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밀가루 냄새가 그리웠다. 비가 와선지 막걸리에 파전도 구미가 당겼고, 담백한 칼국수도 먹고 싶었다. 그간 둘째 아들 어린이집 하원 할 때까지 집에서 책만 붙잡고 외출하지 않았다. 머리도 식힐 겸 바깥으로 나섰다. 집에서 가까운 손칼국수 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자리는 이미 만석이었다.
삼십여 분을 기다려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이 나왔다. 그사이에 뒷자리에는 백일이 안 된 아기를 안고 온 아기 엄마와 시어머니로 모이는 노모가 서로 마주하고 앉았다. 뒤늦게 착석한 아기 아빠는 40대 중반으로 보였다. 늦게 결혼한 신혼부부 같았다. 그들의 밥상에도 삼 인분 칼국수가 놓이고, 입김을 후후 불며 세 식구가 후루룩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기 엄마는 백일이 안 된 아기를 한 손에 안고 먹는 모습이 어째 많이 불편해 보였다. 아기는 칭얼거렸고, 엄마는 잠시 아기를 바닥에 눕혀 놓고 국수를 씹지도 않고 급하게 먹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세 식구 중에 아기 엄마 말고 누구도 일어나서 아기를 안아 줄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아기 엄마가 편하게 국수를 먹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대각선에서 아기 엄마를 흘금흘금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다음에는 부스터를 하나 가져오셔야겠어요. 그래야 엄마도 맛있게 먹지요."
"그래야겠어요."
아기 엄마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나는 그즈음에 칼국수를 든든히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아기를 내가 안아주고 싶었다. 예전에 큰아들을 혼자 키울 때가 생각났다. 집에서 혼자만 하는 육아로 우울증이 심했다. 정말 맛있게 밥을 먹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 같은 경우는 중증 장애인 남편이 아이를 돌볼 수도 안아줄 수도 없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아기를 키워줄 사람이 근처에 없었다. 따끈한 밥 한 그릇이 서럽게 그리웠던 날들이었다. 나는 예전에 내 생각이 나서 아기 엄마를 본 순간, 입안에서 맴돌던 말을 그들에게 던지고 싶었다. 그러나 남의 일에 내가 대추 놔라, 감 놔라 할 수는 없었다. 세 식구 중에 아기 아빠도, 시어머니로 보이는 노모도 아기를 먼저 봐주겠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아기 엄마 마음을 누구 하나 헤아리지 못한단 말인가? 노모나, 아기 아빠는 언제고 외출해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아기 엄마들은 잠시의 외출도 어렵고, 외출이 있다 해도 계획을 세워서 준비를 철저히 한 후에야 가능하다. 아기 짐이 보통 짐인가? 기저귀부터 해서 손수건, 분유통, 물통까지 가방이 한 짐이다. 아기 아빠라는 사람은 칼국수가 나오자마자 젓가락을 들고 자기 배 속을 채우느라 아내 옆에서 칭얼거리는 아기 울음소리를 외면한다. 노모도 마찬가지다. "아가, 애 보느라 그간 힘들었는데, 국수 식기 전에 어서 먼저 먹어라. 어서." 이렇게 말이라도 해주면 세상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적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기 엄마들은 처음부터 아기 엄마가 아니었다. 결혼 전까지는 친정에서 손에 물 하나 대지 않고 인정받고, 세상에서 사랑받으며 자신을 드러낸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혼하고 아기를 낳는 순간, 경력이 단절되고 포기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특히 밥 문제가 그렇다. 아기 엄마들도 따뜻한 밥을 좋아하고, 천천히 먹고 싶어 한다. 가족 외식이 모처럼 있는 날은 그런 마음이 더 간절하다. 이럴 때는 가족들이 아내를 먼저 챙겨줘야 한다. 남편들이여. 아니면 시댁 가족들이여. 집안의 소중한 아이를 출산한 여성에게 먼저 따뜻한 대우를 해주었으면 한다. 외식하러 온 날에 아기 엄마는 결국 아기를 업고 아기가 잠잠해질 때까지 왔다 갔다 하며 서성였다. 칼국수 국물은 차가워지고, 면발은 탱탱 불어 맛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아기 아빠가 배를 든든히 채웠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아기를 안겠다고 한다. 아기 엄마는 아기를 건네고 김치 겉절이 좀 달라며 종업원을 불렀다. 아기 엄마는 차가워진 칼국수를 어떤 맛으로 먹었을지는 모른다. 나는 음식값을 치르고 식당을 나와서 멀리 날아가는 까치만 올려다보았다. 저출산, 비혼 등 여성 인권을 생각하며 사회문제로 말들은 많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보수적이다. 특히 기혼여성을 대하는 남성과 옛 어른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여성이 언제 제일 행복한지, 그리고 무엇을 원하는지 남성들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산후 우울증으로 근래에 영아를 살해했다는 아기 엄마들의 극단적인 사건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이 얼마나 고립되고, 소통이 안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을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할게 아니라 연민의 문제로 받아들이면서 재발이 되지 않도록 통감했으면 한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여성들에게 결혼을 요구하고 아이를 낳지 않는 대한민국이 큰일이다. 라는 둥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우리나라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