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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즈플 Sep 27. 2023

아파서 퇴사한게 부럽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늑대물린여자 22



퇴사 후 친구들을 만나러 처음 집 밖을 나섰을 때는 비가 오는 날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만들어 놓은 웅덩이를 집에서 나온 지 다섯 발자국만에 대차게 밟아버리는 불상사를 겪었다. 신발까지 옴팡 젖어 버리고 나니 되려 용기가 생겼다. 물이 튀어도 아랑곳 않고 그 누구보다 씩씩하게 앞을 향해 걸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결국 천식이 왔다. 동네 내과에서는 폐기능이 일반인의 40프로 정도라며 약과 흡입제를 처방해 주었다.

멀리 가는 것은 고사하고 음식을 먹을 때도 기침이 나왔다. 고맙게도 그런 나를 위해 집 주변에서 만나주기로 한 친구들이었다.  잊을만하면 근황이 바뀌고 연락이 유지되는 신기한 인연들.


20대 초반에는 애인을 소개할 때 혹은 헤어질 때, 입사 축하기념, 퇴사 축하기념으로 모였던 친구들은 이제 두 명이나 청첩장을 보내어 결혼을 한 모임이 되어있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면 그중 한 명은 꼭 무슨 일이 생기게 되는 게 모임인가 보다.

이번은 그게 나였다. 내 퇴사기념으로 모이게 된 친구들에게 몇 개월 만에 나는 조심스럽게, 혹은 덤덤하게 병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들 루푸스가 어떤 병인지는 몰랐지만 그 병과 코로나 후유증이 겹쳐 퇴사한다는 소식에 축하보다는 위로의 말이 오갔다.

힘들었겠다, 지금도 많이 아프냐, 몇 마디 주고받다가 음식이 나오자 식사로 주제가 바뀌었다.


식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근황도 들으니 절로 웃음이 났다. 다들 각자의 고충과 기쁨을 안고 살다가 이야기보따리를 소소하게 풀어놓으니 식탁 위의 먹거리보다 풍성한 이야기의 장이 펼쳐졌다. 와중에 한 명은 남자친구가 결혼을 전제로 부모님을 만나보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도 전해 우리 모두 박수를 치며 축하해 주었다.

한창을 이야기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와중, 한 친구가 지나가듯 말을 뱉기 전까지 나는 꽤 들뜬 기분이었다.


“그래도 부럽다. 퇴사도 하고. 나도 퇴사하고 싶은데.”


부럽지?라고 웃어줬어야 했을까? 역시 내가 예민했을까.

하지만 몇 달간 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이야기, 응급실에 갔었고 누워서 잠을 자지 못하며 코로나 이후 몸이 얼마나 안 좋아졌는지까지 모두 이야기한 상황에서 나올만한 문장은 아니었다.

식당 안에서 계속 콜록거리는 것이 신경 쓰여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황이었다. 잠시 할 말을 잃었다가 늦게나마 입을 열었다.


“…. 나는 계속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건데?”

“퇴사하고 싶은데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퇴사하고 싶을 때 주변 환경 생각 안 하고 바로 퇴사할 수 있는 것도 복이다 얘? 엄마 집에 얹혀살면 돈 하나도 안 들잖아.”


파스타를 입에 말아 넣으며 훈계한 친구가 자신은 부모님과 따로 살고 있기 때문에 혼자 생계를 책임지느라 퇴사하는 것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우리 집이 SH공사의 월셋집인 걸 아는 한 친구가 인상을 찌푸리며 나섰다. 


“아파서 퇴사하는 애한테 말이 좀 그렇다?”


복?

수련까지 해서 전문요원 자격증을 땄는데 일하지 못하고 퇴사하게 되어버린 것이 남에게는 복으로 비치는 걸까?

나는 결단코 말하건대 일을 관두고 싶지 않았다. 나는 올해 트라우마 학회의 중급재난교육을 새로 듣고 싶었고, 청소년 자살 예방과 관련한 심화 교육도 참석하려 했었다. 환자들과 지금 하고 있는 수예요법이 끝나면 새로운 요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었고, 하반기 신청자를 받아 회복관점을 위한 자기 관리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었다.

내 많은 계획들이 건강으로 인해 무너졌는데 퇴사한 것이 복이라니. 모두에게 표현하지 않은, 스스로에게조차 말한 적 없는 감정이 부글거리며 끓어올랐다. 피아노 건반을 마구잡이로 쾅쾅 내리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그 자리에서 나는 ‘괜찮다.’는 말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처했다. 기분이 나쁘기에 괜찮지는 않지만 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뜻을 표했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과의 자리를 망치고 싶지 않은 까닭이 첫 번째였고, 사람마다 사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 번째였다.

그녀에게 어떤 사정이 있을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가 내 사정을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하여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권리가 생기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사람으로 떨어지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위선이라 할 수도 있었고 바보 같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담 업무를 하면서 얻은 몇 안 되는 깨달음이란 사람마다 사정이 있다는 사실이기에 갈수록 입이 무거워졌다.

눈치가 빠른 몇몇 친구들이 내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싫어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데도 A는 계속 퇴사 문제로 이야기를 끌고 들어왔다.


“아, 그래도 난 네가 참 부럽다.”

“나도 위즈플이처럼 퇴사하고 딱 두 달만 쉬고 싶다~! 아니다 딱 한 달만!”

“너는 복 받은 줄 알아. 엄마가 아직 돈 벌고 계시고 너한테 손 안 벌리시는 게 얼마나 큰 복인줄 알아?”


결국 카페로 가는 길, 내가 A와 따로 떨어져 걸으며 “아까 했던 이야기는 불편해.”라고 화두를 던졌다. A는 중간에 내 말허리를 자르고 “아, 왜~ 부러워서 그러지.”라며 웃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앞으로 걸어 나갔다.

거기서 그만두었어야 하는데, 그녀는 오늘이 퇴사 기념 파티 아니었냐며 축하하는 날이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당연하다며 카페에서도 그 주제를 가지고 왔다. 자신의 회사 이야기에 대한 푸념 사이로 나를 섞었다. 평소 만날 때 눈치가 없는 애는 아니었다. 그녀는 일부러 저런 행동을 보이는 걸 테다. 무의식 중이라도 가라앉은 분위기를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이제 뭐 하려고?”

“다시 일할 거야.”

“몸 안 좋다며. 어떻게 일하게? 그러다가 큰일 나.”


그렇게 내가 부럽다고 한 A는 내가 다시 일한다고 하니 몸을 걱정하며 만류했다. 그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면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깊이 생각하자면 그녀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날 그 자리에서 나는 그 애에게 남은 정이 똑 떨어졌다. 상대방의 상황을 마음대로 재단하여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는 행동. 남들이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발언들. 모두 불쾌했다.


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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