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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Jan 28. 2024

아들1

85년생들의 부모

고등학생 나이의 엄마..를 AI로 만든 이미지.


우리 부모님은 중매 결혼 하셨습니다. 큰이모가 중신을 섰습니다. 아버지가 한전(한국전력) 다니는 성실한 청년이라며, 특히 "교회 댕긴다드라"는 이모의 말에 어머닌 마음 문을 여셨다고 술회합니다.


"이~ 막 의사도 나 좋다고, 왜 그 언니 있잖여, 소갈머리 절반 날라간(원형탈모) 양반이 나 틀구 쫓아댕기고 그렸어도 내가 (시집) 안 간 사람이여~"


어머니는 충남 당시 보령군 웅천면 소재 큰이모네가 운영하는 목욕탕에서 카운터를 보며 소일거릴 삼으셨어요. 웅천에서 61년도에 나고자란, 웅녀 같은 분입니다. 어머니의 할머니는 무당이셨고 돌아가시기 3년 전에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할머니의 180도 뒤집어진 인생을 보며 예수를 자연스레 믿기 시작하셨습니다.


저는 큰이모네 목욕탕 카운터의 뜨끈한 온돌 바닥에 앉아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엄마가 이모, 외숙모 등과 나누는 옛날 우리 가족 이야기 듣는 게 좋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저만의 세계관이 존재하고, 저는 그 안에 안전하게 살아 있다는 모종의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엄마 학창시절은 어땠디야? 학생 때도 교회 댕긴 겨?


어머니는 유독 당신의 청소년기 이야기를 안 해주셨어요. 그래서 엄마가 고졸이신지 보통학교만 졸업하셨는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더 캐묻지도 않았고요. 어머닌 그저 젊을 때 받은 큰 상처를 회상하곤 하셨습니다.


"늬 외할머니가잉 엄마 머리카락을 막 가위로 짜르고 그렸어. 엄마는 공부하지 말고 큰이모네 식당(이 식당이 불이나 폐업 후 목욕탕이 됨)에서 일하라고. 엄마가 뭐 배우고 싶다 그러면 '계집이 뭘 배우긴 배워 주렬년' 그러니께 뭐 암 껏도 모뎠지(못했지) 뭐. 주일에 교회 가서 예배 드리는 것빼께 모뎠어"


그 얘기를 들을 때면 어머니의 어린 시절이 안쓰러웠어요. 엄마가 뭔가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외할머니의 성화에 막혀 좌절했을 모습을 떠올리니 제가 다 억울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제가 뭔가 해보고 싶다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가르치셨습니다. 고등학생 때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겠노라고 연기 레슨을 받고 싶다 했을 때 어머니는 기꺼이 레슨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수학 과외가 필요하거나 재수를 위해 인터넷 강의 수강료를 내야 했을 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때, 고시원 방을 얻어야 할 때도 어머니는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 해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전재산을 주식 투기로 탕진하고, 심지어 저와 동생의 모든 보험, 적금, 본인의 퇴직금까지 다 끌어다가 날려버린 상황에서도 말이죠.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부모 때문에 할 수 없는 그 억하심정을 어머니는 누구보다 잘 아셨을 겁니다.


85년생 부모님들이 대체로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시절에 대학 나온 부모님들 찾아보기가 지방에선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살던 대천이 보령시로 승격하고 '머드 축제' 홍보에 힘입어 관광지로서 몸피를 키웠을 무렵에도 보령의 필부필부 어른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아니고서야 딱히 대학 나온 분들도 없었고, 굳이 나올 필요도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저축만 해도 이자가 6~7% 이상 붙던 시기에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장만할 수 있었던 분들, 가게 문 열고 늦게까지 장사하시느라 자식들과 이렇다 할 취미 생활 하나 변변하게 가져보지 못하셨던 부모님, 집안일은 엄마가 하고, 요리해주는 아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가부장적인 아버지, 비즈 목걸이나 팔지를 만들고 인형 눈을 붙이며 부업을 하던 어머니와 하나님 예배드리는 것 만큼이나 계모임을 살뜰히 챙기셨던 어머니라는 토대 위에서 85년생 아들 딸들은 그렇게 몸피를 키워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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