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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 Aug 10. 2024

외로운 사람들

진료실 풍경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을 대하는 일이었다. 사람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른지 잘 몰랐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좁고 작은 세계에 살고 있었다. 동료, 선후배 관계뿐만 아니라, 간호사, 원무과 등 다른 부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매번 당혹스러웠고, 환자들과의 대화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왜?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왜 말을 저렇게 하시지?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 왜, 왜, 왜?


지금이라고 물음이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내가 타인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였을 뿐(어쩌면 포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왜 저래?'라는 생각이 나만 좀먹는다는 걸 여실히 느껴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왜라고 묻길 그만두고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거구나... 하는 걸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어쩌면 나도 그렇게 그냥 받아들여지고 싶었던 같다. 그런 성격은 고쳐야 한다고 끊임없이 내몰리는 대신 이런 모습이 바로 너로구나... 하고.


사람들이 다 지긋지긋해진다. 지쳤다는 신호다. 사람이 이렇게나 다 제멋대로이고 제각각인 바로 그 지점이 너무나도 싫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한껏 웅크린다. 먹구름이나 비바람, 태풍이나 홍수 같은 거라고, 그런 날도 결국 지나가기 마련이라고 믿으면서 동굴 속에 숨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날의 하루 끝에 자려고 누우면 자괴감이 몰려온다. 나는 왜 이렇게 사람이 싫을까. 이래 먹어서 어떻게 살려고. 이 세상에 참 부적합한 사람처럼 느껴져서. 내가 그냥 불량품인 것만 같아서. 그저 안 좋았던 하루, 지나가는 날씨일 뿐인데 말이다.


그래도 한숨 푹 자고 나면 복잡했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전원을 껐다 다시 켠 것처럼, 어제의 날씨는 지나가고 조금씩 해가 든다. 그렇게 새 마음을 갖고 출근해 환자들을 만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하루가 흘러가고 다시 새 마음이 된 나는 조금 안도한다. 오늘은 사람이 싫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강아지처럼 사람을 반기고 좋아하고만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지인의 고양이를 보면서 꼭 나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홀로 되긴 싫어하고, 자기도 내가 누군지 궁금하긴 한데 먼저 다가가면 도망가 버리는 알다가도 모를 고양이. 그런 고양이도 예쁨 받는다는 사실이 묘하게 위로가 됐다.




"선생님 제가 사실은요. 남편이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22년을 매를 맞으며 살았어요. 그렇게 몸 안에 화가 가득 쌓여서 그런지 자려고 누우면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아서 앉아서 한숨을 몇 번 쉬어야 다시 누울 수 있어요."


나를 안지 고작 1주일 된 환자분께서 속에만 품고 계셨을 엄청난 역사를 툭하고 꺼내 보여주셨다. 어떤 심정이신지 감히 안다고 말하기조차 송구스럽지만 적어도 내 마음 하나는 확실하다. 그런 말을 내게 해주셔서, 이렇게 살아 계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예전엔 이런 순간에 어떤 말을 드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긴말이 필요 없다는 걸 잘 안다. "그런 역사를 품고 계셨군요." 한 마디에, 서로의 붉어진 눈시울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러고 나면 단단히 잠겨 있었던 내 마음의 문도 삐그덕 소리를 내며 자연스레 열린다. 항상 내 마음을 열게 하는 건 이렇게 외로운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이었다. 이 세상엔 외로운 사람들이 참 많아서, 나 혼자만 외로운 게 아니라서, 그래서 우리가 연결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사람이 다 달라서 힘들었지만, 또 그 덕분에 힘을 낸다. 고양이도 고양이 나름대로의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대로 쓰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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