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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Jul 20. 2024

마음의 고향

<불변의 법칙> 독서모임

몇 개월 만에 대전에 갈 일이 생겼다. 아니, 대전에 갈 일을 만들었다. 목요일 저녁 7시에 독서 모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힘들진 않을까? 일정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며칠을 고민했지만 대전과 책방, 그리고 책방 사람들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걱정을 가뿐히 이겨냈다. 


독서 모임 선정 책은 <불변의 법칙>이란 경제경영 코너의 책이었다. 평소엔 잘 읽지 않는 분야였는데, 오히려 그래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었다. 돈에 대해, 경영에 대해 공부해야지 하면서도 혼자서는 지루하고 재미없게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즈니스 북클럽'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모임이라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모인다기에,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모임 신청도 늦어졌고, 책을 배송받기까지의 시간도 걸려 실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 평소엔 한가한 날도 많았는데, 기한 내에 책을 읽어야 되는 상황이 되자 희한하게 한의원 일도 더 바빠졌다. 부리나케 책을 읽고 한의원에서의 일들을 해내느라 혼이 쏙 빠지는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독서 모임 당일이 다가왔다.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떴을 땐 버스가 신탄진쯤을 지나고 있었고 오래간만에 보는 익숙한 풍경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대전 월드컵 경기장이 보이기 시작하면 유성에 다 도착했다는 신호다. 나는 월드컵 경기장을 보자마자 그 반대편의 아파트들을 찾느라 분주했다. 작년까지 2년간 살았던 죽동의 풍경을 눈에 담고 싶었던 것이다. 겨우 2년이었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았나 보다. 죽동의 풍경을 보자마자 애틋하고, 반갑고, 싱숭생숭했으니까. 


1. 죽동 집 거실에서 보이던 풍경 2. 유성버스정류소의 모습. 임시 정류장이다. 2025년 말이면 유성버스터미널이 완공된다.


대전에 도착해 간단히 저녁을 먹고 책방으로 향했다. 책방에 가는 길은 "여긴 이렇게 바뀌었네. 이 건물 이제 다 지어졌네!" 감탄하며 못 본 새 달라진 대전의 모습을 관찰하는 시간이었다. 책방 앞 골목길에 들어서자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책방은 여전히 환하고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책방 사장님, 갤러리 사장님, 건물 임대업 사장님, 식당 사장님 그리고 한의원 사장님 까지 다섯이 모여 이야기 꽃이 활짝 폈다. 책 이야기, 사업을 꾸려가며 느낀 점들에 대한 이야기, 각자의 분야에 대한 궁금증도 주고받고, 재능을 아낌없이 기부해 주시며 부동산 시장의 흐름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내가 온다는 소식에 먼저 퇴근하셨던 책방 사장님(책방 사장님들은 부부이시다.)도 다시 나와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간 잘 지냈느냐고, 어떻게 대전까지 올 생각을 했냐며 대화를 주고받다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고 보니 대전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책방에 들렀을 때도 사장님은 오늘과 똑같이 나를 꼭 안아주셨었다. 가서도 잘 지내라고, 너무너무 멋지다고 응원을 아낌없이 퍼부어 주시면서. 그날처럼 뜨거운 눈물을 삼키고 품에 꼭 안겨, 사장님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스러운 바베트의 만찬에서, 재밌는 비즈니스 북클럽


대전에 도착해 죽동을 바라보면서 싱숭생숭했던 건 이젠 대전에 와도 내 몸을 편히 쉴 곳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왔다는 이유만으로 한달음에 달려와주는 존재가 있다니.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드는 공간이 있다니. 그날 처음 알았다. 사람은 갈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불끈 난다는 걸. 이젠 더 이상 대전에 우리 집이 없지만, 들려야 할 곳이 있어 참 좋다.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이 있다는 게 참 좋다. 덕분에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시고, 공간을 키워가는 사장님들께 감사했다. 


어쩌면 앞으로 대전에 내려갈 일이 자주 생기지 않을까 생각하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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