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조례 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진희가 우리 반 아이들 틈에 있었다. 좀 전에 진희 담임선생님이 급히 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우리 반에 맡기고 갔다고 아이들이 전했다.
진희는 두 가지 이상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증의 중복장애 학생이다. 마음에 드는 반찬이 있으면 주변 사람의 것을 낚아채 가지고 가기도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식판을 뒤집거나 하루 종일 꺼이꺼이 울기도 한다. 화분에 심어놓은 화초나 교실에 비치된 핸드크림을 집어먹기도 한다. 6학년이 되면서부터 진희의 덩치는 70킬로에 육박해 고등학생 언니들을 훨씬 능가할 정도가 되었다. 선생님의 관심이 다른 학생에게 집중되어 있을 때 잽싸게 교실을 이탈하기도 하기 때문에 진희네 반에 수업을 들어가는 교사들은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이러한 행동은 수업을 마치고 생활관이 있는 시설로 돌아가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여러모로 주변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진희지만 신기하게도 녀석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오면 생활관에서 있었던 전날 얘기를 들려주곤 하는데 그중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진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은 귀찮거나 싫어하는 표정들이 아니다.
오늘 아침, 아이들을 격려해줄 겸 해서 선배들이 고생이 많겠다고 운을 띄웠다. 그랬더니 "힘든 건 사실이지만 진희는 너무 너무 너무 귀여워요"라고 의외의 대답을 한다. 그것도 몇 번이나 강조하며 말이다. 도대체 진희의 매력이 무엇이기에 아이들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진희와 마주 앉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진희야, 안녕. 반갑다."하는 첫마디로 말을 걸며 진희를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진희는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이나 응시하더니 방긋 웃으며 두 손으로 내 두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왜 그토록 녀석을 좋아하는지를. 무장 해제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순간 나도 모르게 녀석을 꼭 끌어안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아이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갓난아이가 싸놓은 똥을 치우면서 더럽다고 인상을 쓰는 엄마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자식이어서라기 보다는 아이가 부모에게 선사하는 순수하고도 때 묻지 않은 영혼의 힘 때문인지도 모른다. 입안에 들어간 이물질을 닦아내느라 손은 비록 침 범벅이 될지라도 사람들이 진희를 사랑함을 멈추지 않는 것 역시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예전에 좋아했던 TV프로그램 중에 어린아이의 행동을 교정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이의 부적절한 행동 뒤에는 언제나 부모의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태도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특수학교에서의 교직생활 30여 년, 수많은 아이들과 만났지만 장애 아이들 역시 일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의 행동은 놀랄 만큼 부모와 닮아있었다. 진희가 만들어내는 사랑스러움 뒤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영혼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아낌없는 사랑을 쏟았던 할머니가 있었던 것이다.
진희는 평생 동안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존중받고 사랑받으며 자란 내면의 힘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며 살게 될 것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말이다.
위에 사용된 이름은 가명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