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 앵커인지라 어딜 가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하루하루 많은 뉴스를 화면에서 전하는 앵커가 원고 한 번 잘 쳐다보지 않는 모습이 신기한가 봅니다. 보통 그날 뉴스 꼭지 하나하나를 대부분 숙지하고 앵커석에 앉습니다. 시간대와 꼭지 구성을 감안해 멘트를 매끄럽게 정리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오기에 카메라에 설치된 프롬프터만 참고하더라도 자연스레 말하듯 뉴스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프롬프터를 기계처럼 읽어선 곤란합니다. 기사에 적힌 단어 뜻과 뉘앙스, 기사의 행간과 맥락까지 오롯이 시청자에게 전하려면 멘트를 읽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지요. 하지만 기계처럼 그냥 기사를 읽다가는 '로봇 같다'는 지적을 받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앵커는 누구보다 기사 내용과 그 이면까지 숙지해 '말'을 해야 합니다. '읽는 소리'만 내서는 시청자가 호응하기 어렵습니다.
앵커 운신의 폭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오랜 친구가 묻더군요. "앵커로서 너의 주관을 뉴스에 얼마나 실을 수 있니?" 미국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이 친구는 CNN을 봅니다. 앤더슨 쿠퍼 같은 유명 앵커들이 방송하는 걸 보면 정말 '자기 얘기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한국 앵커보다는 어딘가 더 자연스럽고 '알고 얘기하는 느낌'이 든다는 설명입니다. "한국 앵커는 조금 더 딱딱하달까" 그러면서 한국 앵커들은 보도의 어느 수준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고 말했습니다.
앵커는 방송사 별로, 직급이나 출신 직업별로 역량과 운신의 폭이 천차만별입니다. 앵커는 '직무'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직업 교수나 기자, PD, 변호사, 평론가 모두가 방송 앵커 직무를 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저 같은 직업 아나운서가 여러 시간대 뉴스에서 앵커로 일하는 경우가 많죠. 참고로 앵커와 아나운서를 개념으로 혼동하는 분들이 많은데 '직무'와 '직업'을 구분하면 정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인사권자이자 경영 책임자인 대표이사도 앵커로 활약합니다. 그날의뉴스 순서를 구성하거나 클로징 멘트로 주관적인 논조를 드러내는 등 운신의 폭이 가장 크겠죠?
현업으로 일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바를 정리하면 아무래도 지상파 방송의 경우 운신의 폭이 크지 않습니다. 시청자가 많고 파급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모 지상파 뉴스에서는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마저도 앵커가 기자 출신이냐 아나운서 출신이냐에 따라 정도가 다릅니다. 뉴스는 보도국 관할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기자에게 조금 더 유연하게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편입니다. 보도채널을 지나 종편으로 갈수록 앵커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고 보시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CNN 앵커 앤더스 쿠퍼의 뉴스가 한국보다 뭔가 더 유연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뉴스 제작의 환경 자체가 한국과는 구조적으로 다릅니다. CNN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한 선배의 말에 따르면 가령 이런 식입니다. 1시간 뉴스인 경우 15분씩 총 4등분합니다. 15분마다 담당 PD가 바뀝니다. 각 PD와 함께 함께 일하는 편집기자, 작가 등이 따로 구성돼 있습니다. 총 4팀이 나오겠죠? 이들이 서로 시청률 경쟁을 벌입니다. 앤더슨 쿠퍼는 이들 모두와 교류하며 뉴스에 관여합니다. 그는 프리랜서 앵커입니다. 시청률이 잘 나와야 삽니다. 외모부터 뉴스의 미장센은 물론 그 날의 구성까지 최고의 품질로 제작해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CNN 논조 안에서 인터뷰하고 앵커멘트를 작성합니다. 각 팀별 취재기자가 따로 배정되고 앤더스 쿠퍼 전용 스튜디오에서 일합니다. 한국의 상황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뉴스
뉴스 앵커멘트를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단어 선택입니다. 어떤 단어를 고르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인식에 각기 다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차량 운전 사고가 났다는 사건사고 단신을 예로 들어볼까요? 운전자의 운전 미숙으로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때 기사에 '여성 운전자'라는 단어가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여성이어서 이 기사 내용의 핵심이 잘 드러난다면 모르겠지만, 단순히 운전 미숙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다면 굳이 '여성'이란 단어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누구든지 운전은 미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김 여사가 또 사고 쳤어?' 이런 식의 불필요한 젠더 편견을 유발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는 최대한 '한국'으로 바꿔 말합니다. 뉴스는 객관성을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국 전쟁 뉴스를 전할 때도 '영국은...'이라고 보도했다던 BBC의 사례를 학부 시절 공부한 탓이기도 합니다. 여론이 똘똘 뭉쳐야 할 경우도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앵커가 이를 공명정대하게 판단하긴 사실상 어렵습니다. 따라서 앵커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기사를 편집하기 전 보도국에서 데스킹 받고 넘어온 기사 원문을 보고 여기에 쓰인 핵심 단어들을 확인한 후 그 단어와 '같은 층위' 안에서 편집부 상황에 맞게 단어를 다듬습니다. 문장도 고쳐 씁니다. 물론 예외도 있지만 여기서 자세히 다루진 않겠습니다.
어려운 단어는 풀어줍니다. 보통 "초등학교 5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 말하라고 하는데요. 요즘 초등학생 5학년은 저보다 똑똑한 친구들도 많은 것 같아서 매번 괜스레 부끄러워지는 대목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어려운 단어, 앞뒤 맥락 설명이 없는 기사는 가급적 설명을 덧붙입니다. 어려운 단어는 같은 층위의 쉬운 단어로 바꿔 쓰고 피의 사실이나 뉴스가 된 사안의 배경 등을 한두 문장 더 추가해 압축적으로 짚어줍니다. 기사 처음에 직전 기사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연결멘트를 적는다거나 시제를 바르게 고치고 주술이 호응하도록 긴 문장을 잘라주는 것도 내내 같은 맥락입니다. 긴 문장을 자르면 말하기 편합니다. 제가 말하기 편해야 듣는 사람도 듣기 좋은 법이니까요.
미사여구나 수식어는 가급적 지양합니다. 팩트 중심, 단문 위주 멘트를 지향합니다. 사고 뉴스의 경우 '다행히'란 부사를 절대 쓰지 않으려 조심합니다. 설령 큰 사고에서 인명피해가 크지 않았다손 치더라도 어쨌거나 건물 붕괴, 차량 파손 등 누군가에겐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기에 이런 대목에서 주관적인 멘트로 누군가에게 상처주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그러다가도 일본에서 갑자기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다거나, 누가봐도 어이가 없는 사연에 대해서는 '느닷없이', '뜬금없이', '황당하게도' 등의 부사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출연자와 대담할 때는 정말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이건 뭐에요?" "저건 왜 그래요?" 이 수준으로 원고의 질문을 환원시키고자 애씁니다. 그래야 질문의 흐름을 잡을 수 있고 완급 조절도 가능합니다. 대담의 경우 뉴스 팀원 모두가 참여하는 아이템 회의를 거친 후 전체 구성을 잡습니다. 그럼 작가가 각 질문 초안을 만듭니다. 데스크의 컨펌 작업, 즉 데스킹이 그 다음 이뤄집니다. 저는 데스킹 받고 넘어온 대담 기사를 검토하며 주요 내용을 취사선택해 나의 언어로 수정합니다. 그래야 시청자에게 오롯이 전달이 되기 때문입니다. 매끄러운 대담 진행을 위해 내용 그래픽 도안을 직접 만들어 제작을 의뢰하거나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녹취의 주요 부분을 발췌해 편집을 의뢰합니다.
보는 눈을 기르는 노력
저는 현업 아나운서가 된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경향, 한국일보를 주로 봤습니다. 내용은 1면과 정치면, 사설과 칼럼을 중점적으로 읽었고 주로 제목과 기사 배치를 유심히 봤습니다. 뉴스 밸류, 그러니까 뉴스의 경중을 따질 때, 그걸 꿰는 눈을 기를 때 이 작업이 상당히 유용합니다. 그리고 뉴스 전후로 최대한 시간을 내 뉴스 현장에 가봅니다. 상도초등학교 옆 유치원이 무너지면 현장에 가보고 '비탈길 경사가 심하구나', '지반이 저쪽부터 무너졌구나' 눈으로 확인합니다. 태풍으로 심하게 파손된 해안가 상가를 돌며 상인들에게 가장 시급한 지원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첫 직장 때부터 지금까지 이를 틈틈이 실천 중입니다.
앵커를 비롯한 취재 및 촬영기자, 기술팀, 영상•그래픽, 나아가 보도국 전체는 저널리즘 작업이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원이 수긍 가능한 일련의 보도 방향을 설정합니다. 국장급 보도 회의에서 공유된 그 '방향'은 각 부장을 통해 '언어'로 구체화되고 팀원들에게 전달됩니다. 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인 모임에서는 각 언론사의 이러한 방향 설정이 올바른 곳을 향하고있는지 돌아보고 따져봅니다. 여성 문제를 보도하면서 젠더감수성이 떨어지는 측면은 없었는지 톺아봅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꼬집을 때 각 이해관계의 입장은 잘 반영됐는지, 경제 문제를 너무 어렵게 풀고 있진 않은지, 자살 보도 기준은 철저히 지켜지고 있는지 점검합니다.
뭘 하든 '기레기' 소리 듣는 요즘이지만 더 나은 저널리즘을 궁리하는 언론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 만큼은 많은 분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더군요.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뒤에는 어지간한 언론사들 대부분 피해자를 배려하고 진실을 가리지 않으면서 질타를 겸허하게 수용하려는 방향으로 변모 중입니다.
이 모든 뉴스를 최전선에서 보도해야 하는 앵커는 누구보다 균형감과 팩트에 대한 이해, 감수성을 갖춰야 합니다. 결국, 최종 전달자는 앵커입니다. 뉴스 한 꼭지부터 보도국과 회사 전체를 감안해 뉴스를 할 수 있을 때까지 눈을 키우고 언어를 벼려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의견을 마구 얘기하는 앵커가 멋진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소식을 팩트 취재와 맥락 분석을 통해 시청각적으로 전달하는 작업은 복잡 다단합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