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종현 Nov 10. 2024

Come and See, 1985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러시아 영화, Come and See (1985년, Elem Klimov 감독)은 이제까지 봐왔던 전쟁영화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게 러시아 영화의 특색인지 혹은 너무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탓인지는 모르겠다. 러시아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고 자주 보는 편은 아니라서, 단정 짓긴 어렵지만 러시아 영화의 특색인 것도 같다. 러시아 문학도 나와 잘 맞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이 영화는 상당히 거칠고 다르다. 그럼에도 상당히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는 많은 암시와 상징이 등장하며, 시적인 표현도 거침없이 우리에게 던져대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사회적 질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있을 땐,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영화를 관람했다. 상당히 혼란스러움 그 자체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끌어가는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은 점도 영화 관람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가 주는 마법 같은 효과는 영화가 끝나고 시작된다. 며칠이 지나도 나는 이 영화를 곱씹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속 그 거친 묘사들이, 주인공 소년의 그 찌그러진 표정의 고통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흥겹게 보면서 즐기는 영화가 있지만,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수많은 생각거리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가져다주는 그런 이상한 영화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시간적 배경이다. 12살의 한 어린 소년이 소비에트를 침공한 나치와 맞서 싸우길 원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는 전쟁에 참가할 수 없다. 그런 그에게 방법이 있었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찾은 총기가 입대의 방법이었다. 무기와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총을 들고 온 자원자는 입대를 허용하는 상황이었다. 가족을 떠나 군대에 들어간 어린 소년, 플로리야(Florya)의 전쟁에 대한 잔혹극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가 겪은 전쟁의 이야기,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이 무참히 살해된 현장 속에서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총알이 날아다니는 씬은 상당히 사실적인데 그럴 수밖에 없다. 실제 총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주 빵빵 터지는 그런 효과는 없지만 실제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를 연상시킨다. 

영화는 상당히 거칠고, 보고 있기가 무척이나 불편하다. 의자에 앉은 몸을 여러 번 고쳐 앉았어야 할 만큼 영화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영화였다. 


몸에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소름 끼치는 장면이 꽤나 있다. 플로리야가 집으로 돌아와 가족이 몰살된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고 뛰쳐나가는 그의 모습 뒤로 마을 사람들의 주검이 무참히 쌓여있는 장면이 그렇다. 또한 나치들이 마을 사람들을 한 곳간에 전부 몰아넣는 장면도 그렇다. 어린 아기까지 모조리 몰아넣고, 불을 지피기 전에 던지는 말 '아기를 버리고 나올 수 있다면 나와라. 그럼 살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아기를 버리고 나갈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플로리야는 자신이 소년이었기에 그 상황을 모면하게 된다. 불타오르는 곳간을 보면 미친 듯이 웃어대는 나치들의 모습과 플로야의 절망에 빠진 표정을 담은 씬을 보고 있으면, 이런 말이 절로 나온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그렇다. 인간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라는 말을 영화는 던진다. 12살 소년의 얼굴에 담긴 전쟁의 호러가 끔찍할 정도다.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변해가는 플로리야의 얼굴모습은 압권이다. 12살의 어린아이가, 그 순진하게 전쟁을 장난으로 받아들이던 소년의 모습이 며칠 만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 얼굴처럼 변해가는 걸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화는 그렇게 막바지로 흘러간다. 마지막 씬도 독특하게 가슴을 울린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으니 마지막 내용은 직접 보길 권한다. 


관람하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이상하게도 보고 나면 몸에 남은 전율이 느껴지는 그런 영화다. 마치 직접 내가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치 내가 직접 그곳에 '가서 그리고 본' 경험을 한 것만 같은 그런 영화다.

12살 소년의 플로리야 역을 맡은 배우의 표정이 상당히 압권이다. 전쟁의 참혹함을 이렇게 잘 묘사한 영화는 드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