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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의 서른 Mar 27. 2023

[외전] 어쩌다 보니 17년 지기

현재의 시선

다들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 우리가 어떻게 아직까지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인연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 노력이 필요한데 일단 나는 아니니, 두 친구의 노력 덕분인 듯싶다. 고맙다 얘들아! 그런데 그 둘도 뭐 대단하게 엄청난 노력을 했다기보다는(했을 수도 내가 또 무지했을 수도)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인연의 끈이 이어져 온 것 같다. 인연이라는 것이 억지로 누가 애쓴다고, 누군가 붙잡는다고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저 자연스럽게 지금의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카톡방은 이런 식이다. 누군가가 어떤 주제를 불쑥 던진다. 주제라기 보다는 ‘잘 살고 있냐’ 정도의 안부 인사에 가까울 것이다. 그럼 서로의 근황을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읽씹으로 마무리되는 카톡방. 그리고 이러한 패턴의 무한 반복. 안읽씹이 아주 자연스러운 평화로운 카톡방이다. 자주 만나지도 않는다. 약속을 잡으려고 해도 흐지부지되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번개 모임이 잡히곤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월 말. 우리가 글을 쓰자고 마음먹은 나의 생일인 10월 이후로 우리는 한 번도 만남을 갖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지만 말이다. 여전히 안읽씹이 난무한 가운데. 그러니 서로의 서른 한 살들을 못 본 셈이지.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도 늘 어제 만난 듯 편안한 친구들이기에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누누이 말했듯 중학교 때 1학년 때 같은 반에서 만났다. 그렇다고 2학년, 3학년 때에도 이 아이들과 단짝처럼 붙어 다녔냐 하면 그것은 또 아니다. 2, 3학년 때는 또 당시의 친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조차 소식이 묘연한 스쳐 간 인연이 되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우리가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게 나로서는 신기할밖에. 


나는 신기하게도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동네 친구들,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이렇게 한 무리씩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시절 당 한 무리씩이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바로 중학교 친구들을 담당하고 있는 친구들이 되시겠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나의 중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무의식의 세계에 가두어두었을 것만 같다. 나보다 더 그 때의 나를 잘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중2병 시절부터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어른으로 살아가는 지금까지의 서로의 모습들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라니, 외형은 31살이나 만나면 철없는 중딩들이 될 수 있는 것도 이들과 만났을 때의 특권이다. 앞으로 더 나이 들어도 그렇겠지? 


지인이가 고등학생 시절 우리의 이야기를 했으니 나는 그 이후 대학생이 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고등학교도 다 각자 찢어졌지만, 대학교는 정말 서울, 천안, 대전 각 지역으로 찢어졌다. 지역뿐이랴, 전공 분야도 다 달랐다. 문과와, 이과와, 예과. 정말 중학교 1학년 7반 우리가 같은 반이 되지 않았더라면 사회에서는 만날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런 스펙이다. 그러니 인연이란 뭘까. 우리도 이 사실이 흥미로워 나이말고는 거의 같은 게 없는 우리들의 생각과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해 이 프로젝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지인이는 영화과에 진학하였는데, 지인이의 성격과 잘 맞는 과라고 해야 하나, 지인이답다고 생각했다. 어쩜 못 본 새 자기와 찰떡인 과를 찾아갔는지! 나는 내가 재능이 없는 예술 분야에 로망이 많은데, 인생을 평범하게 살아온지라 예술계의 인맥이 없지만, 지인이가 나의 로망을 실현해주고 있는 듯 하여 대리만족했더랬다. 시나리오 쓰라고 압박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 때문. 시나리오 얼른 써~ 우리 이야기 얼른 영화로 만들어줘~!!


허구는 과는 둘째치고, 대학 생활을 보니 학생회를 하질 않나 겉보기에 인싸 그 자체의 삶을 사는 듯 하여 무척이나 신기했다. 중학교 시절 약간은 소심하기도 하고 섬세한 허구의 성격은 인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학교 1학년 때 내가 기억하는 허구는 성장기였으므로 키가 그렇게 크지 않았는데 어느새 장성하여(?) 고개를 들고 봐야 하는 키가 되었으니 꽤나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게 많이 바뀐 듯한 허구지만 만나면 그냥 우리가 아는 그 허구였다. 


대학생이 된 나를 친구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나는 “대학교만 가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라는 말만 믿고 열심히 공부했던 평범했던 K-고딩이었던지라, 대학생 때는 공부는 둘째치고 내 나름대로 아주 원없이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가득하다. 틈만 나면 여행을 갔었고. 그 시절의 나는 학업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았던 것 같다. 어쨌든 대학생도 대‘학’생인데 말이야. 


그렇게 상황이 많이 바뀐 우리였지만 만나면 늘 여전했다. 한 번은 오랜만에 우리가 나왔던 중학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쪼끄만 학교에서 어떻게 3년을 지냈는지, 훌쩍 커버린 우리들이 감개무량하던 때였다. 운동장도 손바닥만 하던데 거기를 도는데 그때는 얼마나 힘들었던지. 또 그 많은 아이들이 그 작은 운동장에 모여 조회를 했던 게 상상이 잘 가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은 다 화면으로 한다지? 우리는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주변에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우리는 지역이 달라서 만날 때마다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고향에서 만나는 날이면 더더욱 추억 여행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예전부터 기록을 남기기 좋아한 덕에 용돈을 구입해 카메라를 샀었는데, 그 덕에 우리들의 사진들이 고화질로 많이 남아있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은 그 시절 필터 때문에 엉망인데 참으로 다행이다. 정말 남는 건 사진뿐이더라고. 


카메라는 내 것이었지만, 영화전공인 지인이 덕에 이러 저러한 컨셉으로 그 때의 우리가 기록으로 참 많이 남아있는데, 지인이의 역작인 경복궁에서 만든 영상은 정말 우리가 봐도 우리가 너무 귀엽다. 그 때 우리는 각자 한복을 빌려 입고, 삼각대를 들고 영상과 사진을 찍었는데, 영상이 있는 덕분에 그 날의 추억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유지되고 있는 듯 하다. 그 영상의 제일 킬링파트는 신나서 우다다다 달리다가 내가 철푸덕 넘어져 버린 씬이다. 다 커서 이게 무슨 어린애 같은 일인지. 다 까지고 난리났지만, 영상은 어쩐지 귀엽게 나와서 마음에 들더라. 이놈의 결과주의자. 


내가 생각하는 우리가 17년 지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우리가 서로에게 그다지 집착하지 않으면서 애정을 기반으로 서로를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아무리 친했더라도 이렇게 13, 14살에 만나 31살까지 인연이 이어지가 쉽지 않은데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프로젝트까지 함께 하고 있다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평생 친구가 되겠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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