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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6. 2021

노두 길이 열리길 기다렸다

  나는 노두 길이 열리길 기다렸다. 서해는 어지럼증이 심해서 가쁘게 숨을 내뱉으며 호흡했다. 입덧이었다. 봄을 잉태하고 있었다. 서해를 바라보며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늦가을과 초겨울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고 나무들은 앙상한 뼈를 드러냈다. 남편과 나는 짐을 꾸려 증도로 출발했다. 남편은 처음에 섬 여행을 반대했다. 섬 여행은 처음이었다. 나는 배를 타지 않고 차로 갈 수 있는 섬이라고 얘기했다. 남편은 며칠 뒤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평소에도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일부러 피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함께 가야 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삼 년 차가 되도록 아기가 없었다. 양가 어르신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손자 타령을 했다.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온몸이 가시덤불에 찔린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남편과 함께 일찍 집에 오곤 했다. 아기는 나 홀로 만드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휠체어를 타는 척수 손상 장애인이었다. 여느 남정네들보다 건강이 좋지 않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남편과 증도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증도가 다산의 섬이라고 불렸기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낸 지인은 증도를 다녀간 뒤 임신에 성공해서 예쁜 딸을 낳았다. 매일 벙글거리며 아기 사진을 올리는 그녀를 볼 때마다 배가 아팠다. 증도라는 처음 듣는 섬 이름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그리고 이번이 임신을 준비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진료실은 마치 주술을 부리는 점집처럼 느껴졌다. 모니터 한 대를 올려놓고 마주한 의사는 점쟁이와 별반 다름없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사막처럼 어둠이 드리워진 초음파 화면에 실루엣처럼 나타난 둥근 집이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은 누가 파헤쳤는지 속살이 드러났다. 나는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빈혈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방전을 부적처럼 들고 나왔다. 엽산과 철분을 사서 매일 먹었다. 달이 뜨려면 먼저 내 몸에 튼튼한 집을 지어야 했다. 의사는 이달 말에 달이 뜰 것이라고 말했다.

  무안에서 국도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전복을 엎어놓은 듯한 섬들이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천안에서 네 시간을 달려 증도에 들어섰다. 증도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 중의 하나였다. 증도대교를 건너자마자 소금기가 묻은 바닷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왔다. 최근에 슬로시티로 인기를 얻어선지 섬 안에는 달팽이 그림이 많았다. 사전에 예약한 펜션에 도착했다. 펜션은 이 층으로 지어진 목조건물이었다. 우리가 묵을 방은 일 층에 있었다. 사방이 편백으로 실내장식을 해선지 나무 향이 은은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창밖으로 썰물이 져나갔는지 갯벌이 광장처럼 드러났다. 짐을 풀고 첫날 목적지인 화도로 이동했다.

  증도 옆에 붙은 작은 섬이 화도였다. 이곳은 차를 끌고 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화도는 꽃섬이라 불리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만났던 한라산과 기생 오름이 형과 아우의 관계였다면 증도와 화도는 모녀 관계처럼 정다우면서 친근했다. 화도에는 드라마‘고맙습니다’ 촬영지가 있었다. 배우 장혁과 공효진이 출연했던 드라마는 증도를 알리는 게 크게 공헌했다.

  노두 길이 보였다. 시간은 오후 두 시를 가리켰다. 잠시 차를 정차했다. 노두 길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바닷길이었다. 노두 길 위에 바닷물이 물결을 너울거리며 찰랑댔다. 밀물 때인지 썰물 때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남편과 나는 얼굴을 마주 보고 어떻게 할까? 망설였다. 그러다가 남편이 자동차 속도를 올리며 노두 길을 달렸다. 바닷물이 찰랑대는 길 위를 달리는 느낌이란 외줄 타기처럼 아슬아슬했다. 반면 짜릿하고 쾌감도 컸다. 차가 화도 땅에 들어서자 남편은 십 년 감수했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사실 나도 가슴을 졸이며 긴장했다. 노두 길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았다. 반대편에서 경운기라도 나타났다면 내 쪽이든 상대 쪽이든 둘 중에 한쪽은 기다렸다가 다음 차가 빠져나갈 때까지 꼼짝 못 했다. 그러나 어디 가서 이런 체험을 해본단 말인가? 노두 길을 건너는 일은 그렇게 생경할 수가 없었다.

  차를 끌고 드라마 촬영지로 이동했다. 촬영지에는 두 마리 백구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느긋하게 낮잠을 즐겼다. 촬영지에는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집 한 채가 있었다.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장이었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거렸고, 늦게 피다만 코스모스는 시들해져서 볼품이 없었다.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흔적을 느끼게 해주는 건 오두막집에 걸어둔 엽서, 사진, 그리고 낙서였다. 세트장에서 가까운 가정집에서는 연예인이 다녀갔다는 사인을 액자로 내걸고 술과 음식을 팔았다. 자동차로 화도 일대를 둘러보는 시간은 이십 여분이면 충분했다. 남쪽으로는 해송이 울창하게 해변을 지켰고, 야트막한 산기슭에 펜션이 옹기종기 모여 손님을 기다렸다. 서쪽에는 방파제와 선착장이 보였고. 바다 인근에는 부표가 둥둥 떠다녔다.

  화도에는 염전도 있었다. 물기를 말린 소금창고가 소품처럼 섬 안을 외롭게 지켰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없었고, 화도를 빠져나가려는 차량만 간간이 보였다. 남편도 차를 돌려 증도로 향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노두 길이 없어졌다. 대신 그 자리에 바다가 일정한 박자로 출렁거렸다. 딱딱한 시멘트 길이 언제 있었냐는 듯 바다는 묵묵부답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웃음이 나올 법도 하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꼼짝없이 섬에 갇히고 말았다.  

  물때를 몰라 섬에 갇히기는 처음이었다. 다행히 스마트폰을 이용해 화도의 물때 정보를 얻었다. 썰물은 오후 다섯 시였다. 썰물 때까지는 아직도 두 시간 반이나 남았다. 증도에서 화도로 건너오려다 멈칫한 차량이 두세 대 보였다. 모두 차를 돌리고 급히 뜨고 있었다. 도로 위에는 남편과 나, 오직 두 사람만 있었다. 남편은 차량 시트를 뒤로 젖혀 몸을 뉘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바닷물 앞으로 다가갔다. 바닷물은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해가 일찍 지기 전에 나가고 싶었다. 내 몸에 보름달이 뜨고 있음을 감지했다. 달이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하루였다. 나는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해는 이런 내 마음을 헤아리는지 연거푸 신발을 간질이듯 찰랑찰랑 적시고 있었다. 그 손짓은 마치 나보고 어서 가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내가 이곳 증도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서해는 알려주고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나는 차 안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리고 남편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차를 염전 쪽으로 이동시켰다.

  염전 주변은 사람이라고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해가 설핏 기울면서 찬바람이 소금밭을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물기가 빠져나간 소금 알갱이들이 얼음처럼 단단히 형체를 드러냈다. 남편과 내가 탄 차량은 소금창고 옆에서 바닷물이 출렁거리듯 또 하나의 파도를 일으키며 춤을 추었다. 춤사위는 어느 무대에서도 볼 수 없는 기교와 멋을 부렸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해가 점점 침몰하는 배처럼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즈음에 감물 든 서녘에 납작 엎드린 거북등처럼 섬들이 실루엣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세의 기적처럼 바닷물이 두 갈래로 천천히 나뉘었다. 그 놀라운 광경 앞에서 남편과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바닷물이 뒤로 물러나면서 노두 길은 회색빛을 토해내더니 완전한 작품처럼 몸집을 드러냈다. 나는 두꺼운 점퍼를 꺼내 입고 차 밖으로 나왔다. 노두 길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숨죽이고 있었다. 바람이 점점 세게 불면서 사방에 먹물을 뿌려놓은 듯 어둠이 깔렸다. 반대편에서는 화도로 건너가려는 차량이 줄지어 서 있었다.

  드디어 노두 길이 나타났다. 남편은 시동을 걸고 라이트를 켰다. 반대편 차들도 라이트를 켜고 길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먼저 노두 길을 건넜다. 양 갈래로 나뉜 서해는 마치 임금 앞에서 몸을 숙인 신하처럼 엄숙하고 진중했다. 자연이 주는 그런 대접은 처음이었다. 남편과 나는 무사히 노두 길을 건너 증도에 도착했다. 줄을 선 차량들이 노두 길을 건너 화도로 들어갔다. 길 하나를 두고 누가 급히 가거나, 서두르지 않았다. 그 차분한 풍경 앞에서 증도가 왜 슬로시티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화도를 완전히 벗어나자 나는 긴장감이 풀리면서 피로가 몰려왔다. 그러나 마음은 충만했다. 화도에서 있었던 세 시간의 구속은 우리 부부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다.    

  어선들이 멀리 수평선에 불을 밝히며 바다와 하늘 간의 경계를 구분 지었다. 이따금 갈매기들이 자맥질하는지 끼룩거렸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증도의 별은 유난히 빛났다. 내 몸에 달빛도 계속 빛을 밝히고 있었다. 그 달빛을 따라 어둠을 밀어내고 느리게 항해하는 배가 있었다. 배는 따뜻한 노래를 부르며 달빛을 쫓았다. 멀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등대 같은 숙소가 나타났다. 그곳에서 밤바다를 가르며 우리 부부는 다시 황홀한 춤사위를 펼칠 것이다. 서해가 푸르뎅뎅한 저 육중한 몸속에 봄을 품은 것처럼 내 집에도 달빛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노래를 부르는 소중한 아기가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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