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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소이 Oct 15. 2021

네 탓 내 탓


  아침에 일어나서 찬물을 마셨다. 아랫니가 시렸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아랫니를 살폈다. 거울에 비친 아랫니는 하얗게 보였지만, 안쪽은 시커멓게 치석이 끼어 있었다. 치과 병원을 다녀온 게 언제더라? 년이 지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을 받아야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안방으로 갔다. 남편 팬티가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팬티는 젖어 있었다. 지린내가 진동했다. 남편은 잊을만하면 한 번씩 밤에 실금 했다. 남편은 척수 손상 장애인이었다. 남편은 이불을 둘둘 말아 다리에 걸쳐 자고 있었다. 나는 남편 엉덩이를 한 대 치고 소리쳤다.

  “요에 천둥과 번개를 그리셨네. 이불빨래 하기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빨리 일어나요.”

  남편은 싱긋 웃었다. 나는 입을 삐죽 내밀며 구시렁거렸다. 침대에 구겨져 있던 요를 걷어서 세탁기 안에 집어넣었다. 우리 집 남자들은 본인들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모르쇠 표정을 지었다. 그럴 때 나는 약이 더 바짝 올랐다. 여느 때처럼 부산스럽게 남편과 아이를 회사와 학교로 보내고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집 안은 평화로웠다. 기상예보로는 오늘 국지성 호우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은 맑기만 했다. 전날에 비가 한차례 왔지만, 여우오줌처럼 찍 갈긴 수준이었다. 마당으로 나가 물통에 물을 담고 화단에 뿌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며칠 전부터 노란 국화가 꽃잎을 터뜨려서 벌들이 붕붕거리며 주변을 맴돈다. 작년 가을에 남편이 마흔이 된 내 생일을 축하한다며 선물한 국화였다. 그 국화를 시들지 않게 화단에 심었더니 겨울나고 무럭무럭 자랐다. 가을이 오려면 두 달이나 남았는데 노란 꽃이 피었다. 여름 국화라니, 참 신기한 일이다. 지금 피어나면 가을에는 어찌하라고. 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는지 신호음을 보냈다. 탈수된 요를 바구니에 담고 밖으로 나갔다. 빨랫줄에 요를 널고 탁탁 털었다. 햇볕이 따가워서 잠시도 머무를 수 없었다.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가서 치과에 전화를 걸었다. 오전에는 예약할 수 없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두 시가 적당하다는 말에 나는 치과 진료를 두 시로 예약했다. 거울 앞에 서서 스킨로션을 바르고 비비크림을 바를 때, 크림이 나오지 않았다. 엊그제 똑 떨어졌다는 걸 알고도 인터넷으로 상품을 주문하지 않았다. 늘 머리로만 생각하고 사건이 터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일을 처리하는 나였다. 그런 나를 탓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원피스를 입고 신발장 문을 열었다. 작년에 두세 번 신고 구석에 처박아 둔 검은색 샌들이었다. 큐빅이 박혀서 나름대로 멋이 났다. 오래간만에 나도 아가씨가 되는 기분으로 샌들 끈을 발목에 착 감았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오전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김영하 작가의 신작 <오직 두 사람>을 읽다가 나도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다가 점심때가 되었다. 도서관 구내식당은 밥값이 오천 원이었다. 저렴하고 맛있어서 많은 사람이 이용했다. 소지품을 챙기고 식당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바닥에 뭔가가 닿는 느낌을 받았다. 걸을 때마다 찰싹찰싹 마찰음을 내는 소리가 귀에 영 거슬렸다.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보았더니 샌들 밑창이 반쯤 벌어져 있었다. 이 무슨 창피란 말인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한 번씩 내 얼굴을 훑고 갔다. 나는 이맛살을 찡그리며 샌들 소리가 나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 누가 보면 절름발이 걸음이라고도 했을 것이다.

  ‘짜증 나 죽겠네. 이게 다 신발 탓이야.’

  나는 속으로 이렇게 불평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식판을 들고 어정쩡한 걸음으로 배식을 받았다. 뒤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거참, 속 타 죽겠네. 거 빨리빨리 할 수 없소?”

  갈색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오십 대 중년 남자였다. 그의 머리는 가운데가 유난히 빛났다. 나는 모르쇠 표정을 짓고, ‘이게 다 신발 때문이야.’라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부아가 났지만, 귀때기를 때리는 샌들 밑창 소리 때문에 참아야만 했다.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식탁으로 건너가 밥을 씹는지 돌을 씹는지 씁쓸하고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가 시렸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았다. 12시 40분이었다. 두 시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나는 퇴식구에 식판을 반납하고, 종종걸음으로 종합자료실까지 갔다.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렀다. 자료실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에어컨 냉기가 피부에 닿았다. 시원했다. 혹여 다른 분에게 피해가 갈까 봐 샌들 밑창을 바닥에 밀착시켜서 느린 동작으로 샐쭉 웃으며, 주변 상황도 살피며 내 가방이 있는 책상 앞으로 걸었다. 한숨을 길게 내뱉고 평소처럼 가방을 뒤졌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칫솔이 없었다. 어디 갔지? 아차 싶었다. 어제 점심때, 칫솔모가 많이 구부러져 새로 사야겠다며 칫솔을 좌변기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이게 무슨 낭패란 말인가? 오늘 대체 왜 이래?’

  나는 나 자신에게 핀잔을 주었다. 치과에 가서 입 냄새 풍기기 싫어서라도 양치질을 하고 가야 하는데 당장 칫솔이 없으니 일회용 칫솔을 사고 싶지만, 도서관에는 매점이 없고 집에 가서 양치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도서관과 집까지의 거리는 차로 이십여 분. 안 닦고 가면 기분도 찝찝하고 뒤끝이 남으니 근처 편의점에 가서 일회용 칫솔을 사서 이를 닦아야 했다. 돈 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지갑을 열었다. 샌들은 밑창이 너덜거리며 찰싹거리는 소리를 냈고 나는 이가 시려서 이맛살을 찡그렸다. 날은 후텁지근하고 짜증은 계속 이어졌다. 편의점에서 칫솔과 슬리퍼를 샀다. 편의점 옆 계단 통로에 있는 화장실에서 양치질했다. 뽀득뽀득 닦으며 거품을 시원하게 뱉었다. 그리고 발목에 부착된 샌들 끈을 잡아당겨 좌변기 옆 쓰레기통에 버렸다. 멀쩡한 샌들 한 짝마저 과감하게 버렸다. 슬리퍼를 신으니 발이 한결 편했다. 진즉에 신고 올 걸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태양은 작열했고, 무더위는 기승을 부렸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지자 나는 발걸음을 옮겨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치과 진료는 무사히 잘 마쳤다. 의사는 이가 시린 이유를 칫솔질을 바르게 하지 못해서 치아 사이로 치석이 많이 낀 탓이라고 했다. ‘탓’이라는 말을 듣자 나는 기분이 씁쓸했다. 칫솔질을 바르게 하는 방법과 평소에 기억해야 할 치아 관리 등 주의사항을 듣고 병원에서 나왔다. 그즈음, 하늘에 번쩍하고 실금이 그어졌다. 먹구름이 뒤덮인 하늘은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울음보가 쏟아질 것 같았다.

  “맞다. 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승용차에 몸을 싣고 부랴부랴 시동을 걸었다. 내가 빠르냐 하늘이 빠르냐. 전속력으로 달렸다.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잠시 뒤에 장대비가 쏟아졌다.

  ‘이놈의 날씨,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늘 탓을 하며 차 유리창에 와이퍼 속도를 올렸다. 메트로놈처럼 와이퍼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요가 젓질 않기를 바라며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요는 흠뻑 젖고 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빌어먹을 날씨, 이게 다 네 탓이야. 하고 애꿎은 하늘에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탈진되고 있었다. 분명 힘든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 온몸에 물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힘이 없었다. 별일이 아닌데도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남 탓을 했다. 그리고 분노했다.

  한낮에 사소한 일이 많이 일어났다. 그 일들은 내가 예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계획에 없던 일이 발생하면 나는 두렵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게 사람 사는 일이지. 괜찮아.라고 자아를 다독이지 않았다. 사건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는 항상 불안했다. 요가 좀 젖은 들 어떠리오. 샌들 끈이 끊어지면 어떠리오. 칫솔 좀 두고 나오면 어떠리오. 양치 좀 안 하면 어떠리오. 마음을 조금만 편하게 먹으면 될 일도 내 몸에 세포를 바짝 일으켜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했다. 실수하고 나면 우왕좌왕하며 몸 둘 바를 몰랐다. 그때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실수를 용납하기 싫었다.

  유년 시절에 나는 산만했다. 부모님은 내가 산만했다는 이유로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격려와 칭찬보다는 질책과 비난이 내가 듣고 자란 언어였다. 그 언어에서 벗어나고자 스스로 마음에 방어벽을 치고 사람들과 멀리했다. 실수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쳤다. 실수하는 날이면 나 자신은 날개 잃은 새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결혼했음에도 안정보다는 불안함과 권태의 나날이 지속되었다. 완벽한 삶을 가꾸기 위해 나 자신을 너무 틀에 맞추고 학대했다. 자라오면서 누군가가 틀려도 괜찮아.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으면 어땠을까? 내 안에는 아직도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듣고 싶어 하는 소녀가 있다. 그러나 내 몸은 마흔을 넘긴 어른이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두고 불혹 즉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고 했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사십 대가 되었어도 불안감이 크다. 가뜩이나 중년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껄끄럽게 다가왔다.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

  하늘이 야속했지만, 빨랫줄에 널어두었던 젖은 요를 다용도실로 가져가 건조대에 길게 펼치고 쭉쭉 잡아당기며 널었다. 아침에 남편에게 투덜거렸던 일이 떠올랐다. 남편은 몸이 불편한 사람인데, 아직도 내 기분에 따라 남편의 실수를 나무랐다. 깊이 반성했다.

  내면의 소녀에게 말했다. 앞으로 살아온 날만큼 살아갈 날이 남아 있으니 다시 시작하면 될 거야. 너무 힘 빼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러자 나는 다시 힘이 났다.

  이제부터는 투정을 부리거나 포기하지 않겠다. 삶 속에서 상황이 안 좋다 하더라도 나 자신을 비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강하고, 존재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는 여성이다. 진정한 어른으로 다시 살아보자고 주문을 걸었다. 그리고 내면의 소녀와 아쉽지만 이별을 하기로 했다. 소녀가 떠나간다. 허탈하지만 소녀를 보냄으로써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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