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엄마의 칠순을 앞두고 부모님 두 분께 '최고의 어머니상, 최고의 아버지상' 공로패를 만들어 드리자고 남편이 먼저 제안을 했다. 4년 전 코로나로 간단히 밥만 먹고 지나갔던 아빠의 칠순에 용돈도 안 챙겨드렸던 나로서는 굳이 몇 년이 지난 지금, 돈을 들여 공로패까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아주 오랫동안 소원한 부녀사이의 관계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최고'라는 타이틀을 가족일동이라는 이름으로 흔.쾌.이. 아빠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란 게 과연 있을까?'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최고의 아버지라는 게 과연 어울릴까?'
단 몇 줄의 모호한 어린 시절의 기억만으로도 가장으로서의 무책임을 뚜렷이기억하기에 난 아버지의 존재를 고맙게 여긴 적이 없다.
자식의대학등록금을 대출받아 자신의 빚을 갚고, 수시로 집 안의 체납된 고지서와 집세도 밤낮으로 알바를 하는 대학생 자식의 몫으로 남겨주었던 사람.
덕분에 남들이 다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대학 생활의 낭만은 1도 경험해 본 적 없이 내 이름으로 된 집을 갖게 되기 전까지 밑 빠진 독게 물을 붓는 일들을 수십, 수백 번 하게 만든 장본인.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부모의 생활비는 내 월급을 쪼개 충당하고 있음에도 아빠는 어쩌다 생기는 여윳돈을 아주 손쉽게 탕.진.해버린다. 돈을 쉽게 벌어 쉽게 써버린다...돈을 모아본 적 없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양발을 묶어 바다 밑에서 잡아당기는 느낌
내 나이에 어쩌면 더 이른 나이에 각자의 노후를 준비하고 있는 내 또래와 비교하면 서글퍼지고 한숨이 나온다. 생각만으로도 가끔은 한없이 답답하고 생각의 꼬리를 이어가다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반대로 내 눈치를 보며 한없이 작아지는 그들의 모습에 연민과 측은지심으로 마음이 무거울 때도 많다.
그래도 70살이 되도록 힘들게 살아온 엄마, 아빠의 고난함을 알기에 주름 진 손가락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마음에 쓰여 결혼하기 전 큰 마음을 먹고 엄마와 아빠에게 금반지를 선물해 줬다. 며칠 전 친정에 가서 아빠의 손을 보니 그 반지가 사라져 있었다. 정말 깊은 한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새어 나왔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답답함이었다. 사라진 반지는 앞으로도 영영 볼 수 없을 거란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남편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은 나의 가장 큰 아킬레스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또다시 나를 긍정한다.
시간이 모든 부정을 가라앉힌다. 마음속 불길이 사그라들면 물을 머금은 솜뭉치를 내 어깨에 얹어주며 막중한 책임감을 심어준 게 오히려 조금 더 강인한 나로 다듬어질 수 있진 않았나 하고 오늘도 내 인생의 무게를 긍정해 본다.
그래도 주말마다 가서 부모님의 얼굴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세상 그 어떤 누구보다 내가 잘되길 빌어준 그 기도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닿아 어쩌면 내가 간절히 소망하던 것들을 하나둘씩 내 앞에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세상 유일 내 편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이다. 나에게 가족은 그런 의미로 때론 하염없이 무겁기도, 멀어지고 싶기도 한 존재이다.
나를 불안하게 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원치 않는다.
ㅇㅏ무리 그 무능함이 밉고 싫어도, 가족이란 테두리에 함께 묶여 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는 자식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예의를 지킬 것이다. 남들에게 받았던 무시와 상처를 자식까지 보태고 싶진 않다. 내 부모의 인생이 나로 인해 조금은 평온했으면, 조금은 쉽게 지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