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업무, 권력과 기업 사이 보이지 않는 조력자
로비하는 건 나쁜 거 아닌가요?
기술의 발달 그리고 정부의 규제 사이의 줄다리기에 대해서 글을 쓰면서 언젠가는 한번 다뤘으면 하는 내용이 있었다. “대관(對官)”이라는 기업에 있는 업무 말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로비스트가 하는 업무들에 대해서 배우고, 우리나라 대관팀들에서 하는 업무들을 보면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직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관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묘하게도 음지의 단어로 취급되곤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던 높으신 분들의 트렁크에 실리게 되는 사과박스나 청탁 자금 등을 전달하는 것과 같은 음지의 업무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대관팀을 운영한다고 하면, 기업이 정치권과 거래를 하는 조직, 로비스트라는 말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관은 누군가의 청탁이나 부탁을 하기보다는 훨씬 더 많은 업무들을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 속에서 정부의 제도를 실제 현실에 맞게 조율을 하기도 하고, 기업의 규제 또는 정책에 대한 목소리를 공적 시스템 안으로 전달을 하는 조율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더 크다. 기술이 혁신을 이끌지언정, 제도와 규제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는 문제가 생기곤 한다. 신기술이 막히게 된다고 해서 기업이 법을 바꿀 수는 없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실제로 수익이 창출되는 현장을 모르면 실효성 없는 법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고민들의 사이에서, 현실과 정책의 간극을 좁히는 사람들의 역할이 바로 대관 담당자 그리고 미국에서는 로비스트라고 불린다.
우리나라 대관업무 – 정책을 이해하고 번역하는 사람들
우리나라 기업의 대관팀은 흔히 국회 담당 또는 정부부처, 법원 등을 상대하는 부서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NGO나 다양한 시민 관련 단체들도 상대하기도 한다. 대관팀은 알려진 업무 외에도 대부분은 정책 대응 그리고 제도 개선을 위한 정보 해석을 많이 한다. 또한 정부부처에서 기업들로부터 취합을 해야 하는 자료들 예를 들면 수출실적, 환경 이행 자료 등등을 대관팀에서 정부에 제출을 하곤 한다.
매일같이 상법 개정에 대한 검토 의견이나 새로운 규제 그리고 법안이 등장하는 우리나라 구조상, 대관 담당자가 얼마나 잘했는가에 따라서 기업의 생존이 좌우될 정도로 많은 역할들을 수행하곤 한다. 국회에서 운영하는 의안정보시스템을 모니터링하기도 하고 관련 담당자들을 만나면서 법안의 진행상황을 추적하고, 그리고 규제기관의 행정예고나 입법예고 문서들을 분석하여, 속해있는 기업에 어떠한 장점이나 단점이 있을지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 정책 변화의 신호들이 보이게 되면, 기업 내의 유관부서들과 공유하여 대응 전략을 같이 세우곤 한다.
별도로 대관팀이 정부 관계자를 만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협회 또는 다양한 포럼 등을 통해서 기업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전달을 하기도 하고, 정책 간담회를 열어서 현장에 발생할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업무들을 하다 보니 우리나라 대관 담당자들을 보면 크게 4가지 정도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1) 전, 현직 공무원 출신
정부 조직의 의사결정 구조와 공무원들의 언어를 잘 아는 사람들이 정책 해석 그리고 소통에 강점을 가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내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대관팀에는 전, 현직 공무원 출신들이 많다. 에너지 관련된 대기업이라면 산업통상자원부나 환경부 관련된 공무원 출신이. 교통에 관련된 기업이라면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출신 공무원, 해외 관계를 위해서라면 외교관 출신 등. 속해있는 산업과 유사한 정부부처 또는 국회 상임위원회를 경험한 보좌관 등이 경력직 채용을 통해서 많이 입사를 하곤 한다.
2) 언론인 출신
어떤 회사는 대관 업무와 언론 활동들을 같이 하기도 하고, 언론인들도 특정 정부부처를 출입을 다양하게 하였거나, 관련된 업무들을 한 사람들이 대관팀에 있기도 한다.
언론인으로 활동할 당시 현장에서 기업들을 방문하기도 하였고, 정부부처에서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정책과 산업의 용어들을 통역사처럼 번역해 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3) 법학, 정책학, 행정학, 정치외교 등 전공자 출신
아무래도 법안 개정이나 법령들을 보려다 보니, 정부 시스템이나 구조에 대한 이해도 있어서, 자료 접근성이 있는 전공자들이 많다. 법령 분석 또는 제도 설계에 능한 전문가들이 업무를 같이 하기도 한다.
4)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관리자.
위와 같은 출신들 외에도, 해당 기업 또는 산업 군에서 현장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현장의 언어들을 전달을 해주고 전문성을 가지고 해결을 하기 위해서 업무를 많이 하곤 한다.
물론 담당하고 있는 부처 또는 업무의 누군가를 알고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 업무와 관련돼서 어떤 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정책에 대한 이해 또는 그들의 언어에 대한 이해도가 없이 관계만 쫓게 되면 지속성을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에는 ESG, 인공지능, 자율주행, 로봇 등 신산업 분야가 늘어가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인재들도 대관업무로 하나둘씩 투입이 되고 있는 추세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대관업무에 대한 투명성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높은 편은 아니다. 미국처럼 공식적으로 로비 등록제를 하거나 활동 공개에 대한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하는 업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관 = 로비 = 부정이라는 인식이 조금은 한편에 남아있곤 한다. 물론 김영란법이라고 불리는 청탁금지법이나 금융실명제 이후 등등. 시대가 변화하고 다양한 법들이 생겨나면서 부정의 수단들도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언젠가는 실제로 하는 업무들에 대한 가치를 잘 봐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몇 년 전부터 규제샌드박스 제도나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하면서, 대관의 역할은 점점 정부와 협력을 하는 거버넌스 실무자로 변화를 하고 있다.
미국의 로비스트 – 제도화된 공공정책의 전문가들
미국의 로비스트는 법적 제도를 통해서 명확한 제도적 틀 안에서 움직인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 때 로비스트 등록법(Lobbying Disclosure Act, LDA)을 1995년에 제정을 함에 따라 모든 로비스트는 정부에 등록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어떤 사안에 대해 로비를 했는지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또한 공개된 자료는 미국의 상, 하원 사무처 웹사이트 등을 통해서 일반 대중이 열람 가능하다. 또한 미등록 또는 허위보고를 할 경우에는 벌금형이 있고, 악의적으로 위반을 할 경우에는 최대 5년 이하 징역형도 가능하다.
해당 법은 과거 1972년도에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이후 불투명한 정치자금과 로비 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있던 규제들이 발전을 해온 결과물이다.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Scandal)
당시 1972년도 워싱턴 D.C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에는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본부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닉슨의 재선 캠프 인사들이 해당 호텔에 도청 치를 설치하려다가 적발된 사건이다. 이러한 시도는 FBI 수사를 통해서 백악관 그리고 닉슨 측의 연관성이 드러났고, 닉슨 대통령은 이내 사건 은폐를 시도하였지만, 관련된 녹음테이프가 폭로되면서, 1974년도에 닉슨은 결국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자진 사퇴한 대통령이 되었다. 이 이후로 정치권의 부패, 불법 정보수집, 로비 등 불투명성에 대해서 전국적으로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났다.
이후 2007년도 조지 W 부시 정부에 들어서는 Honest Leadership and Open Government Act (HLOGA) 법이 추가로 통과하면서 로비스트의 정치자금 기부 행위도 더 엄격하게 규제가 되었다. 1995년도의 로비스트 등록법이 로비 등록 그리고 공개에 대한 틀을 만든 1차적인 법이라면, 이번 법은 그 제도를 한층 더 강화하고 정치자금, 로비, 공직자 윤리의 투명성을 개혁한 2차적인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을 통해서 공직자가 퇴직 후 1년 간은 로비 활동 금지, 선물 및 접대 금지, 온라인 정보 공개 등이 더 강화되었다. 이렇게 로비 규제가 강화되자 일부 기업들은 공식 로비를 피하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PR회사 또는 싱크탱크등을 통한 우회 로비로 방향을 바꾸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미국의 로비스트는 정부 정책을 설계하거나 바꾸기 위한 전문가형 중재자의 역할읗 한다. 단순히 정치인들이나 공직자들을 만나서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업무들을 수행하고는 한다.
1) 입법(Legislation) 로비
연방의회에 제출되는 법안의 내용에 대한 분석 또는 수정을 제안을 하고, 의원실에 브리핑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해당 법안이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을 하곤 한다. 또한 의원 보좌관들과 협력하여 법안 문구 조정 및 대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기업의 내부 데이터들을 제공하면서 해당 법안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시뮬레이션 자료들도 제공을 하면서 입법 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2) 행정(Executive) 로비
미국 행정부의 산하 부처의 규제 입안 과정에 의견을 제출을 한다. 특히 행정명령 또는 가이드라인 초안에 대해서 의견을 제출하고 공청회에 참여를 해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다. 또한 규제를 시행할 경우 기업에게 어떤 부담이 되는지 산업에는 어떠한 영향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들을 제공한다.
3) 예산, 보조금 관련 로비
특정 산업 또는 지역 프로젝트가 연방 예산 또는 보조금들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도 한다. 해당 산업이 예산 배정 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율을 하곤 한다. 새로운 산업들에 대한 보조금이 원활하게 돌아가서 해당 산업이 육성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4) 기타 업무들
언론 또는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홍보 캠페인을 진행하여, 우호적인 여론을 형성을 하고 규제 대응 그리고 리스크 관리 등의 다양한 업무들을 소화한다.
이렇듯 미국 로비스트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렇게 수정을 하면 사회 전체에 더 이익이 된다는 등. 구체적인 데이터들을 제시하여 법안에 대한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친다. 정책의 설계 과정에 참여를 하는 전문가 그룹의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업무적인 특성 때문에 미국의 로비스트들의 출신들도 보면 전직 정치인 또는 보좌관 출신들을 통해서 의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네트워크를 한다. 또한 정책 법률 전문가 그리고 산업별 전문가로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가로 기술적인 세부 사항을 정부에 이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현재 미국의 행정부가 모여있는 워싱턴 D.C. 에는 약 1만 명 이상의 로비스트가 등록되어 있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빅테크 기업은 수십 명의 로비스트를 상시 고용하며, 연간 수백억 원을 들인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규제를 풀어달라는 목적이 아니라, 정책 리스크를 예측하고 관리하기 위한 투자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자율주행차 관련 규제, 인공지능 윤리 가이드라인, 데이터 보호법 등은 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정책을 설계할 때 현장의 데이터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집단이 바로 로비스트들이다. 이런 점에서 로비는 부패의 도구가 아니라, 정책 참여의 제도화로 이해된다.
기업은 왜 권력을 만나려 하는가
한국, 미국의 대관 업무는 형태는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 정책 환경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때, 가장 큰 장애물은 기술이 아니라 제도다. 핀테크 기업이 출범할 때 금융위원회의 인허가가 필요하고, 전기차 기업은 환경부의 보조금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이때 기업이 단순히 정책이 바뀌거나 생기길 기다리는 입장에 머문다면, 기회의 창은 닫힌다. 반대로 정부가 산업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정책은 현실과 동떨어진 종이 규제로 남는다. 대관이나 로비는 이 간극을 메우는 통로다.
대관이라는 업무는 기업이 정부를 설득하려는 게 아니라, 서로의 언어를 번역하는 과정이다. 한쪽은 산업의 현실을 설명하고, 다른 한쪽은 공공의 원칙을 지키려 한다. 이 두 축이 조율될 때, 기술의 혁신은 사회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
대관의 미래 – 투명한 조율자로서의 진화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대관업무는 단순히 정부와 기업 사이의 비공식 창구가 아니다. 대관업무는 기술·법률·정책의 경계에서 움직이는 지식노동의 산물이다. 데이터 분석, 입법 모니터링, 이해관계 조정, 공공 커뮤니케이션 등. 정책의 흐름을 읽고 산업의 미래를 설계하는 복합적 역량이 요구된다.
미국에서는 이미 로비스트가 ‘정책 엔지니어’로, 한국에서는 ‘규제혁신 실무자’로 진화하고 있다.
대관이란 결국, 권력과 자본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그 균형점이 공정하게 설계될 때, 사회는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혁신은 제도 안에서 자란다.
대관 그리고 로비스트의 '로비'라는 단어에 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걷어내고, 그 안에 담긴 기업과 정부간의 조율의 기술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비로소 정책과 산업이 함께 자라는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