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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5. 2021

메기 메운탕과 시어머니

  나는 첫째 아이를 뱃속에 품었다. 배가 고프거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밀물처럼 메스꺼움이 몰려왔다. 그러면 구토를 하거나 헛구역질을 했다. 좋은 생각, 좋은 음식 염두에 두었지만, 막상 입덧하면 그 모든 음식이 보기가 싫었다. 그러나 신기루처럼 생전 먹고 싶지 않던 음식들이 영상처럼 떠오를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남편에게 애걸복걸해서라도 그 음식을 먹어야 했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팔월이었다. 임신 9주였던 나는 남편과 함께 시댁을 찾았다. 결혼하고 세 번째로 찾아뵙는 길이었다. 시부모님은 배 농사를 지으며 과수원을 가꿨다. 그리고 고추농사로 용돈 벌이를 했다. 그날도 오전에 고추를 따고 잠시 쉬신다고 했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날렸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신록은 눈부시기만 했다. 시댁에 다다랐을 때 저수지 낚시터가 보였다. 그 순간, 메기 매운탕이 먹고 싶었다. 정말 갑작스럽게 떠오른 음식이었다.

  메기 매운탕은 결혼 전 친정집에서 자주 먹던 음식이었다. 친정집 앞에 작은 호수가 있었다. 은결이 치는 호수에는 철마다 다른 새들이 날아와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멀리 떠나갔다. 수풀과 잡초가 무성했으며, 민물고기가 드문드문 파동을 일으키며 낚시꾼들을 유혹했다. 친정아버지는 어망을 넣어두고 민물고기를 잡았다. 매운탕이 끓여진 날은 민물새우나 메기가 많이 잡힌 날이었다. 메기 매운탕을 친정아버지는 맛나게 요리했다. 그날은 온 가족이 포식하는 날이었다.

  메기 매운탕은 냄비에 민물새우를 넣고 고추장을 풀어 무를 삐뚤빼뚤 잘라서 보통 불에 메기를 넣고 국물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끓이는 음식이다. 갖은양념을 넣고 십분 정도 끓이면 메기 특유의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연한 미나리까지 고명으로 오른 메기 매운탕, 보글보글 끓는 그 탕 안에 동동 떠오른 수제비는 천하제일의 명장이 만든 그 어떤 요리보다 맛있다. 그 국물에 밥 한 그릇 비벼 먹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승용차가 시댁에 도착했다. 시아버지가 마당에 나왔다. 남편과 나는 인사를 하고 짐을 내렸다. 그런데 메기 매운탕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당장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남편 옆구리를 계속 찔렀다. 남편은 알았다고만 답하고 시간을 끌었다. 무뚝뚝하게 버티는 꼴을 더는 볼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매운탕, 매운탕이라고 속삭이며 딴죽을 걸었다. 그랬더니 남편도 귀찮았는지 시아버지께 바로 매운탕 얘기를 꺼냈다. 나는 속으로 손뼉 치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마침 파를 다듬고 계시던 시아버지는 알았다는 듯 뒤란에 계시는 시어미니께 이 사실을 알렸다. 이윽고 시아버지는 오토바이를 몰고 동구 밖으로 나갔다. 시아버지는 식당을 알아냈다며 일찍 돌아오셨다. 모두 나갈 차비를 했다. 햇빛이 정수리에 그대로 꽂혔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부르며 서두르라고 소리쳤다. 시어머니는 이십 여분이 지나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시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같은 시간 뒤란에서 나온 시어머니는 옷차림이 후줄근했다. 머리에는 수건이 친친 감겨 있었고, 발 고랑처럼 깊게 팬 주름살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시어머니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그런데 시어머니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입이 대포처럼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영감, 내가 비린 것 먹지 못하는 것 알면서, 너희나 가. 나는 안 갈겨.”

  시어머니가 옆구리에 이고 왔던 함지박을 내려놓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 성격이 원래 괄괄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아버지에게 악을 쓰듯 큰소리치는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었다. 시아버지는 시어머니를 나무랐다. 이윽고 두 분의 언성이 높아지면서 말다툼이 이어졌다. 내가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시어머니는 계속 투덜거렸다. 나는 내가 말을 잘못 꺼낸 것은 아닌가? 싶어 눈초리를 가늘게 떴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왔음에도 그다지 반겨주지 않았다. 얼굴에는 나 무척 서운해!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밭에서 일하고 돌아온 뒤라 몸이 고단하였다. 남편은 내가 메기 매운탕 얘기만 하지 않았다면 바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쏜살같이 갈빗집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남편은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효자다. 결혼 전부터 시어머니 얘기만 했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 남편은 입장이 난처한지 표정이 일그러졌다.

  시부모님은 오전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느라 기력이 쇠약해졌다. 그런 부모님을 생각해서 몸보신하도록 아들 입장에서는 고기음식을 사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상황이 다르다. 남편은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어쩌겠는가? 나는 집안의 귀한 손자를 임신한 며느리가 아닌가. 시어머니도 내가 홑몸이 아닌 걸 알고 뭐라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다만 시어머니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시아버지가 못내 섭섭하셨는지 아니면, 아들에게는 말 못 하니까 울화통이 터지는 걸 시아버지에게 화풀이로 속을 달래려고 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시아버지는 식당에 삼계탕도 있다면서 사주겠다고 했다. 시어머님은 됐다면서 툴툴거렸다. 가족 모두 차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했다. 시부모님은 일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분위기는 냉랭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방갈로로 지어진 식당은 철제 대문이 아치형으로 꾸며졌다. 그 위에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마치 무릉도원 온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시아버지가 예약한 방에는 메기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시아버지는 당장 소주 가져오라며 한 그릇을 접시에 담고 푹푹 떠드시는데, 시어머니 눈초리가 날카로웠다. 어머님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주방 아주머니께 닭고기를 부탁했으나 시어머니는 마다하셨다. 밑반찬은 김치밖에 없었다. 고추장 향이 내 코끝에 닿았다. 시어머니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 들다가도 아기를 위해서라도 잘 먹어야 한다는 내 입장은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시부모님이고 뭐고 간에 일단 나부터 먹고 봐야 했다. 숟가락이 냄비 속으로 풍덩 빠지고 자유롭게 수영을 했다. 끝에 닿는 메기의 비릿함이 수저에 담기고, 얼큰한 고추장 맛이 입안에서 감질나게 맴돌았다. 친정아버지가 끓여준 맛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추억을 더듬으며 매운탕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야! 이건 우주의 맛이다. 저 은하 속으로 내가 지금 유영하고 있는 생명체의 맛이다. 바다의 갯벌처럼 쑥쑥 빠지는 말랑말랑 맛에 나는 숟가락질을 멈추지 못했다.    호강이 따로 없다. 그러나 음식을 먹으면서 친정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부모님이 앞에 계셨지만, 친정 부모님이 사뭇 그리웠다. 남편은 내가 정신없이 먹는 걸 보고는 입을 벌리더니 헤벌쭉 웃었다.

  “그렇게 맛있냐?”

  “네.”

  남편도 민물고기를 잘 먹진 못했다. 내가 잘 먹는 모습을 보아선지 이날은 밥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다만 시어머니가 김치만 먹은 게 마음에 걸렸다. 된장찌개가 나오긴 했지만, 시어머니는 뚝배기를 휘휘 젓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새 아가, 뱃속 고것이 그렇게도 이게 먹고 싶었나 보다.”

  살갑게 다가오는 시어머니 목소리가 긴장했던 내 마음을 살살 녹였다. 그러나 시아버지를 시어머니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시아버지도 지지 않겠다는 듯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차에 올라타고 나서부터 나는 속이 더부룩했다. 멀미 기운도 없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차 좀 세워봐.”

  나는 다급하게 말하고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 문을 열고 나가 맛나게 먹은 음식물을 토해냈다. 눈물까지 쏙 빠질 정도로 음식물을 게워냈다. 토악질을 하는 걸 보고 시어머니가 차에서 따라 내렸다.

  “괜찮으냐? 아가?”

  “네. 어머님. 괜찮아요.”

  나는 입가를 닦았다.

  “괜히 나 때문에 네가 힘들었나 보다. 아기도 그렇고.”

  시어머니 눈동자는 물기가 어룽져있었다. 매서운 눈빛은 없어지고, 안쓰러움과 염려로 가득한 따뜻한 눈빛이 닿았다. 시어머니가 내 등을 살살 문질러주었다. 이상했다. 메스꺼웠던 기운이 싹 가라앉았다. 배속에 있던 태아도 그걸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바짝 긴장하고 움츠러들었던 어미의 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시어머니 손길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마음이 눈 녹듯 풀어져서 눈물을 흘렸다. 시어머니는 내 등을 토닥이고는 한참을 서 계셨다. 그 순간 친정아버지가 떠올랐다.

  “결혼하면 시부모님 말씀 잘 듣고 잘 살아야 한다. 시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네가 사랑받는 거야.”

  이제야 나는 친정아버지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시어머니를 향한 괴로운 감정을 싹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시어머니께 다가가는 게 어렵고 낯설었다. 그런데 이렇게 어머님 품 안에 있다 보니 시어머니는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 나는 다시 차에 올랐다. 남편과 시아버지는 괜찮냐며 걱정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모 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시어머니가 유리창을 통해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 앉아 있던 시아버지도 한마디 하셨다.

  “그럼, 부모 되는 게 쉬우면 자식을 열 백번 낳게.”

  “어머님, 아버님 화해하신 거예요?”

  내가 이렇게 물어보자, 아버님과 어머님은 헛기침만 하고는 먼 곳으로 시선을 두었으나, 이내 다시 얼굴을 마주 보았다.

  “우리가 언제 싸웠느냐? 화해하게.”

 시아버지가 저음으로 말했다. 이윽고 아버님과 어머님은 너털웃음을 날렸다. 냉랭한 기운이 싹 가시고, 가족 모두 흐뭇한 표정으로 시댁에 도착했다. 뙤약볕은 화살처럼 그대로 꽂혔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메기처럼 유유히 흘러갔다. 그리고 나는 당분간 메기 매운탕을 찾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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