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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5. 2021

안녕, 콘크리트

- 무장애 여행지를 찾아 떠나다

  거실 창밖 너머 노란 은행나무가 보였다. 잎사귀들은 팽그르르 떨어졌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을 나뭇가지를 생각하려니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직 늦가을 정취는 삭막하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찬 공기가 볼에 닿았다. 정오에 떠오를 빛이 그리웠다. 그 사이 아들은 외출복을 입고 나갈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어린아이인 줄 알았는데, 뭔가를 해내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이제 남편 옷만 입히면 되었다. 남편은 지체 1급 장애인이다. 사지 마비로 내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어떤 일을 하기가 부자연스럽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면서 남편은 나에게 의지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기 일을 하려는 힘을 키웠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웠다.

  서울에서 살다 천안으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4년, 그간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우리 가족은 주말마다 집에 머물지 않았다. 항상 바깥으로 나갔다. 유원지나 공원은 우리 가족이 찾아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집 근처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싫증이 났다. 충남에 관광지를 먼저 돌아다녀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행 중에 걸림돌이 되는 게 있었으니 바로 계단과 턱, 장애인 화장실이었다.  장애인 화장실은 청소함처럼 이용되어 발길을 돌려야 했고, 계단이 나타나면 누군가의 힘을 빌려 휠체어를 들어야 했다. 남편은 짐이 아니었다. 약자였지만, 자유롭고 편리하게 여행할 권리가 있었다. 

  무장애 여행지는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알아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나는 우리 가족이 직접 무장애 여행지를 발굴하러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장애인 가족이 다니기 좋은 곳을 몸소 체험하고 부족한 점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 여행 카페에 가입하고. 주말마다 여행했다. 척수 손상 장애인들이 충남을 방문했을 때, 어렵지 않게 찾아가서 기쁨을 누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여행 효과는 없을 것이라 여겼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장소에 대한 정보가 확실치 않으면 짜증이 나 하루 기분을 망치기 일쑤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가면 그것 자체로도 여행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 그러나 장애인 여행이나 가족여행은 계획 없이는 한순간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천안에서 내려와서 제일 먼저 찾아간 여행 장소는 독립기념관이었다. 국가기관에서 운영하는 관광지였기 때문에 장애인이 가기에 편리하다고 여겼지만, 막상 남편이 이용했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장애인 스쿠터는 있었으나, 전동휠체어는 없었고, 겨레의 집에서 만남의 광장까지 가는 동안 구불구불한 경사로는 휠체어를 미는 사람에게 힘을 요했다. 그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줄 것을 기관에 요청했고,  독립기념관 원형 경사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도 했다. 또한, 독립기념관 전시관마다 전동휠체어를 비치하여 지체장애인들이 관람하는 데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협조도 구했다. 아직 전시관마다 전동휠체어가 비치되지는 않았지만, 의견을 계속 청원할 것이다.

  다음으로 남편과 여행하면서 보람을 느낀 여행지는 예산 수덕사와 추사 고택이었다. 수덕사는 3년 전에 방문했을 때 장애인 화장실이 없었다. 매표소에서부터 대웅전까지 등산로를 따라 비장애인들이 걸어 다니도록 차량 출입을 제한시켰다. 차량 출입은 오로지 절간 관계자만 이용할 수 있었다. 남편 휠체어를 밀며 등산할 때, 동행자가 무척 힘을 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여행이란 집 밖을 나서면서부터 낯선 체험이지만, 척수손상 장애인들이 혼자서 여행을 할 때 수덕사와 덕승산 구경은 짜증과 불평으로 이어진다. 등산로가 길기 때문이다. 차량 출입을 허락해 주고, 스님들이 머무는 집에서부터 경사로를 따라 대웅전까지 휠체어가 움직여도 장애인들은 행복을 느낄 것 같았다. 유독 우리나라는 종교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목에 힘을 주고 자비를 외치지만, 실상 약자들에게는 그렇게 관대하지는 않았다. 높은 사람일수록 아랫사람을 두루 살펴야 한다. 사찰을 보존하고 유지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를 등산 입구에서부터 포장만 하더라도 장애인들이 많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올해 여름에 다시 수덕사를 방문했다. 햇살이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반짝였다. 골짜기마다 흐르는 물은 고운 소리가 났다. 등산객이나 관광객들 마음은 녹음으로 가득 차고 맑은 공기가 비움을 가르쳤다. 그곳에 도로가 새로 닦였다. 차량 출입도 가능했다. 수덕사 입구에서 식당이 즐비한 도롯가에 장애인 화장실도 만들어졌다. 우리 가족은 그날 본 수덕사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정보를 카페에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추사 김정희가 살던 고택을 알림으로써 장애인들이 역사유적지를 탐방할 때의 유의점을 알리기도 했다. 고택은 지자체 기관에서 관리도 하지만, 종친들이 관리하는 곳도 있어 관리가 허술하기도 했다. 추사 고택은 조선 시대 양반가 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했지만, 휠체어가 들어가기에는 문제가 많았다. 돌담길이나, 흙길. 더불어 자갈밭은 휠체어가 다니기에는 불편했다. 그런 길로 자칫 다니다가 바퀴가 닳거나 빠질 수 있었다. 남편도 고택에 막상 도착했을 때, 내부를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장애인 화장실이라고 점자 판이나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갖추긴 했으나, 휠체어가 막상 들어가 보니, 문이 작고,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은 장애인 화장실을 창고로 쓴다는 점이었다. 이는 고택뿐만 아니라 여느 공공기관에서도 장애인 화장실을 애물단지로 여기고 잡동사니 창고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막상 그런 현장을 발견했을 때는 관계자들에게 추궁한다. 장애인들은 창고에서 볼일을 보란 말인가? 장애인들이 더럽고 무시되어야 하는 사람들인지 일침을 놓는 꾸중이 있어야 그들의 인식은 바뀐다. 고택을 구경하고 난 뒤에 시설 관계자에게 말했다. 지금도 장애인 화장실이 전처럼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제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추사 고택 옆에는 추사기념관도 함께 만들어져 있었다. 추사 김정희 작품이 전시된 곳이다. 이곳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라 전시관이 깔끔했다. 선생의 서체를 통해 고결한 뜻과 반듯한 품성을 배울 수 있었다. 화장실도 공간이 넉넉하고, 진입로도 평평했다. 입장료도 저렴했다. 고택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남편은 전시관을 통해 그나마 달랠 수 있었다. 지하로 이어진 엘리베이터는 운영이 잘 되었다. 

  이밖에도 당진 난지도 앞바다, 태신 목장. 광천 남당항 방조제. 부여의 궁남지. 공주 이안 숲 공원과 무령왕릉, 마곡사, 아산 피나클랜드 유원지, 장영실 과학 공원. 신정호수. 등을 세세하게 알리기도 했다.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묘소 등 사적지로 유명한 곳은 장애인들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동거리가 넓기 때문이다. 사적지를 다녀오고 요구사항이 있다면 이순신 장군 묘소와 현충사 같은 장소에서는 수동 휠체어뿐만 아니라 전동휠체어나 스쿠터도 비치되어야 가파른 언덕을 오를 수 있다. 하루빨리 이런 기구들이 설치되길 바랄 뿐이다.

  강산은 생각보다 빨리 변한다. 전국의 도로망은 실시간으로 개발되고, 뚫리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은 문제가 있지만, 이왕 개발을 시작한 곳이라면 아스팔트를 제대로 깔았으면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흙길인지 시멘트 길인지 분명치 않아서 도로가 나쁘면 차량 진입도 어렵고, 걷는 사람도 불편하다. 그렇다면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부여 궁남지를 다녀왔을 때, 제일 아쉬웠던 점이 바로 도로가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한 사적지 안에 도로는 전날 비가 와선지 웅덩이가 많았다. 내 눈에는 시멘트나 아스팔트라도 깔렸다면 유모차나 휠체어가 다니기에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연꽃을 관리하는 연못이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흙길을 선택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큰길 하나쯤은 콘크리트를 깔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충남에 있는 여행지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관광지도 두루 다니며 무장애 여행지 발굴을 확장시켜 갔다. 그럴 때마다 비교할 수밖에 없는 게 길이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숲체원’ 공원은 입구부터 정상까지 전부 데크 로드였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 길은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뿐만 아니라 전남 순천에 있는 ‘생태공원’은 습지마다 데크로 만들어져 장애인에게 편리함을 주었다.

  아직 충남에서 유명하다는 관광지를 다 돌지 않았기 때문에 개발이 잘된 곳을 소개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그 일은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고, 우리 가족이 긍지를 갖고 모험을 해봐야 할 일이다. 이제 지도를 펴놓고 찾아갈 장소에 대해 연락처를 알아 둔다거나, 콘크리트 길이 있는지, 흙길인지 확인하는 작업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무턱대고 유명한 관광지야. 사람들 입에 오를 내릴 정도로 좋네. 하고 찾아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다만 우리 가족이 먼저 어려움을 겪고 체득한 경험 때문인지 낯선 여행지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오히려 도전의식을 갖게 되었다. 

  여행의 정보는 관광지뿐 아니라 숙박지까지 알려주어야 한다. 당일치기 여행이 아닌 숙박을 할 때면 맛집 정보까지 알아야 한다. 근래에 유명한 산에는 펜션이 지어져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에게 펜션은 높은 산과 같다. 펜션의 특징상 층계가 많아서 이동할 때, 누군가 업어주거나 휠체어를 통째로 옮겨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장애인은 짐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다. 펜션이 불편하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모텔이나, 콘도, 호텔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모텔, 콘도, 호텔이 모두 장애인 객실이 있는 것도 아니다. 숙박이 해결된다 해도 맛집을 찾다 보면 그곳에 식탁이 있는지, 좌식 밥상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척수손상 장애인들은 밥상보다는 식탁이 편하다. 근래에는 좌식문화에서 식탁문화로 바뀌어 다행스럽다.

  신혼여행으로 미국에 서부지역을 방문했을 때가 떠오른다. 미국은 땅이 넓은 관계로 우리나라처럼 고층빌딩이 많지 않다. 대신 낮은 층의 집들이 넓게 퍼져 있다. 도로와 집 사이에 층이 없고, 모두 평평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애인이 나타나면 그들은 언제나 제일 먼저 지나가도록 배려하고, 식당이나 쇼핑센터를 가더라도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서 어디 있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다. 해발고도 이천 미터가 넘는 로키산맥을 오를 때는 넓게 펼쳐진 지평선 너머로 콘크리트 길이 지그재그로 있었다. 우리나라는 산이 험해서 정상까지 콘크리트 길을 닦는다는 건 엄두를 못 낸다. 물론 무장애 숲길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륙 특성상 완만한 산맥도 장애인들이 관광하도록 콘크리트를 깔았다. 그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선진국일수록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식은 높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장애인 차별이 심각하다. 약자를 보호하고 약자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복지가 더 발전되어야 한다. 

   계룡산 근처에 도착했다. 아들이 자연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박물관을 먼저 구경하기로 했다. 계룡산 자연사 박물관 앞은 중생대 공룡들이 줄지어 방문객을 맞이했다. 햇빛이 정수리에 꽂혔다. 따뜻했다. 병풍 같은 바위산이 박물관 뒤로 펼쳐졌다. 아직 숲은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고왔다. 박물관 앞까지는 차량 진입이 편했다. 동학사로 들어가기 전, 박물관 내부를 살피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찾기 좋은 장소임을 알았다. 나는 박물관 이곳저곳을 두루 찍으며 장애인들이 찾아오기 좋은 장소인지 확인하고 메모했다.

  박물관을 나와 계룡산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유원지나 공원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코끝에 닿는 나무 냄새가 좋다. 그리고 여행을 하면서 느꼈지만,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냄새도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치유의 목적으로 흙을 밟는다지만, 장애인들에게 콘크리트는 마음을 찾아가는 길 위에 빠질 수 없는 동반자이다. 휠체어는 장애인에게 둥근 발이나 마찬가지다. 둥근 발이 넘어지지 않고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먼저 알아주고 그들의 문화를 개발해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그 문화를 알리고, 찾아가는 데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는 충남의 발전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국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아스팔트 길 위를 걷는다. 모텔과 식당 주변을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간다. 단풍나무들이 아치형으로 그늘을 만들었다. 눈부셨다. 오동나무 잎이 뱅그르르 돌며 남편 머리맡에 떨어진다. 계룡산 매표소가 보인다. 아들이 뒤따라온다. 배불뚝이 엄마를 대신해 아빠 휠체어를 밀겠다고 소리친다. 마음만으로도 고맙다. 몸이 불편해도 우리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주는 남편. 그리고 긍정적으로 자라는 아들. 이들에게 나는 고맙다. 남편이 있었기에 장애인 여행을 알게 되었고, 아들이 있었기에 가족여행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 어려움을 발판 삼아 콘크리트가 있는 길이면 우리는 어디든 간다. 그럴 때마다 ‘안녕. 콘크리트.’라고 말을 한다. 새로운 여행지에서 만날 콘크리트가 우리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내년에는 가족이 한 명 더 늘어난다. 충남 어느 지역을 우리 네 가족이 누비고 있을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벅차고 기쁘다. 유모차와 둥근 발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는 일.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러면 나는 바퀴를 굴리며 ‘안녕, 콘크리트’라고 인사를 건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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