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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쥬쥬 Apr 09. 2019

3월의 제주도 여행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뿐이겠어

3월의 제주도 여행은 엄마와 떠났다. 엄마와의 단 둘이 여행은 기억이 가물가물할 만큼 꽤 오래되었다. 나는 평소 여행 스케줄을 빽빽하게 세워놓고 떠나는 편이 아닌데, 엄마와 여행을 할 때는 꽤나 신경이 쓰인다. 엄마의 여행은 뭔가 빈 시간이 없어야 할 것 같고, 시행착오도 최소화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늘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는 것이 엄마와의 여행. 


꽤 급작스럽게 결정한 여행이었지만, 나름 동선을 철저하게 짜고 식당도 그간 내가 모아 온 데이터를 총동원해서 골라두었다. 제주에 몇 번 가봤어도 유채꽃이 만발한 3월에 제주도를 가는 건 처음이었다. 3월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있나 찾아보고, 유채꽃을 최대한 잘 즐길 수 있는 곳을 검색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은 떠나기 전 계획하는 순간이 가장 설레고, 검색을 하면 할수록 설렘과 기대는 더더욱 커진다. 엄마를 위해 만들던 제주도 계획이 나의 기대까지 잔뜩 부풀려놓았고, 오랜만의 제주여행에 나도 신이 났다.



여행을 갈 때마다 방문지(노란색)를 구글맵에 표시한다. 초록색은 추천받을 때마다 틈틈이 표시해놓은 가야 할 곳 




또 그렇듯, 늘 마음먹은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고 여행이다. 떠나기 전 날 밤 난리가 났다. 윈드시어와 비로 제주행 비행기가 줄줄이 결항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수시로 기사를 검색하고 날씨를 살펴보아야 했다. 불안해하던 그 와중에 갑자기 예약해둔 렌터카가 취소되었다는 메시지까지 받았다. 알아보니 기상 때문에 예약을 취소한 동명이인이 있었는데, 나의 예약이 실수로 취소된 것. 하.... 다행히도 바로 해결이 되었고, 그나마 예보 상의 비는 없었으니 '비행기는 뜨겠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공항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 길게 늘어선 줄에, 뛰어다니는 직원들,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두 명의 짐을 한 번에 부치겠다고 큰 캐리어 하나를 들고 온 것이 실수였다. 짐을 부치는 줄이 도무지 줄지가 않아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짜증과, 직원들의 패닉은 덤.... 제주도를 갈 때는 짐을 꼭 핸드캐리 하자....  여하튼 순탄치 않은 시작이었다.



그렇게 3월의 제주여행은 시작되었고, 이번 여행은 바람으로 시작해서 바람으로 끝이 났다. 트레킹을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을 고려해서 매일 걷는 일정과 오름 코스를 넣었건만, 밖을 돌아다니다가는 정말로 날아가버릴 것 같았기에 어쩔 수 없이 모두 취소해야 했다. 둘째 날은 준비하고 길을 나섰는데 차가 방전되어있었다. 보험회사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흐르고, 또 방전된 차를 최소한 30분 이상은 주행해야 하기에 가까운 곳부터 돌아다니려던 일정도 수정했다. 여행을 여러 번 다니면서 웬만한 변수에도 그러려니하게 되었다고 자부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짜증이 났다. 엄마와 함께여서 그랬는지, 기대가 나도 모르게 커졌었는지 모르겠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뭐 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제주도만큼 날씨 궂은 날 할 일이 없는 곳도 없지만, 요리조리 피해 다니면서 그럭저럭 여행의 빈 시간들을 채워냈다. 바람만 제외하고는 쾌청했으니 드라이브하면서 풍경을 감상했다. 한라산 꼭대기까지 그렇게 뚜렷이 보이는 날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었다. 차 안에서만큼은, 카페에서만큼은 고요했고 맑았다. 언제나처럼 패닉을 겪고 또 나름대로 대안을 찾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즐거운 '우리의 여행'이 결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진만큼은 참- 고요한 3월의 그 날/ 제주, 2019


바람을 피해 예상치 못하게 빛의 벙커로. 정말 환상적인 공간이었다/ 제주, 2019


롱 패딩을 입은 안전요원들 옆에서 수영을 하며, 이게 뭐하는 짓인가 자괴감이 들었다../ 제주,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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