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이 고운 기적

by 정병진

기적은 마법처럼 신비한 현상만 가리키는 게 아니야. 우리 봄이 수술비 마련했을 때, 아빠는 그게 바로 기적이라고 생각했어.


수술, 하시겠습니까?



봄이 아파서 응급실 갔던 날, 아빠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했어. 봄이 수술을 할지 말지를 말야. 사경을 헤매던 봄이는 수술을 받더라도 회복한다는 보장이 없었단다. 치료비는 엄청 나온다고 하더라고. 아빠는 몰랐는데, 고양이 수술비, 무균실 입원비용, 치료제 비용 등이 너무 비싸더라. 솔직히 돈 때문에 고민했어. 아빠는 너도 알다시피 그다지 애완동물을 좋아하진 않았거든.


그래도 봄이 고 녀석이 다 죽어가는 마당에 건사료 몇 덩이 더 먹어 삼키며 살겠다고 애쓰는데, '생명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그 작은 생명이 살아보겠다고 애를 쓰는데, 아빠가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어. 봄이는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기사회생했지.


수술 잘 받고 퇴원한 봄. 오른쪽 앞발의 근육을 다 갉아먹은 구더기를 다 빼내고 매일 3번 드레싱을 갈아줬던 우리.


목숨을 건진 봄이를 네가 꼬옥 껴안고 좋아하는 모습에 아빠는 행복했어. 하지만 청구서는 엄연한 현실이었지. 100만 원이 훌쩍 넘는 돈이 하루 사이에 결제됐고, 치료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어.


이런 경우 어른들은 따로 모아둔 예비비라는 걸 사용하거든? 그런데 봄이 치료비는 그 달 예비비 한도를 훨씬 초과한 액수였지 뭐야.



그런데 문득 '오병이어의 기적'이 떠올랐어.


결이도 알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 명 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 이야기. 작은 정성이 모이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잖아. 그래서 우리도 한 번 해보기로 마음 먹었어. 사람들에게 후원을 요청하기로.


엄마 아빠가 봄이를 엉겁결에 임시보호하게 되면서 너무 경황이 없었고, 고양이가 큰 수술을 받게 돼 큰 비용을 지불하게 돼 곤란을 겪고 있는 이 상황을 솔직하게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거야. 그냥 후원금만 요청하는 게 아니라 가치 있는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이었지. 엄마가 더치커피와 흑당밀크티를 팔아보자는 아이디어를 냈어.


그렇게 우리집은 임시 커피공장으로 변신!


엄마가 흑당밀크티 재료를 사오고 아빠와 승현 삼촌이 더치커피를 만들었지. 승현 삼촌 기억나지? 아빠 대학교 후배. 더치커피는 커피 내리는 데 시간이 엄청 오래 걸리더라.



화룡점정은 결이가 직접 그린 봄이 얼굴 스티커였지. 봄이의 귀여움과 너의 사랑이 담뿍 묻어나는 깜찍한 캐릭터를 네가 그렸고, 우리 이야기를 들으신 엄마 친한 사장님께서 스티커로 무료 제작해주셨어. 결이가 직접 그린 캐릭터로 상표 비슷한 걸 만들었던 거야. 아빠도 너무 신기했고 결이도 세상 뿌듯해 했지.


예전에 네가 좋아했던 만화 '구름빵' 캐릭터랑 그림체가 비슷해. 너만의 감성이 느껴져서 좋았던 그림.


그렇게 엄마 아빤 소셜미디어에 봄이 이야기를 알렸어. 그랬더니 전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정성이 쏟아졌단다. 1만 원부터 이름도 없이 10만 원을 덜컥 송금하신 분들도 많았지.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고양이 함부로 거두는 것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 이렇게 병원비가 엄청 비싸서 오히려 고양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는 염려에서 비롯된 거야.


고양이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 엄마 아빠의 당황스러움을 헤아리시고, 무엇보다 결이의 마음에 감동하셔서 아낌없이 소중한 정성을 십시일반 보태셨단다. 보리떡 5덩이와 물고기 2마리처럼.





기적은 이적만 가리키는 게 아니야. 기적은 멀리 있지 않단다. 사람과 사람의 진심이 순적하게 통하는 것. 그게 기적이란다.


아빤 이걸 '결이 고운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어. 사람들의 고운 진심이 서로 비슷한 결을 가질 때, 기적은 다가오니까. 우리 결이도 그 기적에 늘 가까이 있길, 아빠는 소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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