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1등은 필요 없단다

by 정병진

넌 의외로 독일어 단어 시험을 잘 치더라. 완벽하진 않아도 말이지. '빵점 맞고 징징 울면 어떡하지' 걱정했던 엄마 아빠로선 어찌나 안심되고 감사했는지 몰라.


네가 주간 어휘 시험에서 한 문제만 틀렸던 날, 그래서 아빠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널 칭찬했어.



Prima! (최고야!)


독일어 선생님도 최고의 칭찬을 남겨주셨네. 아빤 네 글씨가 단정해서 더 좋았어. 제법 어려운 문장에서 부사구, 관사를 정확히 썼고 명사는 첫 철자를 대문자로 쓰는 Rechtschreibung도 잘 지켰구나.

요즘 수학은 곱셈을 배운다며? '한국인의 필살기' 구구단을 잘 외워서 적극 활용하길 바란다. (웃음)




학교 계속 다니다 보면 결이보다 공부를 훨씬 잘하는 친구들도 있을거야. 그 아이들 문제 푸는 수준에 비하면 독일어 단어 시험은 아무것도 아닐 터. 한국에서 3학년인 너의 유치원 친구들은 벌써 방정식 공부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엄마 아빠에게 네가 공부 잘하는 건 그리 크게 중요한 건 아냐. 엄마 아빠에게 중요한 건 결이가 자주 행복한 거야.

-결아 학교 가는 거 좋아?
"응, 너무 신나!"


-왜?
"학교가면 놀고 장난치고 선생님 몰래 다같이 라디오 틀고 춤추다가 걸리는 것도 재밌고 GBS(방과후학교)에서는 내가 유행어도 만들었어. GBEssen!(GBS 밥 먹을 시간!) 학교 가는 게 너~무 좋아"

학년이 올라갈수록 너도 공부를 많이 하긴 해야 할 거야. 김나지움에 진학하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하려면 원어민으로 자란 친구들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쏟아야겠지.


하지만 네가 공부 때문에 불행한 기색을 보이면 아빤 주저 없이 말해줄거야.

-결아, 엄마 아빠는 결이, 설이가 반에서 1등하는 거 바라지 않아. 그 문제 다 틀려도 상관없어. 단, 최선만 다해.


특히 결과에 신경쓰지 말고 과정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으면 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답이 나온 거야? 정답은 중요하지 않아. 네가 어떻게 그 답을 쓰게 됐는지 그 과정 과정에서의 이유가 중요해.


무엇보다,

-실패해도 돼. 그래야 배워. 두려워 말고 해봐. 실패도 과정일 뿐이니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나아갈 때 결이가 친구들도 돌아보고 네 자신도 돌볼 수 있단다. 엄마 아빤 이 길이 우리에게 잘 맞는 것 같아. 그래서 독일까지 왔잖니?




"내가 엄마 아빠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모님으로 만나서 진짜 다행이야"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 아빠 마음이 너무 뿌듯하네. 아빠가 아빠로서 인정받는 느낌이야. 아빠도 네 덕분에 하루하루가 곰비임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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