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병진 Oct 07. 2019

속보 처리 3단계

앵커가 실제 속보 상황에서 사용하는 3가지 절단하기, 살붙이기, 침착하기

보도전문채널에 근무하다 보니 속보 전할 일이 많습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특보가 14시간 이어지면서 돌발 속보 상황이 자주 나왔는데요.


여기서 잠깐 특보와 속보를 구분해드리자면 특보는 평시와 다르게 특별히 잡힌 특별 편성입니다. 지진이 발생하거나 태풍이 북상하면 관련 소식을 중점적으로 편성해 보도하는 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때는 '국정농단 청문회' 특보가 수십일 이어지기도 했죠.

반면 속보는 특보처럼 편성 단위의 개념이 아니라 뉴스 프로그램 진행 중에 수시로 발생하는 특별 소식입니다. 혹은 긴급 소식이랄까요. 리포트가 나가는 중간에도 뉴스 밸류가 높은 속보일 경우 그냥 화면 하단에 속보 자막을 집어 넣습니다. 화재나 대형 교통 사고 등 인명 피해 우려가 있는 소식은 밸류가 높습니다. 거물급 정치 혹은 경제 사범의 이슈가 업데이트 되면 속보로 나갑니다. 영향력 큰 인물의 부고 소식도 늘상 대비해야 하는 주요 속보입니다.


속보가 들어오면 일단 보도정보시스템에 먼저 뜹니다. 이때 빨리 속보를 인지하고 머릿속에 어떤 구성으로 뉴스를 전할지 틀거리를 떠올립니다. 여기에 속보 멘트로 활용할 살을 덧붙여야 하는데요. 먼저 해당 속보와 관련한 지식과 정보를 머릿속 기억에서 끄집어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양도 부족할 뿐더러 기억에 의존하다보면 팩트에 어긋난 멘트를 방송에서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앵커는 순발력 있게 자사 기사를 컴퓨터로 거나 포털 검색을 해 '덧붙일 살'이 되는 정보를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단신을 읽고 있는 중에 속보가 들어오거나 오프닝 들어가기 10초 전에 속보가 올라오면(자주 있습니다) 미처 검색할 시간도 없죠. 이럴 땐 긴급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잘게 잘게 자른다


미처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방비 상태에서 속보를 맞이(?)할 경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르기'입니다. 속보가 들어오면 불완전한 1개 이상의 문장이 앵커에게 주어집니다. 흔히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화면 하단에 나타나는 '자막'이 그것입니다. 그 자막 한 개만 덩그러니 주어지는 속보 상황이 적지 않습니다.


이때는 해당 문장을 의미 단위로 자릅니다. 잘라서 각각 짧은 문장으로 만듭니다. 가령 "강원도 고성 큰 산불"이라는 속보 자막이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죠. 정보가 정말 없습니다. 긴급하게 이 소식을 처리해야 하는 앵커는 최초 속보 1보를 이런 식으로 처리합니다.


강원도 고성 큰 산불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강원도에서 발생한 소식입니다. 고성 지역에서 전해졌는데요. 산불이 났다는 소식입니다. 산불의 규모가 꽤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전해드립니다.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는 소식인데요. 규모가 작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실화 혹은 방화부터 누전까지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을텐데요. 현장에서 화재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 중인지, 소방대원 등 관계 당국의 조치 상황은 어떠한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인명 피해 현황도 지금 상황으로서는 알 수 없는데요. 추가 소식이 들어오는대로 다시 한 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강원도 고성 큰 산불'이라는 몇 글자만으로도 지금 당장 이 정도는 멘트로 처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앵커가 시간을 끌어주면 사무실의 데스크와 부조정실의 진행 PD가 그 벌충된 시간에 뭔가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보 화면을 끌어온다거나 보도국 기자 전화 연결 꼭지를 잡습니다. 혹은 추가적으로 보도국에서 확인된 정보를 앵커에게 넣어주기도 합니다.


만약 저 산불 뉴스에서 시간을 더 끌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최근 발생한 대형 산불 정보 등을 덧붙이면 조금 더 짜임새 있는 속보가 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발생한 속보 상황에서 팩트에 기반한 정보를 더해주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이럴 땐 앵커가 잠깐 쉴 수 있는 녹취 재생 시간이나 전화 연결 중 인터뷰이가 답변하는 동안 스튜디오 앵커석에 설치된 컴퓨터를 이용해 정보를 찾아 더해놓습니다. 물론 그럴 여지가 없는 경우도 태반입니다.


레퍼토리 구비하기


속보에 필요한 추가 소스가 부족한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당장 현장에서 수집된 팩트에 기반하지 않고도 충분히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레퍼토리를 구비해두는 겁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취재진이 후속으로 '뭘 취재해야 할지', 당국이 '뭘 알아봐야 할지'를 짚어주는 멘트입니다.


"화재 원인과 관련한 조사도 중요하지만 당장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는 게 급선무인데요. 현재 소방 인력이 얼마나 출동한 상태인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에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지 현재로선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화재가 너무 클 경우 관할 소방서만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텐데요. 특히 야간이어서 관계 당국이 당장 소방헬기를 동원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당국의 대처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인명 피해 상황이 우려됩니다. 정부가 피해 현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을지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집계가 되는대로 정리가 되면 이 부분도 전해드리겠습니다"


이런 멘트는 비슷한 상황의 속보가 발생했을 소재만 바꾸면 전부 적용 가능합니다. 일종의 탬플릿이죠.


우리 회사 기자가 촬영했거나 풀(공유) 받은 화면 혹은 제보 그림이 들어온 뒤에는 조금 더 수월합니다. 해당 화면을 현재 발생한 상황과 연결해 짚어줍니다.

"지금 들어온 화면은 현장 근처에 계신 시민께서 제보해주신 영상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불타버린 커다란 나무가 도로 위로 쓰러집니다. 사실상 불바다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 같은 장면입니다. 다음 화면입니다. 다리가 보입니다. 뒤편에 야산이 있습니다. 커다란 화염에 휩싸였는데요. 불씨가 다리로 날아오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교량에 불이 옮겨 붙었습니다"


화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주는 게 핵심입니다. 일일이 다 말해주기 보다는 그 화면에서 주목해야 할 특정 지점을 짚어줍니다. 시청자들이 앵커의 안내에 따라 화면을 소화할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속보 내지 특보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중요한 기술입니다.

제보를 유도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제보전화 00-000-0000로 상황을 증언해주실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 아이디 ABC를 검색하셔서 친구 추가하신 뒤 찍으신 영상을 제보해주시면 보도에 적극 활용하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풀면서도 꼭 명심해야 할 점은 바로 '안전'입니다.


"제보 화면을 촬영하기 위해 무리하시면 곤란합니다. 절대 위험한 곳으로 진입하셔선 안 된다는 점 당부드립니다"


덧붙여 시청자 전화 연결로 넘어갈 경우에도 최우선은 전화를 건 시민의 안전입니다. 첫 질문에 '선생님 계신 곳은 안전한지요?'라고 물으며 방송을 보는 모든 사람의 긴장을 완화해주는 이유입니다.


미리 준비한 살을 속보에 붙인다


이밖에 '예고된 속보'는 보통 '절대대기' 제목이 붙은 기사로 보도정보시스템에 미리 올라와 있습니다. 이를 언제든 곧바로 활용하도록 평소 본인의 노트북이나 스튜디오 컴퓨터에 멘트 형태로 따로 저장해둡니다. 유력 인사의 임박한 부고 소식이나, 주요 동향, 구속영장 발부 여부, 최근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구제역, 조류독감 등의 확진 내지 음성 판정도 멘트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소재입니다. 속보가 생방송 중 터지면 준비된 멘트에 팩트만 갈아 끼워 사용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호흡법


속보 멘트를 쳐야 할 상황에 닥치면 아무리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떨리기 마련입니다. '올 게 왔구나' 마음 먹은 뒤 차분하게 들어온 정보를 확인합니다. 그 뒤로는 '톤' 관리에 신경쓰는 게 또다른 방송 팁입니다.


아나운싱 톤은 낮게 잡습니다. 사람이 당황스럽고 긴장되는 상황에 직면하면 아무래도 목소리 톤이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속도도 빨라집니다.


이럴 때는 숨을 평소보다 조금 더 깊게 마십니다. 호흡을 축 놓아버리지 않은 채 최대한 천천히 말합니다. 명사나 대명사, 수사 같은 체언은 가장 명료한 발음으로 천천히 짚어줍니다. 조사나 어미보다 중요한 건 정보가 담긴 체언입니다. 천천히 자막을 확인하며 체언 속 팩트를 인지함과 동시에 멘트합니다.


속보 처리는 보도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순간 만큼 앵커가 자신의 역량을 잘 보여줄 기회도 없습니다. 동시에 막중한 책임이 뒤따릅니다. 팩트를 틀리게 말하면 회사 신뢰도가 추락하기 때문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멘트, 단정적인 멘트 모두 지양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부조의 PD나 사무실의 데스크와 전방위로 교감하며 전화 연결이나 화면 설명을 능란하게 해줍니다. 속보를 '앵커 쇼 타임'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겠죠?


이전 14화 뉴스 앵커는 기사를 다 외울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