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난 지 200일을 맞으며
오늘은 나의 아기가 태어난 지 200일이 되는 날이다.
6개월 차 아기가 된 나의 딸은 어느덧 하루종일 옹알이를 하고 웬만한 의사표현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여러 소리와 행동으로 다 가능한 '제법 큰' 아기가 되었다. 이유식을 먹으며 특히 맛있거나 기호에 맞는 식단에는 꺅-하는 돌고래 소리로 환호를 지르기도 하고, 내키지 않는 것을 내가 시킬 땐 짜증을 부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언제 NICU에 있었냐는 듯, 미숙아티가 전혀 나지 않는 상위권의 우량함으로 매일 나를 놀라게 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출산 후 200일 동안 아기를 길러낸 것보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길러냈다고 하고 싶다.
“아이를 낳고 무엇이 가장 변했냐” 는 질문에 나는 “정말 빠짐없이 모든 것이요"라고 답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변화가 나에게는 삶의 가치관 자체를 송두리 째 바꿔버리는 커다란 변화들이라, 그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소중하다. 어떻게 표현을 하고, 어떻게 전달을 할 수 있을까...
아기를 키우며 순간순간 담아두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 글을 쓰려고 하다가도 이내 메말라버린 작문력, 아니 작문력이라고 거창하기 표현까지 하지 않아도 단순 단어와 문장을 나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포기하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출산을 하면 일종의 치매 현상과 비슷한 브레인포그 (뇌에 안개가 끼는 것처럼 뿌연 현상), 건망증 등 여러 뇌신경 관련 증상을 겪게 되는데 나에게는 그러한 증상이 유독 크게 나타났고, 그 외에 여러 부수적인 변화들을 맞은 후 나는 산후 160일경 산후우울증으로 진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
이렇게 진단을 받기까지 여러 작은 일들이 있었고, 학부 전공이 심리학이기 때문에 사실 내가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것은 애초에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병원에 가기까지 혼자 여러 고민이 있었지만 나의 신경정신적인 증상이, 유독 심한 건망증과 수면장애가 '엄마니까 단순 거쳐야 하는' 증상이 아니라 실제 병리학적 원인으로부터 기인을 한다는 것이, 끝이 있는 과정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 또한 이러한 것을 겪는 엄마들이 많다는 것 역시 다른 위안이 되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게, 친정과 남편의 지지와 도움을 많이 받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사람에게도 산후우울증이 오니 꼭 출산을 하고 힘든 엄마들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를 권장한다.
명상가 아디야 샨티의 말에 따르면, 의식의 성장이 일어나기 직전 사람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직면한다고 한다. 나 역시 산후우울증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며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니 갑자기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어려움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과 마음을 비롯하여 내 주변을 둘러싼 모든 관계들, 내가 타인 혹은 외부 환경을 바라보는 관점, 시간을 받아들이는 자세 등 - 이 모든 변화들을 보며 내가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면 겪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엄마의 시간' (나는 마더후드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완벽하게 번역된 단어가 없다)이 그저 감사하기만 하다.
200일 동안 그래왔듯, 앞으로도 나는 이 아이를 남편과 길러내며 우리는 우리 역시 길러낼 것이다. 그렇게 양육을 하며 우리는 함께 성장을 하고, 부모로서 조금씩 커갈 것이다. 결국 사람을 길러내는 과정은 나를 깎고, 낮추고, 둥글게 하고, 물을 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겸허하게 하는 (humbling) 이 여정은 결국 사랑으로 귀결되는 귀한 통로일 것이다.
모 연예인이 죽기 전에 "진짜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상담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진짜 사랑"의 정의는 주관적이겠지만, 나는 감히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이 나에게는 바야흐로 진짜 사랑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다고, 지난 200일 동안 그것을 배웠다고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