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상 독일에 와보니 믿고 맡겼던 에이전시가 일을 엉뚱하게 처리하는 바람에 아빠 엄마가 발등에 불 떨어진 듯 백방으로 알아봤었거든. 너도 어렴풋하게 기억할 거야 아마.
너랑 같이 청소년 관할청(Jugendamt) 찾아갔던 날, 그때 아빤 너무 긴장됐어. 행여 아빠가 독일어를 제대로 못해 결이가 엉뚱한 학교로 배정받으면 어떡하나 두려웠거든.
다행이 관청 직원은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네게 독일어 적응반이 딸린 학교를 추천해줬고 현장에서 바로 등록했어. 그러곤 다음 날이었나? 언덕 위 높은 지대에 자리한 너의 첫 학교를 찾아가 담임 선생님과 인사 나누고 본격적인 '독일 초딩' 생활을 시작했지.
이듬해 정식 1학년 입학식 날.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슐튜테(Schultüte)를 안고.
한국에서 1학년 다닐 땐 아빠가 늘 차로 데려다 줬었는데. 그때는 차나 자전거도 없고 그저 걸어가야 했던 터라 엄마 아빠가 널 아침에 늘 학교로 데려다줬어. 네가 언덕 올라갈 때 다리 아프다고 하면 아빠가 너무 미안하고 안쓰러웠던 거 있지.
아빠, 나 혼자 학교 가볼래
학교와 가까운 집으로 이사한 뒤 어느 날. 자신감이 생겼던 걸까? 그날은 네가 집에서 학교까지 혼자 가보고 싶다는 거야.
가뜩이나 팬데믹이 막 터진 초반, 안전 때문에 아빠의 온 신경이 곤두 서 있을 때라서 잠깐 멈칫 했는데, 이내 "그러자"고 했어. 멀찌감치 떨어져서 몰래 지켜보면 되니까. (웃음)
그때는 아빠가 독일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였잖아. 그래서 어학 시험이랑 대학원 입학 준비하면서 틈틈이 일도 하고 그랬지. 무엇보다 독일에서 이사하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이사도 끝난지 얼마 안 됐을 때였어. 그러다 보니 아빠가 너무 바빠 너희들에게 아무 것도 제대로 해주는 게 없는 것 같아 너무 죄스러웠던 거 있지.
하지만 그날 아빠는 성경 말씀을 읽다가 문득 '내 생각이 교만했다'고 느꼈어. 결이가 궁극적으로 기대야 할 존재는 아빠가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니까.그리고 결인 이제 마냥 아기가 아니니까.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해. 아침을 혼자 차려 먹거나 숙제를 잘 마치는 것. 다음 날 학교에서 필요한 건 전날 미리 챙기는 일. 용돈을 모아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사고 보드게임을 모으는 그 모든 결정들이 너라는 사람을 차츰 빚어갈거야.
살면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아빠 엄마가 널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거든 그날 네가 처음으로 뭔가를 혼자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던 용기를 기억해. 그 용기가 널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인도해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