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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병진 Feb 04. 2024

아들2

동물의 왕국

국민학교 3학년 무렵, 나고자란 웅천읍에서 대천시로 전학 왔습니다. 대천시는 '대천해수욕장'으로 유명한 그 보령시의 옛 지명입니다. 3학년 2반에 전학 온 첫 날, 조한섭이라는 녀석이 다짜고짜 찾아와 기세 좋게 묻습니다.


"야, 니 싸움 잘하냐? 잘해?"


뭐라 말 해야 할지 몰라 어이 없다며 웃었습니다.


-니 짐 뭐래냐?(너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니?)


저도 덩치가 꽤 큰 편이었기에 턱을 들어올리고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 최대한 위협적인 눈빛으로 녀석을 내려다봤습니다. 키는 제가 조금 더 컸거든요.


'한 따까리 해야 할 수도 있겠는데' 싶어 끼고 있던 팔짱을 슬 풀었습니다. 주먹 쥔 손바닥이 슬슬 촉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육두문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던 찰나, 선생님이 들어오셨습니다. 다들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녀석들 패거리는 입으로는 궁시렁 궁시렁 대고 눈으로는 저를 꼬라, 아니 흘겨보며 자기들 반으로 갔습니다.


학교 생활 편하려면 무조건 선수를 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그 당시 전학생들의 국룰이었습니다. 저는 싸움을 잘하진 못 했지만, 누군가로부터 맞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 두려움을 악과 깡으로 바꿨습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녀석이 있는 반으로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시커먼 무리 속 조한섭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처음 시작하는 여성'이란 뜻의 육두문자를 읊조리며 녀석에게 다가갔습니다. 무리 속 하나였던 전서윤이란 친구가 제 어깨를 툭 밀쳤습니다.


"니 뭐여"

-뭐긴 뭐여


바로 머리카락을 틀어잡고 복도로 끌고 나갔습니다. 녀석의 멱살을 잡은 채 뒤로 넘어지면서 오른발로 녀석의 배를 밀어 차 뒤로 넘겨 버렸습니다. 액션 영화 같은 데서 본 장면을 흉내내면서 말이죠. 운동 신경은 있는 편이었습니다.


 '복도 대첩' 이후 학교 생활은 편해졌습니다. 누구도 제게 함부로 시비 걸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조한섭이라는 녀석이 원래 이 학교 짱이었는데 저와는 자웅을 겨뤄본 적이 없으니 '우리 학교 짱이 누구냐'는 논쟁을 불러오긴 했습니다. 저와 한섭이는 마치 핵억지력으로 힘의 균형을 이룬 미국과 중국처럼 으르렁은 대면서도 섣불리 서로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놀 때는 적당히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러다 재욱이란 녀석이 엄마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 장롱에서 발견한 '빨간 비디오'를 다같이 몰래 보면서 우리는 모두 궁합 좋은 의형제가 되었습니다. 빨간 테이프 제목이 '겉궁합 속궁합'이었습니다.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뀔 무렵이었습니다. 우리도 남자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바뀌어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4~5학년 애기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설쳤을까 싶습니다. 남자애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면 바로 주먹다짐으로 이어졌습니다.


"눈 깔어"


당시에는 그게 참 중요했습니다. 하루하루 긴장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다른 애들보다 더 세보여야 했고,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선 특히 뭔가 보여줘야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아이들을 주로 해질녘까지 축구를 했습니다. 축구에서 발군의 기량을 보여주면 그것 만큼 친구들 사이에 인정받는 방법도 없었습니다.


운동에 별 취미가 없는, 살짝 껄렁한 친구들은 4학년 때부터 속담배를 피워댔습니다. 아는 형들이 알바하는 노래방에 몰래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즐기는 애들도 있었지요. '바닷가에 사는 애들이 좀 더 까졌다'는 속설이 맞는 것인진 모르겠습니다. 수도권은 분위기가 달랐을까요?


중학교 형들은 늘 무서웠다 


충청남도 시골 저희 동네 85년생 남자 아이들은 국민학교, 초등학교 시절 골목 다니는 여간 무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돈 뜯길까봐 말이죠. 초등학생 아이들을 흠씬 두들겨 패고 돈을 뺐는, 담배 피우는 형들을 골목길에서 비근하게 만나곤 했습니다. "뒤져서 나오면 100원 당 한 대 씩"이라는 표현은 저도 실제 중학교 형들한테 돈 뜯길 때 들어본 말입니다.


골목길은 물론, '산길'에도 형들이 자주 똬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산길이라 하면,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시내 쪽으로 빠르게 질러가는 지름길을 가리킵니다. 야트막한 산에 난 길이었기에 산길이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 중학교 형들은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 담배를 피우거나 종종 싸움박질을 벌였습니다. 영화 '품행제로'에 등장하는 배우 류승범 씨 같은 형들이 실제로 어슬렁 어슬렁 산길을 배회했습니다.



우리동네 롤러장도 영화 '품행제로'에 나오던 롤러스케이트장 분위기와 비슷했다. 창문은 없었다. 출처: 품행제로



산 길을 지나 시내쪽으로 내려가기 전 커다란 마트가 있었고, 그 옆에는 롤러스케이트를 즐길 수 있는 롤러장이 자리했었습니다. 롤러장에 가면 주로 수고(수산고등학교) 형 누나들, 중학교 형 누나들이 많았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X 동생', 'X 오빠, 누나'를 만드는 만남의 장이었습니다.


롤러를 뒤로 탈 수 있게 되면 단체로 손에 손 잡고 롤러장 전체를 휩쓰는 대형에 합류할 수 있었는데요. 그때 서로 마음에 드는 이성끼리, 혹은 X 누나, X 동생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손을 잡곤 했습니다. 롤러장 BGM으로는 자자의 '버스 안에서', 에스더의 '뭐를 잘못한거니' 류의 선곡이 인기였습니다.



싸움 잘하는 형들 주위에는 늘 예쁜 누나들이 있었다. 출처: 쿠팡플레이 '소년시대'



그렇게 싸움 잘하는 고등학교 형들이나 잘 나가는 누나들과 친분을 쌓으면 중학교 형들이 쉽게 우리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너무 웃기죠?




최근 드라마 '소년시대'를 보다가 옛날 생각이 퍽 나는 바람에 적잖이 웃었습니다. 85년생 당시 충청도 대천 시골의 국민학교 학생이었던 제게도 어느 정도 교집합이 보이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는 89년도 농고(농업고등학교) 형들 이야기니 조금 더 옛날 스토리이긴 한데 말이죠.


드라마처럼 주먹 좀 깨나 쓴다는 형들 주위에는 언제나 잘나가는 예쁜 누나들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게 그 시골에서는 참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인양 학교에서 맨날 싸우고, 해질 때까지 축구했던, 골목길에서 얻어 터지거나 롤러장에서 콤파스(피니시 자세)를 그리며 남녀 서로 눈길을 주고받던 그 시절의 아들들이 어느덧 마흔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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