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Jan 25. 2023

잠영

그동안 몰아쳤던 많은 고민과 염려와 불안들이 어느 순간 내 일상의 에너지를 조용히 삼켜버린 걸까? 


내 주변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  쉽게 피곤해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일에 무심해지고,

소원해진 친구에게 굳이 내가 먼저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더욱이 내 신변의  일들(결혼, 임신, 재산, 직업, 남편 연봉 등등 대답하기 아주 성가신 것들)에 꼬치꼬치 이런저런 잣대로 평가하는 이모들의 잔소리에 더 이상 속 좁은 인간이 되기 싫어  아예 가족행사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고,

가족들도 큰 걱정거리가 없다면 매주 주말에 다 같이 모이던 그 자리도 슬그머니 빠지게 되고,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는  진부하고 재미 없어진 지 오래...

평일의 장거리 운전으로 주말은 아예 운전대도 잡기 싫어 밖으로 나가는 것도 부담.

쉬는 날에는 집 밖으로 한 번도 나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최근 두서너 달 나의 상태는 대략 이렇다. 아니.. 생각해 보니 좀 더 된 것도 같다.


이 정도면 번아웃이 맞을까?

아니면 지극히 I 다운 면모의 내 MBTI에 맞게 패턴대로 살고 있는 건가?

지금까지도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약간은 은둔형인 듯,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활발한 척, 남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척 잘 지냈는데

이젠 그것조차 피곤하다고 느끼는 게 문제.

직장에서는 철저히 Energenic 하지만 퇴근과 동시에 아주 소수의 몇 명을 제외하곤 특별히 내 일상의 사소함을 나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솔직히 내가 관심이 없다. 남편과 싸우고 화해한 얘기, 이번 명절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돈을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등등 친구들끼리 나누는 사소한 수다가 지금은 내 귀에 잘 들리지 않는다.


조용히 혼자 넓은 공원 한 바퀴를 산책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파트 헬스장에서 한 시간 러닝머신 위를 생각 없이 걷다 오는 것, 2세를 위해 건강한 몸 상태를 만들고 꾸준히 영양제를 챙겨 먹는 일, 밀린 독서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보태는 일.

혼자서 이런 걸 하면서 지낸다. 내 주변 사람들, 그들은 알지 못하는 사람의 거리 두기를 하면서.


뭐가 이렇게 지치고 힘든 걸까?

직장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근무 시간을 빼고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하면서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함.

올해가 아니면 더욱 늦어지고 성공률에서도 낮아져서 이번뿐이라는 조급함.

남들은 쉽게 생기는 축복이 왜 아직 나에겐 오지 않을까 하는 하소연.

쉽게 가둘 수 없는 이런 감정들이 주변 사람을 피하게 하고 바다 저 깊숙한  곳으로 혼자 잠영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인생의 한 스텝을 잘 밟아왔다고 안도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다른 난제가 눈앞에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마다 다른 선택과 다른 방향의 키가 있겠지만 나는 어려운 이 문제를 풀겠다고 다짐했다.

 '적절한 타이밍', '우연이라는 행운',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해야  하는 이 어려운 문제 앞에 절대 불가능하지 않을  "기적"을 나는 긍정하고 싶다.

이 문제를 멋지게 해결하고 그 이후에 후일담처럼 아무렇지 않게 내 얘길 그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