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넘기 처음 배운 날

by 정병진
요 오붓한 마당에서 결이가 처음으로 줄넘기를 배웠지.


우리 한옥 살 때, 마당에서 처음으로 네게 줄넘기를 가르쳐 줬어. 기억나니?


처음에는 너 혼자 줄을 넘는 방법을 알려줬단다. 쉽지 않더구나. (웃음) 나무 기둥에 줄을 묶어 '꼬마야 꼬마야' 불러주며 크게 돌려주기도 했어. 넌 까르르 웃으며 연신 폴짝폴짝 뛰었지. 하지만 몸과 줄은 따로 놀았고 급할 때 발목 잡는 신호등마냥 줄은 네 발에 걸리고 또 걸려버렸어.


아빠가 슬슬 지쳐갈 무렵, 연휴에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를 대신해 부산서 올라오신 할아버지가 팔을 걷어 붙이셨단다.


할아버지가 아빠랑 꼬마야 꼬마야 돌려줄테니까네 잘 뛰바라



'과연? 설마?' 아빤 내심 '그냥 적당히 딸래미 기분만 맞춰주지 뭐' 생각한 게 사실이야. 어차피 줄을 넘는 선수인 네가 아직 경험이 적고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줄을 잘 넘을 수 있겠니.


그런데 그건 아빠의 착각이었어.


할아버지는 '선수'를 바꾸려하기 보단 '줄 돌리는 방법'을 바꾸셨단다. 네가 줄을 크게 돌려줘도 '포올짝~ 포올짝~' 뛰지 않고 '폴짝폴짝폴짝' 잰 속도로 점프하는 바람에 자꾸 줄이 걸리던 차였거든.


할아버지는 아빠와 함께 줄 자체를 빨리 돌리셨어. 네가 폴짝폴짝 뛰는 박자에 맞춰 줄을 돌렸던 거야. 아빤 너에게 아빠가 줄 돌리는 속도에 맞추라고 주문했었는데. 할아버지는 7살 소녀의 박자에 맞게 어른들이 변해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어.


이날 너의 줄넘기 최고 기록은 11개.


성취감이 상당했는지 너는 줄넘기 기록에 대한 커다란 자부심을 연이틀 엄마에게 조잘조잘 뽐냈단다. '엄마가 꼭 봤어야 했는데!' 네 얼굴엔 작은 성공을 맛본 사람 특유의 반짝임이 또렷하게 나타났어.




보통 어떤 일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진단이 내려지곤 해. 너의 줄넘기는 구조를 바꾼 격이었어. 줄넘기를 하는 사람만 마음 속으로 저평가한 아빠의 시야가 좁았던 거야.


결이도 살다가 어떤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만 찾으면 반쪽짜리 해답만 얻을지도 몰라. 아빠는 네가 더 넓은 시야로 구조엔 문제가 없는지 잘 살펴보길 바라. 현상을 둘러싼 전체를 보지 못 하면 왜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파악하기 어렵거든.


그날 너 줄넘기 배울 때, '할아버지와 아빠의 합동 작전'을 10살 넘어서도 꼭 기억해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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