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이 아닌 사회적 합의와 제도가 진짜 혁신의 성패를 가른다
재생에너지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오르고 있다. 태양광 패널의 경우에는 효율성이 문제였는데, 그 효율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또한 가격 또한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풍력의 경우에는 어떨까? 풍력 터빈은 초고층 건물처럼 거대해져서 예전보다 훨씬 많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이러한 재생에너지 기술 외에도 에너지 저장장치(ESS)와 스마트그리드도 상용화되면서, 생산과 소비를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기술적 토대도 마련이 되었다. 물론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 따라서 강수량이 부족하거나, 풍량이 부족하거나, 날씨로 인해서 태양광이 부족하는 등. 지역적인 이슈는 있을 수 있다.
다른 사항들을 두고 기술만 보았을 때는 재생에너지가 확산되는 데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에너지 전환은 생각보다 느릴까?라고 생각해 본 분들도 있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의 현실은 입지에서 멈춘다
태양광 발전을 예시로 들면, 산을 깎거나 해서 자리를 마련해야 되는데 이 경우에는 산림훼손 또는 자연경관을 파괴할 수 있다는 문제 때문에 지역 주민 및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난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하지만, 이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때문이다. 또한 농지 위에 패널을 세우려고 한다면 이는 결국 식량 생산량과의 문제가 발생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충청, 전라 지역에서는 농지 태양광 사업을 두고 주민과 지차제가 갈등을 겪은 사례가 많다. 예를 들면 전라 나주시의 계양마을에서는 2021년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이 제대로 가동이 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이 당시 주민들은 개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송전 선로 설치를 반대하면서, 시설이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주민 공청회도 없이 사업이 진행되어서 실제로 사용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기도 한다.
풍력도 비슷한 사정이다. 바람이 충분한 곳에 입지를 두고 설치를 해야 하다 보니 바람이 풍부한 강원도 또는 제주도 등지에서 풍력발전이 유리하다. 그렇지만 실제 사업화 단계를 검토하고 실행을 하게 되면 풍력 터빈에서 발생되는 소음, 저주파, 조망권 등의 문제로 주민의 민원이 발생하게 된다. 제주도의 경우에는 풍력단지가 늘어나게 되면 경관 훼손이 일어날 수 있어서 반대 의견이 많고, 강원도 지역도 비슷한 입장에 있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풍력을 생산하는 해상풍력의 경우에는 괜찮지 않을까 하다가도, 이 또한 어민들과의 충돌이 반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어민들은 풍력 단지가 해상에 들어서면 조업 구역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어획량이 감소한다는 논리로 반대를 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태양광 또는 풍력 발전 시설이 생겨난다면, 더 큰 문제가 남았다. 바로 송전망이다. 발전소를 세우는 것보다 전기를 보내는 길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울진 신한울 원전에서 경기도까지 연결되는 송전선 건설은 수십 년 동안 주민의 반대에 있다. 사실 이 또한 대표적인 님비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재생에너지는 기술력의 문제기보다는 공간 그리고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부 제도 절차는 장벽이 될 때도 있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입지의 문제와 동시에, 재생에너지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정부 제도의 절차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풍력단지를 하나 개발을 하려면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예를 들면 환경영향 평가를 통과하고, 각종 인허가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이 절차가 상당히 오래 걸린다. 또한 그 이후에는 주민들과의 협의하는 절차들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강원도 영월의 풍력단지는 7년 정도 시간을 끌면서 결국에는 사업이 무산된 적이 있다. 기술적 문제, 입지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행정 절차 그리고 사회적인 갈등이 발목을 잡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태양광의 경우에도 정부가 보급 목표를 높게 세우기는 했지만, 실제로 산지 태양광의 경우에는 산사태 위험 또는 경관 훼손 등의 논란으로 인허가가 까다롭다. 또한 주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기술이 준비되더라도 그것을 설치하여 운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로는 제도가 촉진을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제도가 언제나 방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기술을 크게 밀어주는 도약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RPS라고 해서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 제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발전 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하는 강제적인 제도이다.
이 제도 덕분에 거대 자금들을 바탕으로 태양광, 풍력 시장이 초기 단계에서 점프를 할 수 있었다. REC라고 불리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 제도 역시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추가 수익을 얻게 함으로써 민간 투자자들의 투자를 이끌어 냈다.
긍정적인 행정적인 시도도 있다. 바로 주민참여형 제도이다. 전남 신안군에서는 해상풍력 발전소 지분 일부를 지역 주민들이 보유할 수 있도록 설계를 했다. 이를 통해서 주민들이 반발을 줄이고, 오히려 지역 소득으로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려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또한 신한 군에서는 태양광발전소의 일정 지분을 지역 주민에게 배분하였고, 이를 통해서 발생하는 수익을 주민들에게 환원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24년도 말 기준 햇빛연금 누적 지급액은 200억 원을 넘어섰고, 이 혜택을 받은 주민은 전체 군민 중 3분의 1이 넘는 1만 4천여 명에 달한다. 이러한 신안군의 주민참여형 제도를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주민들이 공감을 할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도 정부 관계자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다.
EU의 경우에는 재생에너지 지침(RED)을 통해 각국에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 목표를 강제했다. 덴마크와 독일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민이 발전소 지분에 참여를 하거나, 수익을 공유하는 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결과 갈등은 완화가 되었고, 주민들은 발전소 설립의 반대자이기보다는 이를 통해서 혜택을 얻는 투자자 그리고 수혜자가 되었다. 덴마크의 전력 공급원 절반이상이 풍력인 것은 이러한 제도적인 안정성에서 나왔다.
미국은 오랜 기간 연방·주 단위 보조금 정책을 통해 태양광과 풍력 투자를 확대해 왔다. 아무래도 토지가 충분하기 때문에 설립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은 점도 한 몫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는 태양광 패널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하는 등 재생에너지보다는 화석연료 산업을 우선시하는 기조가 강했다. 이 시기에 많은 사업자들이 불확실성에 투자에 주저하기도 해서 성장이 저조되었다.
그 뒤에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면서 2022년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통과되면서 다시 판이 뒤집혔다. 대규모 세액공제 그리고 보조금을 통해서 태양광, 풍력, 전기차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리고 글로벌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들면서 산업이 급격히 성장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기조는 다소 변화가 있을 예정이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미국 사례를 보아도 정부에서 정책을 어떠한 방향으로 잡는가에 따라 같은 기술이 눌리기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재생에너지 기술은 상당히 고도화가 되어있다. 이미 준비된 상태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입지 갈등 그리고 제도의 한계로 인해서 멈춰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 유럽과 미국의 사례는 제도가 때로는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진짜 혁신은 기술실험실이 아니라, 제도와 사회적 합의의 장에서 완성된다.
재생에너지는 기술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입지와 제도에서 멈추고, 동시에 그곳에서 다시 날아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