래서 회사 가기 전에 스마트폰을 켜고 원격 진료 요청을 하여 의사와 화상 연결을 한다. 간단한 상담과 진단을 받은 뒤 전자 처방전이 약국으로 전송되고, 해당 약은 정해진 목적지로 배달이 된다. 회사를 가는 길에 약국이 보인다면 환자는 시간이 될 때 해당 진단지로 약을 찾아온다. 이미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원격 의료가 상당히 일상으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불법이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삶의 변화
코로나19는 우리의 많은 자유를 제한했지만, 의외로 기술적으로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생각만 하던 재택근무라던지, 원격의료 등의 편리한 경험들 말이다. 2020년도 코로나19가 확산을 하면서, 우리나라 정부는 한시적으로 전화 치료 그리고 처방을 허용했다. 개인적으로 '닥터나우'라는 비대면 진료 앱을 사용하여, 코로나 확진 당시 진료를 받고 처방약을 퀵으로 받은 경험이 있다. 이 당시 환자들은 편리함을 경험하였고, 특히 만성적 질환 환자 그리고 이동이 어려운 고령층에게 긍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위기 경보 단계가 해제되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보건복지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보건복지부 공고 제2023-412호) 23년 6월 1일부 시행]
- 코로나19 동안 임시 허용되었던 전화, 화상 진료가 23년 5월 종료
- 제도 공백을 막고, 환자와 의료계(해당 기능 참여자) 반발 고려 "시범사업" 형태로 제도화.
- 23년 6월 1일부 시행
왜 우리나라에서 원격진료가 막혔을까?
원격진료가 막힌 가장 큰 이유는 의료계의 반발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원격진료가 도입될 경우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으로 몰려서 지역의원이 무너질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한 화면상으로는 환자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응급 시 대응이 불가능하다는 안전성의 문제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러한 의료계의 반발에 따라서 강하게 원격진료를 밀어붙이지 못하였고,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제한적으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하였다.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참여가 가능하고, 비대면 약 배송은 불가능해졌으며, 초진 환자는 특정 조건을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진료가 불가능한 형태로 바뀌었다. 결국 원격의료는 검토 중이라는 말만 반복되고 있고, 국회에서도 일부 법령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21대 국회(2020-2024) 임기 만료로 모두 폐기된 바 있다.
미국 : 보험제도 안착 그리고 원격진료 산업화
미국은 코로나 이후에 원격의료가 눈에 띄게 크게 성장하였다. *CARES Act이 발표된 이후, Medicare(연방 노인 의료보험)과 민간보험이 원격진료 비용도 인정을 하게 되면서 이용 건수도 1년 만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CARES(Corona virus Aid, Relief, and Economic Security Act) Act?
- 코로나19 지원, 구제, 경제안정화 법 (코로나 대응 긴급 경기부양 패키지)
- 규모 : 약 2조 달러
- 시점 : 2020년 3월 27일, 트럼프 대통령 서명으로 발표
특히 정신건강과 만성질환 관리에 대해서 하고 있고, 환자는 스마트워치나 혈당 측정기를 통하여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전송하고, 주치의는 이를 실시간 확인하여 치료 계획을 조정한다. 또한 미국의 BetterHelp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수백만명의 환자에게 원격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법령으로 인해서 보험 제도가 가능해지면서 급격하게 시장이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국 : 빅테크 기업 기반의 초대형 플랫폼
중국은 미국과 동일하게 땅이 크다 보니, 지역 간의 의료자원의 불균형이 심각한 편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과 같은 대형병원에서는 수천 명의 환자가 몰리고, 농촌과 같은 지역은 의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개선을 하려고 하고 있다.
알리바바 헬스, 핑안그룹의 굿닥터, 텐센트의 위닥터 같은 플랫폼은 이미 수억 명의 사용자가 있다. 환자는 앱을 통해서 의사와 상담을 하고 전자로 처방을 받는다. 그리고 약은 택배 또는 배달처럼 목적지로 배송된다. 또한 AI 기반 증상 체크 기능을 통해서 의사와 상담 전에 환자가 자가 진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중국은 이렇듯이 지역별로 의료시스템 불균형을 극복하겠다는 중국 국가전략 그리고 빅테크의 자본과 기술력을 결합하여 원격의료가 확산되었다. 우리나라는 의료계가 강력하지만,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정책을 밀어붙여서 산업을 성장시킨 사례는 다양하다.
유럽 : 의료복지와 디지털 전환의 결합
우리도 인지하다시피 유럽은 보편적인 의료복지가 잘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원격진료가 자연스럽게 제도로 편입을 하였다.
영국의 경우 NHS(National Health Service)라고 하는 국가 차원에서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있다. 이러한 NHS는 화상 진료와 앱 기반 예약, 처방 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에 NHS 앱을 수천만 명이 다운로드하면서 원격 진료를 기본 옵션으로 삼은 바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2019년에 들어서 디지털 헬스케어 법(DVG, Digitale-Versorgung-Gesetz)을 제정해서 원격 진료뿐만 아니라 앱 기반 치료 프로그램에도 보험을 적용하고 있다. 의사가 디지털 치료제를 처방하면 건강보험이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이다. 이는 세계 최초로 의사가 앱을 처방하고 보험이 비용을 내는 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제도화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후에 독일의 다양한 스타트업들이 활발하게 앱을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들도 진출을 확대하였다.
북유럽 국가들은 의료 인력 부족을 보완하기 위해서 원격으로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핀란드, 덴마크 등 국가에서는 농촌의 환자가 심전도, 혈압 데이터를 전송하면 의사가 원격으로 관리를 한다. 환자는 장거리 이동의 부담을 줄이고, 국가 전체의 의료비도 사전 방지 차원에서 절감이 되는 효과를 갖고 있다. 유럽은 이렇듯이 원격의료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복지 체계의 효율화 측면에서 보고 있다.
헬스케어 웨어러블 디바이스 시장은 성장하고 있는 한국
우리나라는 원격 진료 제도 자체는 한정적으로 제공을 하지만, 건강관리를 위한 앱 그리고 웨어러블 기기 산업은 빠르게 성장을 하고 있다. 스마트워치로 심박수를 측정하는 것은 문제없지만, 해당 데이터를 의사에게 전달하면 규제에 걸린다.
비의료기관 플랫폼이 환자 데이터를 모아서 의사에게 전달하는 행위는, 불법 의료행위 중개로 간주될 수도 있고, 의사가 환자 데이터를 원격으로 모니터링하는 행위 자체도 원격진료로 분류되기 때문에 현행 제도에서는 시범사업 조건 아래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가, 오히려 환자를 제도권 밖으로 밀어내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한다. 환자와 기업은 이미 기술을 경험하고 있지만, 법과 제도로 인해서 더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규제라는 이름으로 환자를 제도 밖에 세워둘 것인가?”
무엇보다, 해외의 흐름은 분명하다. 미국은 보험 제도를 통해 원격의료를 제도 안에 안착시켰고, 중국은 빅테크와 국가 전략을 결합해 빠른 확산을 이끌었다. 또한 유럽은 복지 체계와 디지털 전환을 접목해 원격의료를 국민 서비스로 자리매김시켰다.
반면에 한국은 여전히 시범사업이라는 시험대 위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제도화의 속도가 늦어질수록, 기술은 더 빠르게 제도 밖에서만 자리를 넓히게 된다. 또한 글로벌 시장에 진출을 하기에도 제한이 된다.
원격의료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고령화·의료 인력 부족·지역 의료 불균형을 풀어낼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원격진료에 대한 기술은 이미 준비됐다. 결국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규제라는 이름 아래 환자들은 언제까지 제도 밖에 세워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