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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이 기술을 앞지른 나라들 - 기술의 속도전

중국, 이스라엘 그리고 우리나라 기술정책

by 백군


기술과 제도는 언제나 복잡한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 우리는 흔히 기술은 빠른데 규제가 이를 막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실제로 우버, 에어비앤비, 핀테크 등 혁신 서비스들이 제도적인 장벽에 부딪혀서 성장을 늦춘 사례는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원격진료라던지, 배달로봇 등에 대한 규제의 벽을 넘지 못한 기업들이 많았다.


그러나 기술과 제도의 관계는 이런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스스로 시장을 열기도 전에 정부 주도의 정책이 오히려 기술의 멱살을 끌여당겨 성장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많다. 기술이 규제에 막히는 모습만큼, 정책이 기술을 앞질러서 육성한 항목들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정책이 기술의 성장을 어떻게 이끌어 내었는지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이야기를 해볼 예정이다. 대표적으로 중국, 이스라엘, 싱가포르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험을 통해서, 정책이 어떻게 기술보다 먼저 방향을 제시하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었는지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중국: 국가가 기술의 방향을 설계하는 나라

중국은 모두가 알다시피 공산당체제에서 정부가 특정 산업을 직접 찍고 정책으로 밀어붙이는 나라이다.

기술이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정책이 먼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과 시장이 그 정책을 따라가는 구조이다. 물론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공기업 같은 기업들도 많은 구조이다.


천인계획(千人計劃) Thousand Talents Plan)

2008년 중국은 해외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영입하기 위해서, 천인계획이라는 정책을 만들었다. 중국의 행정부인 국무원(國務院)의 주도로 출범시킨 계획이다. 귀국한 연구자들에게 연구비, 주택, 자녀 교육까지 다양한 파격적인 지원을 제공하였다. 기술이 중국 내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책으로 인재들을 끌어와서 생태계를 만들려고 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학교 등록금이 동결된 이후에, 교수진들의 연봉의 상승이 적어지고, 오히려 해외에서 박사를 한 뒤 취업을 하는 게 더 나아서 귀국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은 점으로 고려하면,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정책 덕분에 중국은 양자정보, 반도체, 바이오 분야에서 빠른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자동차 번호판 정책과 전기차 산업

중국은 자동차 시장 그중에서도 전기차 시장을 육성시키기 위해서도 정책적으로 대응을 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는 내연기관 차량 번호판 발급을 극도로 제한했다. 번호판을 사야 하는 곳이 있었고, 그 번호판의 가격은 웬만한 차량의 가격보다 비쌌다. 또한 번호판을 추첨으로 뽑아야 하기 때문에, 차량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러한 절차들이 없거나 우선적으로 배정이 되는 전기차를 구매하였다.

사실상 전기차를 구매해야만 차량을 등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소비자들의 선택은 자연스럽게 전기차로만 제한이 되었고, 기업은 전기차로 전략을 전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책의 혜택을 받아서, BYD 같은 기업들이 성장을 폭발적으로 할 수 있었고, 오늘날 중국이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 로봇 국가계획(2023)

2023년 중국의 공업정보화부(MIIT)는 “2030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을 새로운 경제 성장 엔진으로 삼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 이후에는 다양한 로봇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서 로봇들을 전시하기 시작하였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아직 기술적이나 산업적으로 미성숙한 분야지만, 중국은 2027년까지 자동차 수준의 로봇을 개발하겠다고 명문화하였다. 기술의 가능성보다는 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보조금이나 혜택을 바탕으로 기술목표에 대해서 선언을 하고. 기업들이 이를 만들도록 하는 중국의 속도전이 시작된 것이다.


Deepseek(딥시크의 등장)

최근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2024년 이후 중국의 대형 언어모델 DeepSeek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오픈 AI나 앤트로픽 같은 미국 기업에 비해 GPU 자원과 데이터 접근에서 불리했지만, DeepSeek은 “적은 자원으로도 세계적 성능을 달성하는 효율적 모델”로 인정받았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사용이 제한되어 있기는 하다.


이러한 인공지능의 발전도 중국의 정책이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 잠정조치>를 발표해, AI 서비스 제공자에게 안전성 검증·데이터 보안·검열 체계를 갖추도록 강제했다. 동시에 AI를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GPU,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했다. 규제와 지원을 동시에 앞세운 정책의 압박 속에서 기업들은 반드시 이 궤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DeepSeek은 그 틀 안에서 등장한 최신형 성과였다.

중국은 천인계획을 통해서 많은 인재들을 영입하였고, 번호판 정책으로 전기차를, 휴머노이드 계획을 통한 로봇시장 성장, 그리고 딥시크와 같이 새로운 기술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정책적으로 먼저 이끌어내는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네이션을 만든 정책의 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지만, 오늘날 ‘스타트업의 국가’로도 불린다. 이 성과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이스라엘의 요즈마(Yozma) 프로그램(1993)이다. 정부가 초기 벤처캐피털 펀드를 조성해 민간투자와 매칭 방식으로 투자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민간이 정부 지분을 인수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아예 벤처 생태계의 구조를 디자인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성공은 지금 이스라엘 스타트업 생태계의 출발점이 되었다. 또 하나는 군사기술의 민간 이전이다. 정보부대 Unit 8200에서 다뤘던 첨단 사이버보안 기술이 제대 후 창업으로 이어졌고, 사이버보안과 핀테크 분야에서 세계적 유니콘 기업들이 속출했다.

물과 농업 분야에서도 이스라엘은 가뭄을 극복하기 위해 일찍부터 담수화와 점적관개 기술을 정책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는 국가 생존 전략이면서 동시에 수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스라엘의 사례는 기술이 우연히 성장한 것이 아니라, 정책이 먼저 실험을 설계하고 생태계를 짠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싱가포르: 규제 샌드박스로 앞서 나간 실험장

싱가포르는 작은 도시국가지만 정책의 속도와 실험 정신에서는 세계적이다. 2016년 도입된 MAS(싱가포르 통화청) 핀테크 규제 샌드박스는 대표적이다. 새로운 금융 서비스가 기존 규제 때문에 시작조차 못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 기간·범위 내에서 규제를 유예하고 실험을 허용했다. 성공적으로 검증된 기업은 정식 금융 라이선스를 받았다.


예를 들면 Policypal이라는 보험 스타트업은, 소비자가 모바일 앱 하나로 다양한 보험 상품을 비교 구매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원래는 보험업 인허가 규제가 까다롭지만,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파일럿 서비스를 한 뒤에 정식 인가 절차로 이어지면서, 현재는 일본 소프트뱅크 계열에 인수되기도 할 만큼 성장을 하였다. 이러한 제도들로 인해서 싱가포르는 동남아 핀테크 허브로 떠올랐다.


또한 2014년부터 추진된 스마트 네이션(Smart Nation) 전략은 도시 전체를 디지털 테스트베드로 삼았다. 교통·의료·교육 등 사회 인프라를 국가가 디지털화했고, 기업들은 이 기반 위에서 서비스를 얹었다. 정책이 먼저 플랫폼을 열고, 기술이 뒤따른 사례였다.


한국: 정책이 기술을 끌어올린 순간들

한국은 흔히 “규제가 기술을 막는다”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통신, 반도체, 인터넷 분야를 살펴보면 오히려 정책이 기술을 앞질러 산업을 키운 순간들도 분명히 있었다.


인터넷 강국

IMF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정보화로 위기를 극복한다’는 기조 아래 전국에 광케이블망을 깔았다. 당시에는 수요가 충분하지 않았지만, 정책이 먼저 길을 닦았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했고, 온라인 게임·포털·전자상거래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반도체 국가 전략

1980~90년대, 정부는 반도체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세제 혜택, R&D 지원, 산업단지 조성을 밀어붙였다. 이는 삼성과 하이닉스가 세계 1위 메모리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정책이 기술을 앞질렀을 때, 그 효과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산업의 방향을 통째로 바꾸는 힘으로 나타난다. 물론 위험도 크다. 기술이 성숙하지 않았을 때 정책이 너무 앞서가면 실패의 부담은 사회 전체가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성공할 경우, 그 사회는 오히려 글로벌 무대에서 새로운 경쟁 우위를 확보하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속도전을 목격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 바이오, 우주 산업은 국가마다 다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 어떤 나라들은 여전히 기술을 따라가느라 바쁜 규제에 머물고 있지만, 또 다른 나라들은 이미 정책으로 미래를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앞으로의 10년, 어떤 나라가 선두에 설지를 결정할 중요한 변수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다양한 관심이 필요하고,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의 컨트롤 타워의 업무 그리고 산업에 대한 업무를 갖고 있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대통령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무총리실 규제위원회 등의 기관들에서도 빠른 선택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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