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즈플 Sep 29. 2023

홍삼 나라의 앨리스

늑대물린여자 21



세상에는 다양한 영양제들이 있다. 어떤 유명한 부자는 하루에 영양제를 60알을 먹는다고 하더라. 눈이 떨리는 데에는 마그네슘, 뼈가 튼튼해지는 칼슘, 뇌와 심장에 좋은 오메가 3와 눈이 건강해지는 루테인, 활력을 충전하는 비타민 C와 기력이 쌩쌩해지는 비타민 B ……. 

그중 면역력 하면 우리의 뇌리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한국인의 한방 영양제 중 으뜸인 ‘홍삼’이다.



루푸스를 처음 진단받은 날 주치의가 나에게 당부한 말이 있다.


“이상한 거 주워 먹지 마세요. 홍삼이나 이상한 즙같은 거.”


루푸스는 루푸스 신염이라는 말로 불릴 정도로 신장에 이상이 생기는 환자들이 많다. 그러나 간과 신장을 조심해야 하는 환자들이 자꾸만 민간요법에 의지해 이상한 걸 주워 먹고 온단다. 기실 나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진료실에 앉아있는 양반은 내가 하루아침에 불치병이라고 포기하는 느낌의 말을 하는데 나라도 뭐든 낫는 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그런 심정으로 입 안에 이것저것 집어넣어 보는 마음이렷다. 의사는 평생 안 낫는다고 하는데 이 음식을 꾸준히 먹으면 낫는단다. 나은 사람들의 간증도 있다.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자가면역질환은 면역세포가 과활성 되는 질환이다. 안 그래도 면역억제제를 먹는 입장인데 사람들은 루푸스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흔히 이런 조언을 한다.


“뭐, 면역? 홍삼 좀 먹어!”


주변을 돌아보면 암에 걸린 사람에게도,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도 홍삼을 먹으라고 말한다. 그냥 한국인의 건강에 관한 의례적인 말인 건가 싶기도 하다. 자가면역질환에 대해 설명하며 홍삼은 오히려 면역이 높아지는 거라 안된다고 전하면 다른 말을 한다.


“그럼 비타민을 챙겨 먹어. 건강하게 살아야지!”


좋은 홍삼업체, 좋은 비타민을 추천해 주고, 각자의 건강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들. 알게 된 민간요법만 기십가지가 넘는다. 각자 효능을 본 건강법을 알려주고자 한 의도가 나쁜 것이 아니다. 아픈 주위 사람이 건강해지길 원한 마음이 어떻게 비난받을만한 이야기일까. 나 또한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는 아프다는 사람에게 이런 것좀 챙겨 봐라, 저런 것좀 챙겨 봐라 이야기한 적이 있는걸.


그러나 말하는 사람은 한 번인 조언이 듣는 사람에게는 수십 번이다. 같은 설명을 하고 또 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오늘도 나는 내 소식을 전하고 홍삼에 대한 추천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이제는 길을 가다 보이는 길거리의 홍삼 광고지만 봐도 어이구 저놈의 홍삼! 하고 속으로 외치게 된다.

거대한 홍삼 마케팅의 격류 속에서, 마치 홍삼의 나라에 살고 있는 앨리스가 된 기분이다.


그래도 의사의 약을 우선해서 챙기겠다는 이야기로 순순히 화제가 넘어가면 괜찮다. 나도 상대방의 따뜻한 속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거절을 자신에 대한 거절과 동일시한다. 루푸스는 그런 질병이구나,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구나. 하도 넘어가면 되는데, 그들은 감히 내가 추천해 주는 조언을 거절하다니! 라며 기분상해한다. 


어떤 사람은 홍삼 말고 다른 건강식품들을 마구잡이로 추천하고는 자신이 추천한 것을 사서 먹고 있는지 두 달 넘게 계속 물어보았다. 아직 사지 않았다고 하니 그래서 병이 낫지 않는 거라며 타박을 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참다못해 “한번 사 주시면 먹어볼게요.”라고 하자, “허허 요즘 애들 버르장머리하고는?”하며 그제야 내게 건강식품 추천을 그만두더라. 물론 뒤에서 내 험담을 한다는 소문이 간간이 들리기는 했더라만.



나도 이제 지인들에게 선물을 할 때 건강식품은 조심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건강식품을 챙겨 먹고 있는지 모르는데 선뜻 한두 달짜리 비타민 등을 사주는 것은 그의 몸에 맞지 않는 선물을 사주게 될까 봐 염려스럽기 때문이다.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식품이 제일이지! 라며 항상 홍삼을 선물로 보냈는데 그것도 관두었다. 건강은 본인이 가장 잘 알 테니 자신의 건강에 맞는 식품과 약을 제일 잘 챙기리라 여기며 그들과 알고 지낸 시간 동안 찾아낸 상대의 취향과 잘 어울리는 선물을 고심해 본다.


그리고 아프다는 사람에게 손쉽게 홍삼을 먹으라고 하지 않는다. 무얼 먹어야 하는지는 방금 그 병에 대해 들은 나보다 의사에게 진단을 받은 저 사람이 더 잘 알 테니까. 

이전 20화 아파서 퇴사한게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