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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rid Feb 21. 2021

자본주의, 마녀도 일하게 한다!

배달의 신 탄생

지브리 스튜디오의 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는 '행복을 배달하는 초보 마녀의 마법 같은 모험'으로 소개되었지만,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은 노동을 동반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으로 묘사했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입문 첫날


낯선 도시에 터를 잡은 키키는 첫날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쓴맛을 본다. 약간의 식재료 살 수 있는 돈을 정도 챙겨 왔으면서 호텔 숙박을 원한다. 신분증도 그렇다고 돈도 없어 보이는 이 소녀를 매몰차게 내쫓진 않지만, 13살이 신분증 발급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 신분증이라도 달라는 직원의 요구 꽤나 영리하다. '너는 여기 묵을 수 없단다.'를 에둘러 표현한 것! 호텔 급에 어울리지 않게 로비에 손님이 있는데 쌍욕을 퍼부으며 내쫓을 순 없지 않겠나.  (친절이 몸에 밴 호텔 직원이다.)


키키는 그렇게 자본주의 입문 첫날 호텔 카운터에서 카운터를 호되게 맞는다.   


모두가 가족같이 지내던 고향과 달리, 차가운 도시 사람들의 새침한 모습들을 마주한 키키는 철저히 자신은 이방인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150 (던바의 수)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도시가 왜 각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가정법 과거)

손님 얼마까지 알아보셨어요? 돈도 없으시면서 제가 당신 뭘 믿고 방을 주냐니 까요?
할 말 없어 화난 키키


떠오르는 배달의 신

친절한 빵집 주인아주머니 덕에 임시 거처를 구한 키키, 하루 이틀은 불쌍한 인간의 도리로 방을 빌릴 순 있겠지만.. 일 년을 이 도시에서 버티려면,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마법 공부(학습)를 평소 멀리한 키키는 마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하늘을 나는 법'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약을 제조할 수 있거나, 우연히 만난 선배 마녀처럼 점을 볼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시작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단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한다. 허름한 단칸방에서 시작하는 배달 신의 탄생이다.

오션뷰의 넓은 방(?)을 거의 무료로 얻은 키키, 반지하 아닌걸 다행으로 알아야지..먼지를 탓하다니..

독점 공급자

보수를 지불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가 있다. 두 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노동의 시간 단위로 보수를 지불하는 방식인데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아르바이트나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 큰 틀에서 여기에 속한다. 두 번째는 주어진 일을 완료하면 보수를 받는 일인데, 우리 주변에서는 택배, 부동산 중개인 등 건수로 보수를 받는 직업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배달일을 시작하는 키키는 두 번째 직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수고비에 대한 사회적 기준이 없고 금액도 정량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용역(서비스)을 제공하는 업이므로 수고비는 받는 사람 마음이다. 아직 단골손님이 없는 키키는 '을'이지만, 하늘로 배달하는 독점 시장을 구축할 다크호스다. 키키의 잠재성을 알아본 빵집 사장의 안목 역시 대단하다. (비행기가 상용화되기 전, 다른 마녀가 이 도시에 정착해 같은 일을 하기 전까지 독점이 가능하다.)


손님 얼마까지 알아보셨는데요? (feat 흐뭇하게 바라보는 빵집 주인)

신뢰 구축

빠르게 하늘로 배달을 하는 독점 시장을 개척한 것 까진 좋았다. 그렇다고 경쟁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배송해 주는 차량 운반과의 경쟁은 남아있다. 시장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원활한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키키는 첫 번째 배달에서 아슬아슬하게 고양이 인형(?) 배달을 완수했다. 배달의 목적은 안전하게 물건을 옮겨주는 것에 있지만, 키키는 고객이 120% 만족을 원하는 시장의 다크호스다. 두 번째 배달은 청어 파이를 배달하는 임무다. 그런데 배송을 원한 할머님의 청어 파이가 전기 오븐의 고장으로 완성되어있지 않았다(?). 오븐은 고칠 줄 모르니, 주방의 화덕에 불을 피워 파이를 완성하고, 자투리 시간에 천정에 전구도 갈아준다. (이 고객은 훗날 단골이 됩니다(?!) , 이제는 배달을 하는 것인지 심부름센터를 하는 것인지 헛갈린다.)


오후 5시 40분을 가리키는 주방의 시계를 바라본 키키. 퇴근은 해야 했기에 6시까지 배달 완료해야 한다. 배달시간은 15분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었다. 할머님 왈. '아.. 그 시계 조금 느린데.. ' 아니?! 큰일이다. 배달 늦겠다.


서둘러 문밖을 나서자마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하.. 꼬인다 꼬여..)

물을 싫어하는 친구 고양이가 비 좀 피하자고 해도, 배달시간과 고생해서 만든 청어 파이가 식을까 봐 더 걱정이다. (고양이 네놈 밥값 벌려고 고생하는 거 안 보이냐?)

배달은 제시간에 완료되어야 한다.

고생 끝에 배달을 완료한 키키. 할머니의 정성스러운 파이가 손녀의 파티에 전달되었다. 단벌 옷도 다 젖어버리고 칼퇴하려던 것도 미루고 열심히 달려왔다. 보낸 고객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받는 사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손녀는 청어 파이가 싫다고 하셨어.)

(이 파티에 참석하려고 칼퇴하려던 건데... 본인도 이 파티에 청어 파이가 배달될 줄은 몰랐다.)

약속 시간에 맞춰 따끈한 파이를 배달한 키키 그러나 현타를 맞는다. 청어가 싫어? 어?

슬럼프

현타를 맞은 키키를 위로해주려고, 키키를 동경하는 남자인 친구 톰보는 기분 전환 겸 자전거로 키키를 해안가까지 모시고 간다.


톰보와 대화 중 키키는 '하늘을 난다는 게 항상 즐거웠던 옛적과 다르게 일이 되면서 즐거움을 잃었음'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재미있는 취미도 일이 되면 고통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 와중에 그 청어를 싫어하는 소녀가 톰보의 친구란 걸 알게 되면서 다시 한번 현타를 맞는 키키. 그 충격 때문인지 하늘을 날 수 없게 되었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독점 공급자 키키에게도 슬럼프가 온 것이다.

그녀의 코너링을 보라.. 오히려 배달보다는 사이클리스트나 레이서에 소질이 더 있어보인다.


배달이 끊겨 월세를 못내 쫓겨날까 봐 아주머니께 싹싹 빌어본다. (갓 물주의 위엄이란..)



슬럼프를 극복하기 위해 찾은 숲 속의 화가 친구 우르슬라. 왠지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그녀의 숲 속 오두막에서 키키는 하루를 함께 보낸다. 여기서 키키는 슬럼프 극복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림 그리는게 공짜로 될 수 있는게 아니다.
까마귀에게 쫓기며 배달을 가는 키키를 보고 영감을 얻어 그림. (모델료는 하루 숙박비로 퉁친다.)
우르슬라: 마법이나 그림이나 비슷하네. 나도 그림이 안 그려질 때가 종종 있어.

키키: 정말? 그럴 땐 어떻게 하는데? 예전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도 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서 날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

우르슬라: 그럴 때는 버둥거릴 수밖에 없어. 그리고, 그리고, 그려대는 거야.

키키: 그래도 여전히 날지 못하면?

우르슬라: 그리는 걸 관두지. 산책을 하거나, 경치를 구경하거나, 낮잠을 자거나, 아무것도 안 해. 그러는 도중 갑자기 그리고 싶어 지는 거야.

위 대화를 이렇게 해석되는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멘탈 관리도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거란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너의 모든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면, 잠시 멈추는 여유조차 누릴 수 없단다. 그러니 네가 지금 쓰고 있는 여유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지? 


미디어의 힘

각박해 보였던 도시는 사실 친절한 사람들도 많은 곳이었다. 비행선 사고로 친구 톰보가 위험에 처해있을 때, 키키가 톰보를 구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된다. 도시 사람 모두가 가슴을 조리며 키키를 응원한다.

결국, 키키는 무사히 톰보를 구하며 도시의 영웅이 된다.

방송을 탄 이후, 그녀의 배달사업뿐만 아니라 빵집 역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별다른 홍보 수단이 없어 빵집 사장님의 손님에게만 의존하던 배달 수주가, 방송을 타며 급격하게 인기를 얻는다.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것 만으로 홍보가 되긴 하겠지만, 방송의 힘으로 그 속도가 더 빨라졌을 것이다.


다른 마녀들보다 크게 뛰어난 마법능력이 없는 키키가 도시에서 배달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객을 120% 만족시키는 서비스 정신 (= 입소문)이 가장 우선이겠으나, 우연히 찾아온 기회(or 위기)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세상이 아님을 89년도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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