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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희 Nov 17. 2020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

눈물이 나온다면 그냥 울자


어릴 적, 엄마는 우는 내게 말했다. 네가 우는 꼴이 얼마나 보기 싫은 줄 아냐. 그러면서 거울을 들이댔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참 큰 거울이었다. 그 거울 속에 내가 못난 얼굴로 울고 있었다. 맞다. 뵈기 싫었다. 뭐, 나중에야 나는 엄마의 그 행동이 참으로 폭력적이었구나, 느꼈다. 어린 딸에게 하기엔 좀, 못난 언행이었다. 내가 우는걸 참 많이도 싫어하는 양반이다.


나는 참 많이도 쳐 운다. 그래, 곱게 말해서 눈물이 많다. 어제도 울었다. 눈물은 왜 내게만 이렇게 자비로운지. 눈물에게 영혼이 있다면 물어보고 싶다. 너, 왜 나한테서만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내가 물을 많이 마시는 것도 아닌데!


어릴 적에도 난 눈물이 많았다. 뭐만 하면 울고, 날 따라다니던 이 대사. 눈물 많은 사람은 한두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뭐만 하면 울고! 뭐, 우는 게 뭐 어때서. 화가 나면 눈물부터 나오는 사람들은 할 말이 많다. 할 말이 많은데 그냥 몸에서 눈물부터 나오는 거다. 어쩔 수가 없다.



우울이 있고, 공황이 있다는 것을 알고 약을 먹으며 산지는 좀 되었지만 정말로 우울증에 걸려버릴 줄은 몰랐다. 툭하면 울었고 애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멍했으며 자꾸 나쁜 생각에 휩싸였다. 정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우울증이었다. 병원을 옮겼다. 원래 다니던 곳은 뇌과학전문 병원이었는데, 내 증세만 확인해주지 감정까지 다뤄주진 않았다. 그래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공황에서 벗어날 순 있었지만, 우울증이 찾아왔다. 이럴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

많이 울었다. 길을 가다가도 울고 버스에서도 울고 눈물이 마르지 않아서 집에 도착했을 때는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다음 날에는 눈이 떠지지 않아 어릴 때 봤던 요행을 써야 하나 생각했다. 녹차 티백이나 얼린 숟가락을 눈에 얹는 뭐 그런 것들.


새로 간 병원에서는 라포 형성이 잘 되었다. 라포 형성이란, 의사소통에서 상대방과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를 말한다. 정신과에서는 라포 형성이 중요하다. 얼마나 내 이야기를 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가. 믿고 기댈 수 있는지가 중요할 테니까.


의사 선생님은 내게 설문지를 먼저 건네지 않고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또 눈물이 났다. 한차례 눈물을 찍어내고 (정신과는 항상 휴지가 근처에 있다.) 그제야 검사를 하고 첫 진료를 마쳤다. 두 번째 진료를 받기 전까지 나는 계속 울었다. 상태는 점점 심각해졌고 기억도 뜨문뜨문 해졌다. 두 번째 진료에서 의사 선생님이 “지금은 아마 감정 조절이 잘 안되실 거예요.”라고 했다. “좋은 것도 나쁘게 들릴 것이고, 나쁜 것도 더 나쁘게 들릴 거예요.” 라며 나의 검사 결과와 내가 말하는 나의 증세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고 했다.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 이유 없이 혹은 작은 일에도 눈물 훔치는 일이 줄었고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갑자기 구구절절 우울증임을 고백한 이유는, 눈물이 많다고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처럼 아픈 것일 수도 있고, 그냥 말 그대로 눈물이 많을 수도 있다. 그냥 그대로도 괜찮다는 거다. 나는 내가 눈물이 너무 많아졌을 때에, 내가 뭔가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그래서 혹시 그런 생각을 하는 이가 있다면, 등을 쓸어주며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눈물이 뭐 어때서.




눈물은 우리에게 참 못나게 군다.

불쑥불쑥 화나고 속상한 순간에 찾아와서 우리를 들쑤시고 또 그걸 하필이면, 하필이면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줄 때도 있다.




웃픈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자.


회사에서 타 팀원과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호통을 들은 적이 있었다. 나도 속상하고 화가 나는 부분이 있는데, 화를 낼 기력이 없어서 그냥 넘긴 것이 전화를 끊고 정확히 3분 후, 속에서 울컥- 터져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모습을 팀원들에게 보여줄 순 없어서 화장실로 득달같이 달려가서 여느 때처럼 눈물 찍어내고 옆 사람이 나갈 때를 기다리며 내 옆 사람이 누구려나. 누가 보면 곤란해. 하고 생각하다가 지금이다-! 하고 나갔는데. 아차, 옆칸에서 나오시는 우리의 이사님. 회사가 무너졌으면, 하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일이라고 둘러대며 끝났던 해프닝이었지만, 두고두고 기억날 사건 이리라.


그래, 운다고 다 해결되진 않지만, 어떤 시인의 말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눈물이 나온다면 그냥 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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