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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현 Aug 16. 2021

인생책, 스토너

이제까지 읽은 모든 책을 시시하게 만들어버린 책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오래간만에 읽은 정말 대단한 책이었다. 살면서 아주 많은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나름 좋은 책을 읽을 때마다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를 내어주고 싶어지는 책이 몇 권 있는데, 이번 스토너가 이제까지의 책들을 제쳐두고 가장 내밀한 곳을 차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외국책을 옮겨 오면서 번역이 매끄럽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책은 번역도 아주 매끄럽게 깔끔하게 잘해 놓아서 전혀 어색한 부분 없이 잘 읽혔다.


'스토너'는 이제까지 읽었던 모든 책들을 시시하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정말 농밀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책이었다. 


책 표지에 적힌 말대로, 한 문학 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아 제대로 시작할 수조차 없다.'라는 그의 평에 정말 공감한다. 어디서부터 이 책이 그렇게 좋았는지 말하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읽고 영 별로인 책은 그냥 아무거나 잡아다 비평을 늘어놓아도 되는데, 이렇게 좋게 읽은 책은 그 감상이 다치지 않게 평을 하려니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또한 내 부족한 표현으로 이 좋은 책에 누가 될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설프게 평가를 하여 책의 가치를 손상시킬 것만 같은 두려움도 든다. 그만큼 정말 괜찮은 책이다. 물론 사람마다 이 책을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내 관점에서는 젊은 사람보다는 인생을 중반 정도 쯔음 왔다고 생각할 때 읽는 것이 좋을 거 같다. 굳이 나이로 따지자만 나이 35살 정도에 읽으면 좋지 않을까? 인생의 굴곡을 어느 정도라도 맛을 본 사람이 읽는다면 좋을 책이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나 아주 어린 사람이 읽고도 이 책의 진함을 느낀다면 그건 아마 책 읽은 자가 조금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다. 


딱히 왜 이 책이 좋냐고 하면, 뭔가를 딱 짚어서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의 흐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기교가 넘치는 표현들로 가득 차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을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곱씹으며 읽었던 이유는 바로 이 책에 우리의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마치 우리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나는 주인공의 인생을 살듯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푹 빠져 들었다. 


인생, 그 쉽지 않은 이야기... 스토너라는 영문과 교수의 인생을 천천히 읽어나가면서 나는 그에게 나를 끊임없이 투영했다.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스토너는 선진 농법을 배우러 대학에 가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따라 농업대학에 입학하지만, 교양으로 들은 영문학 수업에 이끌여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그때부터 스토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한마디로 삶의 재미란 것을 제대로 느끼기는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정도라면 목자의 삶과도 같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들을 겪는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부당한 일도 당한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그에 응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최소한 억울한 것은 없지만, 인생이란 때론 인과관계나 논리를 따지지 않고 우리에게 시련을 준다. '왜 그렇게 나를 미워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유를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등장한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는지 도대체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인생의 흐름을 중단한다면 어떨까? 많은 시련 속에도 우리는 어떠한가? 우린 이런저런 일에도 묵묵히 우리의 길을 걸어 나가지 않은가? 많이 지치기도 하지만, 때론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것만 같지만 우리는 결코 인생을 멈추지 않고 나아간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가 소설 속 주인공이다. 그렇게 우리는 책 속에서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글로 표현하는 방법도 너무 좋았다. 쓸데없이 과한 묘사도 없다. 불필요하게 많은 것을 묘사하기보다는 아주 간결하게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묘사가 참 좋았다. 

예를 들어, '로맥스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상당히 술에 취해 있어서 무거운 짐을 들고 험한 길을 걷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걸었다.' 이런 표현을 통해 우리는 아주 많은 정보를 전달받지는 못하지만,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어떠할지 그리고 얼마나 취했을지를 충분히 상상하게 된다.

또한 '폭이 좁고 세로로 긴 이마에는 핏줄이 굵게 드러나 있고, 파도처럼 구불거리는 굵직한 머리카락은 잘 익은 밀 색깔로, 마치 분장한 배우처럼 올백으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처럼 잘 익은 밀 색깔이라고 표현하는 방법은 참 간결하면서도 좋았다.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표현이라는 것이 대단할 필요가 없다. 좋은 표현은 굳이 어려운 단어를 사용할 필요가 전혀 없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지성을 욕심내어 표현하다 보니 상당히 어색한 글이 나오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로서 한없이 부러웠다. 좋은 문장을 만날 때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다시 읽으면서 형광펜으로 하나하나 밑줄을 긋고 싶었다. 손으로 글을 수없이 옮겨 적으면 그와 같은 글솜씨가 자연스레 나에게 전달되지 않을까?라는 이상한 기대를 걸어보기고 했다. 동시에 나는 심한 절망에 빠졌다. 절대 저런 경지의 글을 쓸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저자는 손으로 쓴 '스토너' 원고를 타이피스트가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다가 계속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왜 그렇게 우냐고 물으니, 타이피스트가 주인공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한 번도 주인공이 불쌍하거나 이 책이 슬픈 책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스토너는 힘들었지만 멋진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란다. 

한 사람의 인생의 서사를 한 권의 책으로 천천히 읽어가면서 나는 내 인생에서 보았던 여러 부조리와 안타까움, 어찔할 수 없는 일들의 막막함 등을 보았다. 그리고 주인공 스토너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때 나는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인생에서 너는 무엇을 기대했나? 너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했나? 궁극의 질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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