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류하고 정리하길 좋아한다. 천성이 그렇다기 보단 그래야 이해가 잘되기 때문에 후천적으로 그런 습성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자연스레 뉴스 채널 앵커로 일하면서 뉴스 전문 앵커의 직무를 정리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여러 직무가 있겠지만 뉴스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편집
아나운싱
편집: 뉴스 구성
'방송은 협업이다'라는 말은 업계 금과옥조다. 앵커는 주로 편집부장, CP, 진행PD 그리고 작가 등과 편집 협업을 한다. 기본적으로는 그날 뉴스 순서를 CP나 부장, 진행PD가 짠다. 이들이 전체 얼개를 그린다. 가장 큰 틀과 기조는 부장이 컨트롤 한다. 부장은 이미 보도국장, 편집부 국장 등이 참여하는 편집 회의에 다녀온 상태다. 이를 바탕으로 부장은 CP, 진행PD들이 애먼 방향으로 뉴스를 구성하지 않도록 회사 논조나 방침에 견주어 감독하고 관할한다.
앵커가 CP급이거나 어느 정도 연조가 있으면 이 구성 작업에 상당 수준 참여할 수 있다. 그 이하 연차 앵커라면 PD와 데스크가 배열 및 정리한 뉴스 구성을 확인하고 숙지하는 일을 주로 한다. 앵커는 뉴스 편집프로그램을 실행해 기사 한 꼭지씩 열고 닫으며 멘트를 수정한다. 기사 속 반복되는 문구는 지운다. 블록별로 기사를 묶어주며 맥락을 풀어주는 멘트를 더한다.
뉴스 프로그램은 특별 코너가 있는 뉴스와 없는 뉴스로 나뉜다. 리포트와 단신 위주로 구성된 뉴스가 후자이고 대담이나 인터뷰, 앵커리포트 등이 포함된 뉴스 프로그램이 전자다. 대담이 포함된 뉴스의 경우 작가, 앵커, CP, 진행PD가 참여하는 회의를 따로 갖는다. 각자 발제를 하고 아이템을 확정한다. 확정된 아이템은 구체화시켜 확장한다. 이 과정에 앵커도 적극 개입한다. 결국 앵커가 진행을 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이슈가 머리에 박히고 손에 잡히는 수준까지 주제를 벼르고 대담의 각을 잡는다.
앵커는 대담에 필요한 영상 구성을 함께 짜기도 한다. 특히 영상에 꼭 들어가야 할 문구 등은 CP급 이상을 포함해 앵커의 의견도 반영할 때가 있다. 대담 중 주제를 전환하거나 앞뒤 연결멘트를 덧붙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뉴스 대담 중 보조 자료로 활용되는 화면 그래픽을 제작·의뢰하기도 한다. 보통 뉴스용 그래픽은 PD나 작가가 그래픽팀에 제작 의뢰한다. 여기에 앵커도 대담에 필요하다 싶은 시각 자료를 그래픽으로 의뢰할 수 있다.
편집부 식구들과의 회식
아나운싱: 게이트키핑, 단어 고르기
단신 뉴스는 앞뒤 뉴스 꼭지와 겹치는 정보를 제거하고 시제를 확인하며 팩트 및 오탈자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점검한다. 이를 맥락을 잘 살려 음성언어로 전한다. 나 같은 경우 단신에서 긴 문장은 자르고, 시청자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개념이 생소할 여지가 있으면 설명 문장을 더한다. 오늘 했던 뉴스 중엔 'MCU' 즉,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즉 마블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의 세계관"이라고 수식 어구를 덧붙였다.
리포트는 기자가 현장에서 취재한 일종의 보고서다. 취재원의 모습과 음성, 제보자나 범인 등 인물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개념을 풀어주는 그래픽이나 사건 사고의 생생한 화면을 담은 CCTV가 실리기도 한다. 이 리포트 본문 내용을 빠르게 파악해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법한 부분'을 골라 앵커멘트에 녹인다. 기자가 리포트를 완성할 무렵 각 부서 부장의 컨펌을 받은 앵커멘트이나 편집부로 기사가 올라온 이상 제작진과 앵커가 최종 판단해 앵커멘트를 다듬는다. 물론 보도국에서 '이것 만은 멘트에 꼭 반영', '이 부분은 수정 금지' 등 단서를 달 경우 이는 꼭 지킨다. 회사의 방침이기 때문이다.
대담은 앵커마다 준비 스타일이 다르다. 나는 핵심 개념과 주제를 파악한 후 30~40% 정도만 정리해 스튜디오에 들어간다. 나머지 60~70%는 대담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직접 채운다. 반면 나와 달리 대본을 완전히 숙지하고 모든 정보를 정리해서 방송에 임하는 앵커도 있다. 방송 끝난 후 사무실에 앉아 사후 분석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하는 앵커다. 저마다의 스타일 차이라고 본다. 다만, 어떤 스타일이든 공히 중요한 건, 대담자의 이야기를 정확히 듣고, 이를 바탕으로 추가질문이나 다음 주제로 전환하는 질문을 매끄럽게 던져야 한다는 점이다.
속보의 경우 그날 예측 가능한 속보와 그렇지 않은 속보로 나눌 수 있다. 대기업 임원이나 정치인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 등은 이미 '노출된 속보'다. 그간의 혐의와 논란의 쟁점이 자사 기사를 통해 일목요연히 정리돼 있을 것이다. 오늘 내 뉴스 시간에 영장 발부나 기각 속보가 들어오느냐 마느냐만 염두에 두고 미리 속보용 멘트를 챙겨놓는다. 하지만 사건 사고나 갑작스런 천재지변의 경우 즉흥 대응해야 한다. 제한된 정보 안에서 그간 팔로우업한 정보를 덧대고 풀어주면서 시간을 충분히 끌어주는 게 첫 번째 임무다.
특히 이 때 '단언'은 금지다.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고 보도국에서 올라온 정보마저 틀려서 정정해 나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인명 피해 현황의 경우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누군가의 부고 속보의 경우 더욱 신중하게 팩트를 '펴 바르며' 뉴스를 전달한다. 반드시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누차 강조해야 이후 수정된 정보가 올라왔을 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 중계나 총선 및 대선, 대규모 시위 등의 현장 중계에도 앵커가 투입된다. 현장을 돌며 분위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찾아 기록한다. 메인 스튜디오에서 현장 스튜디오로 연결할 때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 '현장 분위기', '현장 상황', '업데이트된 팩트'이다. 팩트 부분은 기자가 전적으로 관리하고, 현장의 분위기를 종합하는 '라운드업' 멘트는 앵커도 어느 정도 취재를 해서 만들어놓아야 한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 앵커멘트를 데스킹 볼 시간도 없으므로 앵커는 회사의 입장과 기자의 팩트에 근거해 안전한 범위 안에서 명쾌한 현장 그림을 그려줘야 한다.
이밖에 프레젠테이션 하듯 발표하는 앵커브리핑 혹은 앵커리포트 코너가 있다. 아나운서 출신이든 기자 출신이든 언론사에 들어와 앵커를 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앵커리포트 꼭지를 가장 무난하게 처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픽과 멘트가 딱딱 맞아야 하기 때문에 사전 준비만 꼼꼼하게 해놓으면 될 일이다.
아나운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단어 선택이다. 어떤 단어를 고르느냐에 따라 '프레임'이 확 바뀌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선입견을 줄 법한 단어는 삭제한다. 너무 어려운 단어는 같은 층위 안에서 쉬운 걸로 바꾼다. 사안이 엄중하면 기사에 실린 단어보다 조금 더 강한 어감의 단어를 사용하거나 뉘앙스를 살려준다. 아나운싱에서의 단어 선택에 관한 고찰은 다른 글을 통해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볼 필요가 있겠다. 앵커의 최종 게이트키핑 저널리즘이 대부분 이 작업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