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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by 안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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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내 길러왔던 배추 10포기가 알이 굵어졌다. 텃밭에 함께 길렀던 대파와 마늘도 함께 수확을 해서 이케아 백에 담아 한가득 실어 날랐다. 김치는 없어도 잘 살지만, 있으면 또 맛있게 잘 먹기 때문에 가끔은 김장을 한다. 내 나이대의 사람들은 어디 외국 나가면 한국 음식 없이는 이틀을 넘기기가 힘들어하지만, 나에겐 그런 게 별로 없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스리랑카에서도, 미얀마에서도, 태국에서, 그리고 여기 스웨덴에 살면서도 한국 음식에 대한 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다.


우리 텃밭에 길러지는 이상한 채소들, 이를테면 배추나 파, 마늘, 깻잎을 보면 이웃들이 아주 신기하게 저건 무슨 채소냐고 물어본다. 그럼, 당장 딸 수 있는 깻잎을 하나 건넨다. 그럼 그들이 오만상을 한 얼굴로 즉시 뱉어내서 다시는 먹을 생각을 안 한다. 그게 또 재미라, 나는 늘 물어보는 사람마다 깻잎 시식을 시켜주곤 했다. 이웃은 저렇게 많은 마늘을 다 먹는 게 아닐 거라고 믿는다. 저거 동양인 저놈, 분명히 어디다 파는 거라고 믿는 눈치다. 꽤나 많은 사람이 마늘을 먹지 못한다. 마늘이야 맛이 강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심지어 파나 양파도 못 먹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김치가 한때 유행을 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스웨덴에서 김치가 10년 정도 전에 크게 유행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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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하면, 부엌이 아주 난리가 난다. 배추를 절일 통이 없어, 큰 냄비도 꺼내서 일단 절여 본다. 그 많던 배추가 숨이 죽어 반이 되면, 속 양념을 만들어 버무린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김장독이 없는데, 다른 유럽 국가에서 비슷하게 절임 양배추를 숙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독을 구해다 담가 놓고 베란다에서 숙성을 시킨다. 이렇게 김장은 하루가 꼬박 걸린다. 겨우 10 포기에 이렇게 많은 손이 가는 일을 끝내고 보면, 이렇게 심한 노동까지 해가면서 굳이 김치를 먹어야 하는 심한 자괴감이 든다. 그냥 김치를 포기하고 살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잘 익은 김치로 겨울 내 참치 김치찌개를 먹을 생각을 하니 또 포기할 수는 없다.


저 김치가 다 익어도 문제가 있다. 바로 김치냉장고가 없는 사실이다. 이게 아무리 밀봉된 유리병에 담아도 김치의 독한 냄새는 스멀스멀 올라와, 온 냉장고의 공기를 장악하고 만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김치 냄새가 난다. 냉장고도 크지 않아서, 채소 칸의 절반을 차지하고 만다.


우리 집 강아지는 내가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꼭 근처에 앉아서 입맛을 다신다. 시꺼먼 게 시꺼먼 복도에 앉아 있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무심히 바라보면 그 핑크빛 작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간을 하기 전의 고기는 조금 잘라내 먹여준다. 마치 엄마가 요리하다 아이에게 맛보라고 음식을 건네는 모습과 얼추 비슷하다.


그러나 이 강아지는 내가 김장하는 동안에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먹을 게 없다는 걸 어찌도 잘 알아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가끔 우리 집 강아지에게 'Cold Blood Businessman'이라고 말하는데, 늘 내 손에서 음식이 떨어지면 1초도 머무르지 않고 떠나기 때문이다. 옆에서 입맛을 다시다 무언가를 얻고, 내가 양손을 벌어서 'nothing more'라고 말하는 순간 자리를 떠난다. 꼭 차가운 비즈니스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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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김장은 저염식이 되고 말았다. 약간 덜 짜게 만들려고는 했지만, 소금이 영 적게 들어간 모양이다. 한국인은 재료나 양념을 잘 개량하지 않고, 대충 버무려보고 나중에 간을 보고 맞추는데, 이게 매년마다 김치 맛이 달라지는 이유가 되었다. 너무 맵지 않게, 짜지 않게 하려다 보니, 이번엔 좀 심심한 맛의 김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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